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액세서리]
[그 액세서리] 털모자? 야구모자? 가죽페도라!
2009-01-07
글 : 강지영 (GQ KOREA 패션디렉터)
<스내치>

가이 리치의 영화는 두 단어로 말할 수 있다. 빗발치는 ‘스타일’과 후려치는 ‘유머’. <스내치>에서는 찌질이에게도 스타일이 있다. 이건 패셔너블하고는 다른 종류고 쿨앤시크 같은 잡소리로는 또 다 못할 얘기다. 청부업자도 와인색 터틀넥을 입고 악당도 티켓포켓이 달린 체스터 필드 코트를 걸치며, 하물며 개에게조차 오소독스한 크기의 반점이 있는 영화. 브래드 피트는 타고난 미모를 어쩌지 못해 분통이 터지던 차에 가이 리치를 만났다. 그전의 그는 뭐랄까, 전형적인 아메리칸 뷰티에 가까웠다. 흘러내리는 흰 양말에 리복 운동화를 신은 채 이를 드러내고 웃는, 잘생긴(그러나 결정적으로 촌스러운) 미국 남자. 이를테면 톰 크루즈나 초기 맷 딜런처럼.

가이 리치는 브래드 피트에게 아이리시도 아니고 잉글리시도 아닌 요상한 집시 말투와 가래 끓는 목소리를 주문했다. 분홍색 셔츠와 개털 코트, 나일론 점퍼와 회색 바지를 번갈아 입히고 조악한 가짜 금 장신구들을 몸 여기저기 걸치게 했다. 여기서 끝났으면 미키의 ‘룩’은 후줄근하고 너저분한, 그저 그런 그런지에 그쳤겠지만 가이 리치에게는 과연 최후의 한방이 있었으니 그게 가죽 페도라다.

집시 복서에게 방울이 달린 털모자나 챙이 떨어져나간 야구 모자 말고 영국제 페도라를 씌울 생각을 할 감독이 가이 리치 말고 또 누가 있을까? 비로소 미키는 손으로 잡은 자국이 움푹 팬 낡은 가죽 페도라를 쓰고 나니 ‘도그’를 ‘데그’라고 발음해도, 바지 밑단을 양말 안에 우겨넣어도 어쩐지 그게 다 스타일 같은, 새로운 정체성을 찾는다. 참, 미키의 떡 진 머리와 간혹 입는 조끼, 밑위가 짧은 노턱팬츠(앞 주름이 없는 바지) 역시 가이 리치가 미국 남자 브래드 피트에게 토핑한 영국식 ‘원펀치머신’ 스타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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