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이 돌아오는 꿈을 꿨어.”
아나이스는 스틱 향수를 목과 귀에 뱅글뱅글 돌리면서 탄식하듯 말한다. 필립 카우프먼의 방탕한 문제작 <헨리 밀러의 북회귀선>(Henry & June, 1990)에서 ‘준’이란 발음은 어떤 섹스나 키스보다 자극적이다. 왜냐하면 ‘준’은 우마 서먼이고 그때 그녀는 복숭아 같은 스무살이었으니까. 등급제한의 소란과 비평가들의 논란과 원작 훼손이 어쩌고 하는 혼란 속에서 결국 건진 건 우마 서먼뿐이었다고, 영화 개봉 뒤 그녀의 비틀어진 미소에 넋이 나간 남자들(물론 여자들까지도)은 조용히 수군댔다.
수줍은 듯 과감한 아나이스(마리아 드 메데이로스)가 1930년대 파리의 거리와 뒷골목, 사교카페와 섹스클럽까지 온통 헤매고 다닌 덕에 영화에는 온갖 희귀한 예쁜 것들이 끊임없이 등장한다. 깃털을 꽂은 종모양 모자와 금색 레이스 장갑, 핏빛 매니큐어와 골드링, 팔꿈치까지 올라오는 가죽장갑과 연어색 클러치, 심지어 앞섶이 벌어진 실크 가운과 도드라진 젖꼭지의 앙상블까지. 물론 이 비싸고 고귀한 것들은 다 돈 많은 아나이스 마나님의 차지였지만 문제는 그녀가 기차 삯도 없는 여자에게 온통 빠져서 준이 돌아올 날만 꿈에서도 기다린단 사실이다.
준은 갑자기 돌아왔다. 살갗이 비치는 블라우스에 얇은 니트를 걸치고 그 위에 오소리인지 족제비인지 모를 퍼 머플러를 두른 채로. 다시 만난 준은 그전과 달라 보인다. 먼 여행에서 이제 막 돌아온 사람 특유의 냉기와 피로함이 원색적인 털의 텍스처와 합쳐져 도발과 관능의 폭발로 불이라도 붙을 것 같다. 친근하고 따뜻한 ‘뷰티’가 아니라 그걸 당장 못 가지면 죽어버릴 것 같은 종류의 잔인한 매력. 긴 팔로 퍼 머플러를 쓰다듬으면서 방으로 들어가는 내내 준의 시선은 아나이스에게 꽂혀 있다. 아나이스가 곧이어 들어가고 방문이 탁 하고 닫힌다. 소란스러운 거실의 아코디언 소리도 뚝 그친다. 우마 서먼이 스트레이트와 바이섹슈얼, 게이와 레즈비언들의 공통적이고도 암묵적인 ‘환상’이 되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