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VD]
[dvd] 참사랑을 발견하기 원하는가, <로맨스>
2009-01-16
글 : 이용철 (영화평론가)

<로맨스> Les Amours d’Astree et de Celadon

2007년 감독 에릭 로메르 상영시간 105분
화면포맷 1.33:1 스탠더드 음성포맷 DD 3.0 프랑스어
자막 한글 출시사 대경DVD

화질 ★★★☆ 음질 ★★★★ 부록

17세기 초엽, 작가 오노레 뒤르페는 고대 양치기들의 이야기를 소설로 썼고, 소설 <아스트레>는 에릭 로메르의 각색과 연출을 거치며 다시 17세기 스타일로 재현됐다. 셀라동과 아스트레의 사랑엔 걸림돌이 많다. 부모와 경쟁자들이 두 사람의 사랑을 방해하고 시기하는 과정에서 아스트레는 셀라동의 사랑을 불신하게 된다. ‘다시는 눈에 띄지 마라’는 그녀의 명령을 따라 셀라동은 급류에 몸을 던진다. 사제의 예언에 맞춰 강가를 찾은 님프들이 셀라동의 생명을 구하지만, 이 사실을 알 리 없는 아스트레는 슬픔에 빠진다. 인간의 세상과 신화의 세상 가운데 위치한 숲에서 구원을 기다리는 셀라동에게 어느 날 사랑과 지혜의 전도사가 찾아온다.

이전에도 로메르는 연작과 연작 사이에 간혹 시대극을 배치하곤 했는데, ‘사계절 이야기’를 마친 뒤엔 다소 이례적으로 계속해서 시대극만을 연출하고 있다. 시대의 정신, 상대방의 진심 혹은 내면을 깨닫지 못하는 여자들의 이야기란 점에서 <영국여인과 공작> <삼중 간첩> <로맨스>를 ‘어리석은 여자의 실수’ 시리즈로 묶을 수 있으나, <로맨스>는 로메르가 이전에 만든 시대극과 근본적으로 다른 노선을 취한다. 시대극에서는 유독 실내, 세트를 선호했던 로메르는 이번에 자연과 인물만 담기로 작정한 듯하다. 몇몇 실내장면을 제외한 모든 신은 나무와 강과 숲과 바람과 새소리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영화의 인물들은 흡사 그들이 수세기 전의 공간에 존재하는 양 연기한다.

<로맨스>는 1995년에 세상을 떠난 감독 피에르 주카를 애도하는 작품이다. 주카의 이른 죽음을 슬퍼한 로메르는 주카의 작품이 해외는 물론 프랑스에서도 외면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했을 것이다. 주카가 미완의 프로젝트로 남긴 <아스트레>를 영화화하며 로메르가 의도한 바는 <로맨스>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인물 구성과 내러티브가 복잡한 소설은 영화로 옮겨지면서 단순한 모습으로 바뀌었다. 인공의 장치, 티끌이나 군더더기는 모두 제거되고, 오직 자연스러움이 영화를 다독인다.

왜 그럴까? 영화의 주제가 ‘순수한 사랑’이기 때문이다. 대다수 로메르의 영화에서 주인공들은 오해, 불신, 질투, 배신, 현혹, 착각을 거친 뒤에야 (영화에서 고작 몇분의 시간만 허락되는) 사랑의 환희에 도달한다. 반면 <로맨스>는 사랑에 충실한, 사랑의 진심을 간직한 남자가 들려주는 교훈극이다. 아스트레가 짧은 순간 의심하고 뉘우친 다음, 영화의 많은 부분은 셀라동의 헌신에 집중한다. 셀라동은 사랑의 신전을 짓고 사랑의 계명을 쓴다. 거기엔 ‘끝없는 사랑, 지고한 사랑, 하나뿐인 사랑’이 적혀 있다. <로맨스>는 눈에 보이는 허상과 어색한 가장 아래의 진실을 꿰뚫어보고 참사랑을 발견하기를 원하며, 로메르는 인간의 변덕스러운 마음, 거추장스러운 도덕과 씨름하는 대신 사랑에 종교적 지위를 부여한다. <로맨스>가 아흔을 앞둔 로메르가 도착한 종착역이라 해도 난 놀라거나 섭섭해하지 않겠다. 일생 인간과 이야기와 관계를 탐구했던 노대가는 그 여정의 말미에서 ‘로맨스의 정수’를 완성해놓았다.

현재 프랑스 바깥에서는 구하기 힘든 <로맨스>의 DVD가 한국에서 출시된 것 자체가 기쁨이다. 로메르 영화의 전통적인 포맷인 1.33:1 스탠더드 화면비율의 영상과 특이하게 3채널로 수록된 사운드는 둘 다 나무랄 데 없다. 부록은 예고편뿐이지만, 그건 여타 로메르 영화의 DVD도 마찬가지란 점을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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