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읽기]
[영화읽기] 성기의 응징, 능동적 처녀성의 탄생
2009-02-05
글 : 황진미 (영화칼럼니스트)
‘바기나 덴타타’의 여성주의적 맥락을 적극적으로 형상화한 <티스>

‘성기에 이빨 달린 여자-바기나 덴타타’에 대한 통설은 유구한 것이다. 조셉 캠벨의 <신의 가면1>(원시 신화)에 나오는 이빨을 가진 ‘질’-소녀를 길들이는 뉴멕시코의 소년영웅 이야기나 힌두교의 ‘요니’등을 모르더라도 상관없다. 우리나라 음담패설 중에도 있지 않나. 신부 성기에 이빨이 달려 있다는 풍문을 들은 신랑과 신랑 성기가 종아리만하다는 풍문을 들은 신부가 첫날밤에 각자 무릎과 이빨로 맞대응하면서 과연 풍문이 진실이었음을 확인했다는 상호오해의 성기공포증 이야기. 못 들어봤다고? 괜찮다. 주류 문화 속에도 덜 노골적인 방식으로 많이 들어 있으니까.

<죠스>가 <버자이너 모놀로그>를 만난 셈?

<티스>의 외국 포스터 중 빨갛고 겹겹이 가시 돋친 에일리언의 입을 클로즈업하고 ‘모든 장미는 가시가 있다’는 문구가 쓰인 버전이 있다. <에이리언> <우주전쟁> <괴물> 등에 나오는 날카로운 이빨이나 촉수 강한 턱이 달린 사람을 통째로 집어삼키는 거대한 입, <록키 호러 픽쳐 쇼> 포스터에 나오는 흰 이를 슬쩍 드러내는 새빨간 입술, 남자들의 다리를 물어뜯고 집어삼키는 <죠스>(실제로 <티스>의 감독이 제작자에게 <티스>에 대해 말하길, “<죠스>가 <버자이너 모놀로그>를 만난 셈”이라 했다 한다)는 모두 바기나 덴타타의 변형이다.

그뿐인가. <감각의 제국>에서 죽을 때까지 섹스하다가 남성 성기를 잘라 가진 여자, <원초적 본능>에서 보일 듯 말 듯 성기로 유혹하여 절정의 순간 송곳으로 찔러 죽이는 여자,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에서 강제 키스하는 남자의 혀를 물어뜯어 절단한 여자, 가위로 남성을 거세시키고 남자와 강제로 섹스하려고 덤비는 <조폭마누라>, <숨>에서 혀를 잘라먹을 듯이 키스하여 남자들을 숨 막히게 하는 여자 등도 바기나 덴타타의 변형이다.

영화뿐이 아니다. 삼손과 동침한 뒤 힘의 원천을 잘라낸 데릴라, 보들레르의 시에 나오는 게걸스럽게 먹는 여자, 19세기 그림들에 나오는 살로메나 유디트 등 남자의 목을 따는 여자, 첫 만남에서 남자의 뺨을 물어뜯어 피를 보았다는 실비아 플라스, 하다못해 “서방 잡아먹을 년”이라는 욕설에 담긴 의미 등이 모두 바기나 덴타타의 넓은 외연이다.

일찍이 프로이트는 메두사의 머리가 여성 성기의 재현이라는 지견을 폈다. 관능과 죽음을 상징하는 메두사의 머리는 아테네에선 공포를 물리치는 부적으로 쓰였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메두사의 머리는 ‘거세된’ 성기로서 거세의 공포를 환기시킨다는 것이다. 누워 있는 여자의 음모가 수북한 가랑이를 정면에서 사실적으로 그린 쿠르베의 작품 <세계의 근원>을 소장하고 은밀히 즐겼다는 라캉 역시 여성 성기가 두려운 이유를 ‘거세된’ 성기이기 때문으로 보았다. 그런데 그렇기만 할까? 바바라 크리드는 <여성괴물>(원저의 표지엔 흰 이가 보이는 붉고 관능적인 여성의 입술이 세로로 그려져 있다. 세로의 붉은 입술은 연극 <버자이너 모놀로그> 2006년 포스터에 치아만 빼고 차용되었다)에서 뱀의 머리칼과 거대한 입, 그리고 멧돼지의 어금니를 지닌 메두사의 머리를 바기나 덴타타의 변형이라고 적시하면서 여성 성기가 불러일으키는 공포는 그것이 ‘거세된’ 성기이기 때문이 아니라, ‘거세하는’ 성기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바기나 덴타타는 여성 성기가 지닌 활력과 공격성을 단적으로 표상하는 아이콘이다.

