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를 엿볼 순 없다. 금방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릴 것 같은데도 빨간 머리가 타버리기 전에는 전투 태세다. 입은 담배를 내뿜는 데나 사용하는 것일 뿐이고 말이라는 것, 그것과는 상관없다. 비디오카메라를 여기저기 들이대며 남의 이야기 주워듣고 있다. 세상을 발견할 준비는 돼 있지만 당신의 질문에 답할 채비를 하고 있지는 않다. 소녀를 궁금해하지 마라. 당하기 전에 전하는 비밀이다. 소녀는 어제의 세상과 오늘의 세상이 다르다고 알고 있다. 맙소사. 어제나 오늘이나 똑같은 걸 소녀는 모른다. 세상이 싫다는 듯 굴어도, 그녀는 날개를 가졌다. 소녀는 갑자기 자란다. 소녀는 아기를 임신하고, 한나절을 시큼한 화장실에서 신음을 하고는 사정없이- 만약 그녀의 부른 배를 보지 못했다면 변비 걸려 고생한 뒤나 되는 것 아닌가고 착각할 만큼 사정없이- 레버를 내려, 아기의 눈을 마주치려고 하지 않았다. 그 화장실을 나오면 그녀는 어머니를 찾아가는 여행을 떠나는 어린애로 돌아갈 수 있으니깐. 다시 한번 말하건대 소녀는 갑자기 자란다. 애 낳으면 철든다고, 아니다. 자람은 사건에 연속해서 오는 것이 아니다. 돌아보기 위해서는 화장실을 나와 남해 꽃섬으로 가는 여정이 필요했다.
김혜나는 꽃섬을 다녀왔다. 대사도 별로 없고 뾰로통한 얼굴로 있던 소녀는 잦은 플래시에 익숙해졌나 싶었는데 갑자기 표정이 굳고 어색해져버리기도 한다. 17살과 22살, 소녀의 삶과 배우의 삶, 반항아와 모범생, 그 차이를 녹여야 했다. 송일곤 감독은 계속 혜나가 돼라고 했다. 내가 혜나인데. 그건 자기 이름을 따 영화에 그대로 들어간 순간에 결정된 일이다. 디지털카메라는 자꾸 밀착해왔다. 혜나가 되지 않는 순간까지도 잡았다. 제일 첫 촬영은 아기를 낳는 장면이었다. 시간순서로 촬영하기 위해서였다. 계속 혜나이고 싶어도 따라붙는 카메라에 혜나를 모두 보일 수는 없었다. 어느 게 혜나고 어느 게 혜나인지. 화가 나기도 했다. 어머니를 아는 늙은 남자의 술을 먹고, 진짜같이 취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한번 울기로 한 혜나의 약속을 지킬 수가 없었던 것이다. “엄마는 죽을 때까지 니 생각만 했다”는 말에 비치는 눈물. 그게 혜나일 리는 없다. 점점 밝아지는 혜나의 변화처럼 그 불화의 폭은 점점 줄어들었다. 그러고나니 김혜나는 꽃섬에서 컸다. 꽃섬으로 사람이 변했다. 꽃섬에 가기 전 그녀는 말이 없는 소녀였단다. 혜나, 그 이후의 혜나. 지금 그녀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3학년 재학중이다.
다큐멘터리적 동화. 마술적 리얼리즘. “혜나는 투명한 물고기랍니다. 유진 언니는 이상한 나라 폴처럼 다른 세상으로 간 거예요.” 그걸 우회진술이라고 할 것이다. 소녀답다고는 하지 않을 것이다. “씨발, 언니들, 나 바다 처음 봐요. 졸라 멋있어요.” 그렇게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날개가 오늘 날개와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오늘 처음 본 것이 바다뿐만은 아님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