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통신원]
[세계의 관객을 만나다-뉴욕] 레슬링이 어떠신가
2009-01-21
글 : 양지현 (뉴욕 통신원)

연말 극장가는 오스카 특수로 늘 각축전이 벌어진다. 이른바 작품성있는 영화들이 맨해튼 극장가에 며칠 간격으로 연이어 개봉한다. 뉴요커들의 발길 역시 연말연시를 즐겁게 해주는 상업영화보다 오스카를 노리는 진지한 영화들에 몰려든다. 저예산 독립영화들을 주로 상영하는 로어 맨해튼의 랜드마크 선샤인 시네마에서는 지금 한물간 80년대 프로레슬러를 다룬 미키 루크의 재기작 <더 레슬러>가 상영 중이다. 영화 상영 뒤 극장을 빠져나오는 갠 매튜스(Gann Matthews)를 잠시 붙잡았다.

-연말연시에 웬 한물간 레슬링 선수 이야기를 보러 왔나. 오스카 시즌이라서인가.
=미키 루크의 팬이라서다. 아버지가 오래전에 보여준 영화 <엔젤 하트>부터 좋아했다. 그 뒤로 한동안 그를 잊었다가 몇년 전에 <씬시티>를 보고 다시 좋아졌다. 물론 <더 레슬러>에서 그의 연기가 오스카 후보감이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영화 보고 나니 어떤가. 정말 오스카 후보에 오를 것 같나.
=루크는 많은 배우들이 보이기 싫어하는 면까지 보여줬다. 그냥 봤을 때 관심을 끌거나 매력있는 캐릭터는 아니잖나. 자신이 맡은 캐릭터의 허물까지 다 보여주는 역이랄까. 다른 배우들은 이런 연기를 하기 힘들었을 거다.

-<엔젤 하트>와 <더 레슬러>에서의 미키 루크의 외모가 많이 다르지 않나.
=많이 다르다. 지금은 덩치도 커졌고, 근육도 많이 생겼고, 얼굴도 많이 상한 것 같다. 세월이 느껴진다. 외모가 예전과 많이 달라졌기 때문에 이제는 그에게 완벽하게 맞는 역할이 아니면 캐스팅이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다. 그래도 <씬시티>나 <더 레슬러>에서 본 미키 루크에 만족한다. <씬 시티>가 흥행에 성공했다지만 개인적으로는 미키 루크가 없었다면 전혀 흥미롭지 않았을 거다.

-마음에 드는 장면이 뭐였나.
=레슬러가 일하는 슈퍼마켓 주인과의 관계다. 주인공은 삼류 레슬러들 사이에서 일종의 리더잖나. 그런데 자기가 일하는 슈퍼마켓 주인 앞에서는 자존심을 삼켜야만 한다. 그런 부분이 주인공의 캐릭터를 가장 잘 보여주더라. 레슬러는 평생을 슈퍼히어로 캐릭터가 되려고 노력했다. 레슬러로 잘나갈 때는 액션피겨도 만들었을 만큼 유명했고 링에서 절대로 지지 않았던 그가 구걸하다시피 일을 더 오래하게 해달라고 슈퍼마켓 주인에게 매달리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개인적으로 공감하는 점이라도 있었나보다.
=나는 뮤지션이다. 싱어송라이터고 밴드 멤버로도 활동한다. 거기에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 그는 어떤 어려움을 겪어도 레슬러로 남고 싶어 한다. 나도 음악을 하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한다. 요즘 웨이터 일을 하는데 주인공이 돈 때문에 머리를 숙이며 슈퍼마켓에서 일을 맡는 걸 이해할 수 있다.

-80년대면 한창 헐크 호건 등으로 프로 레슬링이 유명하던 시절이다. 개인적으로 레슬링에 관심이 있었나.
=아니. 본 적도 없고 관심도 없었다. 대학 때 룸메이트가 그 나이에도 프로 레슬링 경기를 꼬박꼬박 보더라. 바보 같다고 생각했다. (웃음)

-이 영화를 본 뒤에도 그렇게 생각하나.
=원래 프로 레슬링이란 게 짜고 한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 영화를 보니 그렇다고 전혀 고통이 없는 것은 아니더라. 선수들이 자신의 몸을 던져가며 ‘가짜 쇼’를 보여주지 않나. 나이든 주인공이 마이너 리그에서 레슬링을 하는 모습은… 글쎄, 어릴 적 채널을 돌리다가 언뜻 TV에서 보던 화려함이 아니었다. 더 어둡고, 불굴의 의지가 느껴진다고나 할까.

-27살이라면 미키 루크가 잘나갈 때 찍은 <나인 하프 위크>나 <와일드 오키드> <이어 오브 드래곤> 등은 잘 모르겠다.
=예전 영화는 <엔젤 하트>만 봤다. 하지만 <더 레슬러>를 한번 더 본 뒤 전작들을 다 찾아서 볼 생각이다. 감독이나 배우의 작품을 한꺼번에 보는 습관이 있다. 고등학생 때는 스탠리 큐브릭에 빠져서 감독의 작품을 다 찾아봤었다. 덕분에 대학에서 1년간 영화를 공부하기도 했다. 결국은 음악으로 빠졌지만. (웃음)

-뮤지션이라니 마지막으로 음악에 관해 질문하겠다. <더 레슬러>의 사운드트랙은 어땠나.
=전체 분위기를 만드는 데 80년대 메탈음악이 잘 사용된 것 같다. 한물간 레슬러가 자신의 찬란했던 영광의 날들을 돌아보는 내용이지 않나. 어떤 면에서 주인공은 아직도 80년대에 사는 거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건즈 앤 로지즈, 머틀리 크루 같은 당시 메탈음악을 잘 듣지 않는다. 앞으로도 CD를 사거나 좋아하게 될 것 같지는 않다. 포크뮤직이나 60년대 팝음악을 좋아하는 편이다. (웃음)

관련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