편안한 성교 땐 작동하지 않는 그것

<티스>는 바기나 덴타타가 지니는 여성주의적 맥락을 적극적으로 형상화한 영화이다. 즉 ‘남성의 거세공포의 산물’이라거나 ‘남성 영웅에 의해 정복되어야 할 마성의 여자’를 형상화한 것이 아니라, 성적 자기결정권을 지니며 그것이 침해되었을 때 (상징적 의미의 거세에 해당되는) 응징할 수 있는 막강한 힘을 지닌 새로운 여성 주체의 부상을 의미한다. 영화는 거세 공포를 느끼는 남성에 주목하는 게 아니라, 그녀의 각성과 성장에 주목한다. 만약 남성의 거세공포에 초점을 맞춘 영화라면, 그녀의 괴물성이 화면 가득 전시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는 그녀의 성기를 그로테스크하게 재현하는 대신 아늑하게 벌어진 동굴의 입구 등으로 암시할 뿐이다. 기괴하게 피 흘리는 흉물스러움은 ‘잘린 남근’의 몫이다. 그녀 역시 색정에 들끓어 게걸스럽게 남자를 포식하는 모습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그녀는 순결서약에 앞장서는 처녀로 섹슈얼리티가 억압되어 있으며 거울을 보며 흡족한 미소를 짓는 자기충족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오히려 결핍은 남성들의 몫이다. 의붓오빠는 그녀의 ‘티스’에 손가락을 잘리는 외상을 경험한 뒤 여성 성기를 무서워하며 엉덩이 사진을 잔뜩 걸어놓고 항문성교만 한다. 그녀가 첫 관계 뒤 처음으로 자신의 성기를 인식하고 교과서에 붙은 스티커를 제거하고 여성 성기 그림을 보았을 때, 그녀는 살짝 상기된 표정을 짓는다. ‘거세된’ 성기나 불쾌한 흠결로 그것을 바라보는 게 아니라, 신비한 근원으로 마주하는 것이다. 그녀의 ‘티스’는 데이트 강간과 산부인과 진료상황에서 작동한다. 그녀의 의지에 반해 틈입하는 것에 대한 반응이다. 애무 도중이었지만 반대의사를 분명히 밝혔음에도 삽입이 일어났고, 진료실 역시 남성 중심의 관음적 시선과 권력이 작동하는 곳이었다.

그녀가 편안하게 성교할 때 ‘티스’는 작동하지 않는다. 그녀를 정복하는 남성 영웅이란 다름 아닌 그녀와 상호 존중하는 성관계를 맺을 수 있는 남자이다. 그녀의 ‘티스’는 남성 영웅이 아닌 그녀 자신에 의해 길들여진다. 그녀가 자신의 무기를 의지대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을 때, 그녀는 어머니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의붓오빠를 유혹하여 응징한 뒤 길을 떠난다. 그녀가 유혹의 순간부터 입고 있던 흰 원피스를 휘날리며 벌판 위 도로를 자전거로 달리는 모습은 정복되지 않은 처녀성의 상징, 아르테미스를 연상시킨다. 여기서 처녀성은 순결 서약을 하던 때의 억압된 섹슈얼리티와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닌다. 순결이데올로기를 내면화한 수동적 처녀성이 아니라,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하는 능동적 처녀성인 것이다.

무엇이 그녀의 변이를 일으켰나

그녀는 돌연변이에 의해 진화한 신인종여성이다. 무엇이 그녀의 변이를 일으킨 걸까? 영화 내내 보이던 핵발전소의 굴뚝은 엄마의 병과 딸의 돌연변이에 원인을 제공한 것으로 추정된다. 굵고 뭉뚝하고 연기를 내뿜는 굴뚝은 흡사 잘린 채 밑동만 남아 피 흘리던 남성 성기의 모습과 닮았다(온전한 성기를 표상한 것이었다면 앙각으로 높게 잡았을 테지만 카메라는 멀리서 조그맣게 굴뚝을 잡는다). 거세된 남성성, 즉 탈근대의 가부장적 남성권력의 약화가 종래의 여성에겐 독이 되기도 하지만, 자유롭고 강인한 신인종여성을 출현시키는 환경을 조성한다는 뜻으로 해석하면 지나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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