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선은 웃는 얼굴과 웃지 않는 얼굴이 너무 다른 사람이다. 웃음기를 거둔 채 스튜디오로 들어서는 그는 예상보다 훨씬 큰 키에 마른 몸, 피곤한 낯빛 때문인지 쉽게 근접하기 어려운 느낌마저 든다. 하지만 자리에 앉아 얼굴을 익히고 몇마디 이야기가 오가다보면, 어느새 옆사람을 ‘북’ 대용으로 두들기면서 ‘어우 야∼’ 하며 웃는, 아주 익숙한 얼굴의 그가 앉아 있다. 간단한 헤어커트만으로도 열일곱 고등학생이 어색하지 않은 천진함과 삶의 격랑을 한두번쯤 넘어야 했던 스물일곱 여배우의 고단함이 공존하는 김희선의 얼굴은 시점에 따라 꽃병도 되었다가 마주보는 사람의 형상도 되는 그림처럼 극과 극의 표정을 품고 있었다. “줄곧 내가 오버하는 모습을 원하는 사람들도 많았고, 그게 김희선다운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았죠. 나 역시 그런 게 재미있었어요. 싫었다면 못했겠죠. 그렇지만 사람이 어디 한 부분만 있겠어요? 사실 지금도 크게 달라진 건 없어요. 그저 내 속에 있는 다른 부분이 보여지는 것뿐이죠.”
아버지를 죽음으로까지 몰고간 이복동생과의 이룰 수 없는 사랑의 상처를 담고 있는 와니의 얼굴엔, 양산으로 잠시 만든 일회용이 아닌 폐부 깊숙이 드리워 좀처럼 걷어내기 힘든 진짜배기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초반 시나리오에서는 그보다 밝았던 와니 캐릭터가 김희선에게로 떨어진 뒤 더욱 폐쇄적일 만큼 어두워진 것도 그렇게 대조적인 느낌으로 가겠다는 김희선의 의지였다. “그 전 영화들은 정말 정신없이 찍었어요. <자귀모>는 배우 연기보다 CG 처리를 더 걱정해야 했고, <비천무>는 액션과 화면, 무거운 의상에 짓눌리는 느낌이 있었고요. 하지만 <와니와 준하>를 찍을 땐 정말 고민도 깊게 하고, 여러모로 생각할 시간이 많았어요. 그만큼 기대도 컸는지 시사 보고나니 기분이 묘하더라고요. 뭐라 콕 집어 말할 순 없지만 왠지 아쉬운 느낌이 너무 많아서 한참 속상했어요.”
<베가본드> <키드 갱> 같은 만화책이 너무 재미있다는 이야기를 하다가, 곤충을 얼마나 싫어하는지에 대한 일장연설을 늘어놓고, 곧이어 연극 <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장이>를 보면서 두루마리 휴지 들고 펑펑 울었던 이야기로 변속기어도 넣지 않은 채 달려가는, 그렇게 김희선은 중간이 없는 사람이다. “싫어하는 걸 하는 성격은 아닌데 유독 영화만큼은 사람들이 좋다는 것, ‘희선이가 했으면 좋겠네’ 하는 그런 영화만 했어요. 정작 내가 ‘뭘 하고 싶다’는 말을 선뜻 못했거든요. 자신이 없었나봐. 내 의지로 처음 고른 작품이 <와니와 준하>였어요. 그리고 이 영화 끝내니 이젠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영화만 해야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카라꽃을 닮은 화원의 여인도, 말리꽃 향기를 지닌 아름다운 소녀도 아니다. 목 늘어난 T셔츠에 파자마를 입고 TV 앞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김희선의 모습은, 그러나 다른 영화와 비교할 수 없는 독특한 매력을 품어낸다. 보여주지 않았던 슬픈 뒷모습을 이제 <와니와 준하>를 통해 드러낸 김희선에게, 벽에 붙여놓은 브로마이드가 아니라 당신과 세상사는 이야기를 나눌 때가 온 것 같다면 싫어할까? 남자들의 꿈속의 연인보다 여자들의 다정한 친구로 충분히 어울리는 모습이 되었다고 말한다면 혹, 섭섭해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