[해외통신원]
[LA] 불황에 허덕이는 현실 같아
2008-12-24
글 : 황수진 (LA 통신원)
조너선 레이먼드의 단편을 영화화한 <웬디와 루시>

미국은 여러 가지 얼굴을 가진 나라다. <웬디와 루시>가 그려내는 한적하고 한산한 미국의 풍경은 로스앤젤레스가 아니더라도 어느 도시를 벗어나든 한 시간만 달리면 어렵지 않게 만난다. 불황이 본격화되는 2009년을 앞둔 겨울, 그 담담한 풍경은 점점 더 퍼져가는 듯하다.

흐트러진 짧은 갈색 머리, 칙칙한 후드티에 무릎 부위에서 아무렇게나 가위로 잘라내버린 것 같은 바지, 그 아래로 드러난 부러질 것처럼 가냘픈 다리, 마치 오른쪽 발목을 감싸는 압박붕대의 힘으로 간신히 버티는 것 같은 자그마한 몸, 스무살의 주인공 웬디의 모습이다. 인디애나 출신인 웬디가 왜 고향을 떠났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다만 그녀가 고향에 아무것도 남겨놓지 않았으리라 짐작할 뿐이다.

그런데 알래스카에 일자리가 있을 거라는 이유만으로 북으로 향하는 그녀의 1988년산 혼다 아코드가, 목적지를 한참 남은 오리건의 한적한 마을에서 끝내 주저앉아버린다. 수중에 얼마 남지 않은 돈을 페니까지 세어보는 웬디. 급기야 그녀는 유일한 동반자인 애완견 루시가 먹을 사료를 훔치다가 철창 신세까지 지게 된다. 그 와중에 루시까지 잃어버린다. 영화는 웬디가 루시를 애타게 찾아다니는 외딴곳에서의 며칠을 그린다. 악하지도 선하지도 않은 사람들. 다만 다들 힘들 뿐이다. 마을의 공장은 오래전에 문을 닫았다. 남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갈까’라고 되뇐다.

조너선 레이먼드의 짧은 단편을 자연광 아래의 미 서북부 풍경에 담아낸 <웬디와 루시>는, 전작 <올드 조이>로 각종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았던 켈리 레이차르트가 연출과 공동각본을 맡았다. 그녀 특유의 건조하면서도 긴 호흡의 화면 위로 웬디의 나지막한 흥얼거림과 기차 소리가 흐른다. 영화는 대부분의 장면에 등장하는 주연배우 미셸 윌리엄스의 미묘한 연기에 크게 기댄다. 서정적이면서도 건조하게 웬디를 바라보는 시각이 한편의 잔잔한 다큐멘타리를 보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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