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의 순간]
[이다혜의 작업의순간] 꽃을 따려면 꽃밭에 물을 줘라
2009-01-23
글 : 이다혜
<테스> 토머스 하디
<테스>

날 좋아하는 것도 아닌 남자가 일종의 ‘패키지’ 술자리를 집요하게 제안하는 일이 있다. “출장 같이 갔던 사람들끼리 한번 볼까요?” “여행가서 만난 사람들끼리 뒤풀이 어때요?” 십중팔구 그 일행 중 누구에게 꽂혀서 그런다. 대놓고 둘이 만나자고 하면 너무 속들여다보이는 것 같아 저어되니 일단 분위기 파악 좀 해보겠다는 심산이다. 그런 자리를 성사시키는 재능이 있는 건 언제나 긴장감없는 몸매에 적당히 웃기는 재주가 있는 나(어느 모임에서나 이런 역할을 누군가는 하게 된다). 나에게 관심이 없다 해도 내 주변의 누군가에게 접근하기 위해서는 나에게 연락을 하고 친절하게 대하는 게 나름 효과적인 전략이라는 말이다. 그 과정에서 가끔 내 눈이 돌아서 그 남자에게 빠져버린다는 사실은 논외로 하고.

그래서 머리 좀 쓴다 하는 남자들은 쿨한 척 매너 좋은 척 마음에 둔 여자 주변 사람들에게 고르게 예의를 차리곤 한다. 아주 기본적인 작업 방식이다. 토머스 하디의 <테스>에 보면 클레어가 테스에게 점잖은 수작을 거는 신이 나온다. 소나기로 강물이 불어 테스를 비롯한 네 처녀가 강가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그때 ‘완고한 목사의 반항적인 아들’ 엔젤 클레어가 나타났다. 테스의 시선을 피해 맨 앞에 선 여자에게 “교회에 가는 길이죠?”하고 운을 뗀 그는 “제가 물웅덩이를 건네드리지요.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라고 말한다. 여자들은 팔을 클레어의 어깨에 올려놓고 거대한 꽃송이처럼 그에게 안겨 차례로 강을 건넌다. 마지막 차례가 테스였다. 자기 차례가 다가오자 테스는 마음에 둔 남자의 가슴에 안겨 물을 건넌다는 생각에 바짝 긴장해 딴청을 부린다.

“전 둑을 타고 건널 수 있어요. 저 애들보다는 잘 올라갈 수 있거든요. 그리고 너무 지치셨어요, 클레어씨.”
“천만에, 테스.”
그가 급히 말했다. 테스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에게 안겨 그의 어깨에 몸을 기댔다.
“한 사람을 안기 위해 세 사람을 건네준 셈이야. (중략) 내가 세 사람을 건네주느라 고생한 것도 다 네 번째로 당신을 건네주기 위해서라는 걸 정말 몰랐어요?”

둘이 속닥거리며, 시쳇말로 당장 이불이라도 깔 것 같은 얼굴로 둘이 강을 건넌 뒤 클레어가 사라지자 세 여자가 투덜거린다. “안되겠어. 우린 테스하고는 상대가 안된다니까.” 그리고 세 여자는 클레어에 대한 연심을 접는다.

한 사람을 위해 그 주변에까지 작업을 한다. 그런 태도가 중요한 이유는, 주변의 인정이 있을 때 여자 마음은 훨씬 쉽게 열리기 때문이다. 당장 돈낭비, 시간낭비로 보여도 작업대상의 동성 친구들에게도 친절하게 대할 것. 테스를 안기 위해서는 테스의 친구 셋을 안고 물을 건널 것(워낙 유명한 비극인지라 저렇게 달짝지근한 장면을 읽는 순간에도 테스의 최후가 머리에 종소리처럼 뎅뎅 울리고 있다만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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