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인터뷰]
[가상인터뷰] <지구가 멈추는 날>의 클라투
2009-01-14
글 : 김도훈
“2012년에 다시 만나요”

-지구를 살려둬서 뭐하시게요.
=지구는 살릴 가치가 있었습니다.

-대체 왜?
=저는 봤어요. 지구인들에게는 스스로를 구원할 만한 따뜻한 마음이 있다는걸요.

-기껏해야 제니퍼 코넬리 닮은 과학자 아줌마와 윌 스미스 아들 닮은 아들이 어쩌다가 한번 껴안고 우는 걸 봤을 따름이잖아요. 이거 뭐 지구를 멈추는 것도 랜덤이고 구하는 것도 랜덤인가여? 당신을 가둬두고 고문하고 심문하던 바보 같은 미 정부 인사들한테서 배운 게 하나도 없으신가봐요.
=그들 또한 악한 존재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어리석은 존재일 뿐이죠.

-어리석음이 얼마나 악한지 모르시나봅니다. 인류 역사의 수많은 재앙과 제노사이드는 무지(無知)에서 기인합니다. 지도자들의 무지는 물론이거니와. 무지한 지도자에 열광하는 대중의 무지도 마찬가지고요. 무식한 건 종종 죄예요 죄.
=하지만 어리석음과 무지함은 충분히 교육이 가능한 거죠. 제가 과학자 모자에게서 본 것은 어쨌거나 인간의 마음속에는 선함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 정도면 비루하고 쓸모없는데다가 은하계에 미치는 영향력도 미미한 삼류 행성 하나쯤 살려둘 만한 이유는 되는 거겠죠.

-당신이 우리보다 지적으로 월등한 존재라면 앞으로 수만년, 아니 수백만년 이후를 생각하셔야죠. 아무리 비루하고 쓸모없는데다 영향력도 미미한 행성이라지만 수백만년 이후에는 우주의 질서를 어지럽히고 은하계의 바벨탑에 도전하는 골치 아픈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흠. 제가 한 가지만 물어봐도 될까요. 당신, 지구인 맞나요?

-네. 지구인입니다. 종종 정신상태가 안드로메다계 아스트랄 행성으로 뻗어가긴 하지만 신체 조건을 잘 뜯어보시면 지구인 맞아요.
=아스트랄 행성을 욕되게 마세요. 그 행성 사람들은 은하계에서 가장 지적으로 위대한 존재 중 하나니까요.

-헉, 아스트랄 행성이란 게 진짜로 있단 말입니까!
=그건 중요한 게 아닙니다. 여튼 당신은 지구인인데 왜 그렇게 지구에 대해 악감정을 갖고 있는 건가요. 제가 지구를 멈추게 만드는 순간 당신이라는 존재도 사라집니다. 두렵지 않아요?

-오늘 멈추나 내일 멈추나 멈추는 건 멈추는 거죠. 이왕이면 설 합본호 마감 직전에 멈추면 더 좋고. 여기까진 농담이고. 제가 다른 이야기를 좀 해볼게요. 왜 하필 미국에 착륙하셨습니까. 인류가 얼마나 위험하고 못난 존재인지 정말로 알고 싶다면 맨해튼의 센트럴파크 같은 데 떨어지면 안 되는 거죠.
=추천하는 장소라도 있습니까?

-이스라엘의 가자지구를 추천합니다. 마침 이스라엘군이 백린연막탄을 팔레스타인 민간인 거주지구에 마구마구 쏟아붓고 있습죠. 백린연막판이 뭔지 아시죠? 공기까지 완전히 불바다로 만드는 괴물이에요. 애건 어른이건 방호복을 입건 말건 상관없이 모두 불타죽습니다.
=제가 지구를 청소하기 위해 가져온 나노 무기와 비슷한 거군요.

-네. 그렇죠. 혹시 타임머신이 있다면 50여년 전 폴란드의 아우슈비츠도 한번 가보시길 권해드립니다. 가자와 아우슈비츠를 동시에 가보시면 알게 될 겁니다. 우리는. 인류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는 존재들입니다. 당신들의 교육도 효과는 없을 겁니다.
=절망적이군요. 그래도 저로서는 돌아갈 수밖에 없어요. 은하계의 다른 쓸모없는 종자들을 멸종시킬 계획이 다이어리에 빠듯하게 예약돼 있거든요. 예약이 끝나는 때가… 2012년이네요.

-마야인들이 예언했다는 지구 종말의 해로군요.
=마야? 그런 건 잘 모르겠고. 롤랜드 에머리히라는 위대한 예언가가 2012년을 최후의 해로 잡았다는 소문은 들었습니다.

-이봐 당신. 정말로 지구에 대해서 하나도 배운 게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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