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이라는 소재를 다룬 영화로 증권과 관련된 용어와 주가조작에 대한 세세한 묘사 등의 이해가 쉽지는 않음. 조폭 출신 인물들이 계속적으로 욕설과 ‘X지랄’, ‘와이로’ 등의 거침없는 비속어 남발. 각목으로 사람 머리를 때려 피투성이가 돼서 살해하는 장면, 시체를 유기하는 장면 등 청소년에게 유해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으므로 청소년 관람불가.”
곧 개봉하는 영화 <작전>에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내리면서 영상물등급위원회가 밝힌 결정사유를 보고 있노라면 어안이 벙벙해진다. 청소년이 ‘증권과 관련된 용어와 주가조작에 대한 세세한 묘사’를 이해하기 어렵다니. 그렇다면 범죄단체가 청소년들을 조직원으로 육성한다는 <강철중: 공공의 적1-1>의 내용이나 1분에 한번꼴로 부하의 뒤통수나 때리고 범죄단체를 유지하기 위해 안달하는 <투사부일체>나 <유감스러운 도시>의 주인공들은 이해하기 쉬워서 15세 이상 관람가를 부여했단 말인가. 영화에 등급을 부여하는 것이 영상물등급위원회의 고유 권한이긴 하지만, 이번 <작전>에 대한 등급부여는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동안 꾸준히 제기돼왔던 등급 판정의 형평성에 대한 논란도 커질 전망이다.
상식적으로 납득되지 않으니 충무로에 ‘음모이론’이 퍼지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일부에서는 이번 <작전>에 대한 등급 판정이 미네르바 사건과 연관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주식에 투자했다가 쫄딱 망한 뒤 5년 동안 경제와 증권을 독학한 다음 경제의 흐름과 작전주의 동향까지 파악해내는 능력을 갖게 된다. 여러모로 미네르바와 닮은꼴이다. (<신동아>가 속은 게 맞다면) 결국 음모이론은 ‘청소년들이 <작전>을 보면서 미네르바를 연상하고 이에 관한 이야기를 인터넷 등에 쏟아내지 않도록 청소년 관람불가 판정을 내렸다’ 또는 ‘<작전>이 적은 관객 속에서 조용히 막을 내리도록 제한하는 차원에서 등급 부여를 했다’는 식으로 만들어지게 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음모이론을 굉장히 신봉하는 편이지만, 음모이론이 퍼지는 사회가 그리 건전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이같은 가설이 사실이 아니기를 바란다. <작전>의 등급이 집권층의 코드를 맞추려는 분위기 속에서 매겨지지 않았다고 믿고 싶듯이 나는 전두환 암살사건을 다루는 <29년>이 항간에서 주장하는 바처럼 청와대의 압력에 의해 투자가 중단된 게 아니라고 믿고 싶고, 이 영화를 제작하려던 제작사가 청계천에서 괴물이 나온다는 <괴물2>도 제작하는 까닭에 ‘괘씸죄’까지 누적됐다는 주장이 거짓이라고 믿고 싶으며, 분위기가 흉흉하다 보니 요즘 투자사들이 현 정부 또는 보수파의 심기를 건드리는 시나리오를 거들떠보지도 않는다는 소문도 진실이 아니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하지만 불행히도 내가 바라는 대로 세상이 굴러간 적은 거의 없다. “요즘 분위기에서는 <공동경비구역 JSA> 같은 시나리오가 예전 그 캐스팅을 해서 굴러들어와도 못 만든다”는 한 제작사 관계자의 발언이나 ‘철천지원수인 폭력경찰에게 주인공이 복수한다’는 내용의 영화를 준비하는 한 감독이 투자를 받지 못하는 사정이라는 이야기를 듣다보면 음모이론이란 아무 근거없이 만들어진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아아, 정녕 우리는 대운하에서 펼쳐지는 대하 로맨스와 인터넷 속 불순세력을 색출하는 형사들의 이야기만 봐야 한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