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정웅인] “이제 연극 해야겠구나 싶다”
2009-02-04
글 : 이영진
사진 : 최성열
<유감스러운 도시> 정웅인

<반칙왕>(2000)의 정웅인을 떠올리긴 쉽지 않다. 반면 정웅인을 제쳐두고 <두사부일체>(2001)를 말하기는 어렵다. 시트콤 <세친구>와 함께 <두사부일체>는 그를 ‘웃길 줄 아는’ 배우로 각인시킨 영화다. <두사부일체>에 출연하면서 정웅인은 이름도 얻었고, 집도 샀다. <투사부일체>와 <두사부일체> 시리즈의 연장인 <유감스러운 도시>에 그가 출연한 건 ‘정 트리오와의 돈독한 우정’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그가 <두사부일체>의 일원임을 마냥 만족스러워하는 건 아니다. <두사부일체>를 찍은 뒤 그는 <써클>을 찍었고, <투사부일체>를 마치고 <마법사들>(2006)을 집었다. ‘웃기는’ 배우라는 낙인을 떼고 싶어서였다. 경찰이 된 조폭 이중대 역을 벗은 뒤 그는 어떤 선택을 할까. 동숭아트센터에서 만난 그는 연극 <민들레 바람 되어>를 연습 중이었다. 대사와 지문을 달달 외우려는 흔적들로 가득한 대본을 사이에 두고 그를 만났다.

-<마법사들> 때 인터뷰(<씨네21> 546호 씨네인터뷰) 했으니까 3년 만이다.
=벌써 그렇게 됐나. 그때 코미디 하기 싫다고 했던 건 기억난다. 그런데 이번에 코미디영화로 인터뷰 하게 됐네. 왜 왔나. (웃음)

-그러게. 오늘이 <유감스러운 도시> 개봉이다. 흥행이 잘될 것 같나.
=예매율이 안 좋다고 하던데. 아까 감독님하고 통화했는데, <투사부일체> 때도 안 좋았다고 하더라. 명절을 지나봐야 알 것 같다.

-위염은 다 나았나.
=며칠 술 안 마셨더니 이제 괜찮다. 그날은 아침에 도저히 못 일어나겠더라. 링거 맞고 속쓰림은 많이 없어졌는데 좀 쉬고 싶어서 일정을 취소했다.

-<유감스러운 도시>는 촬영하는 동안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
=언론이 관심이 없었던 것 아닌가. 조폭 나오는 코미디라서. (웃음) 지난해 9월 초부터 찍었는데 사실 급박했다. 44회 차였는데 찍으면서 4회 차를 더 줄여야 했으니까.

-4회 차 줄이는 게 쉽지는 않았을 텐데.
=감독님이 직접 전화를 했다. 내일 비 온다면서 저녁에 찍자고 하고. 뭐 이런 식이다. ‘이따가 뭐 해?’ 애 보느라고 안 된다고 할 수 있나. 상황이 그렇다는데.

-<유감스러운 도시>는 정준호가 대표인 주머니엔터테인먼트에서 제작했다. 출연료 계약도 정준호와 직접 했나.
=제작사는 김동원 감독과 정준호, 두 사람이 공동 대표다. 먼저 두 사람 사이에 이야기가 있었겠지. <투사부일체> 끝나고 나서 계약금을 미리 주더라. 그거 받아서 주식 투자를 했는데 그만 반 토막 났다. 어쩔 수 있나. 무조건 정 트리오 뭉친다 해야 하는 거지. 계약할 때보다 배우들 개런티가 많이 낮아져서 감독님이 직접 자신이 모범을 보이면서 잔금을 좀 깎자고 했는데 그렇게는 못했고, 일부 금액을 손익분기점이 넘으면 받기로 했다. 받을 수 있으려나 몰라.

-<두사부일체> 시리즈에 대한 애착도 있을 텐데.
=정준호는 해피하지. 그 뒤로 광고도 여러 편 찍었다. (정)운택이는 <친구> 이후로 하향곡선을 그리다 <두사부일체> 시리즈로 “관객 1500만명을 불러모은 배우”라고 자랑하게 됐고. 따지고 보면 난 별 볼 일 없다. <두사부일체>는 개봉 뒤 케이블에서 1년 넘게 폭탄 방송을 해댔다. 배 드러내고 <호랑나비> 춤추는 이미지만 각인시킨 거지. 그렇다고 이 시리즈를 그만하겠다는 건 아니다. 터부시되는 코미디에 대한 선입견이 시리즈가 계속되면서 깨질 수도 있고. 동료들 말고 나 혼자만 생각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니까.

-<유감스러운 도시>의 이중대와 전작의 김상두는 어떻게 같고 다른가. 관객이 이중대를 보면서 전작의 김상두를 떠올리되, 동시에 김상두와 다른 이중대를 보여주고 싶었을 텐데.
=캐릭터의 같고 다름보다 전작과 다른 이야기 흐름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한)고은이와의 멜로장면이 좀더 애틋하게 보였으면 좋겠다, 영화 초반에 집창촌에서 기생하는 삼류 건달의 느낌이 잘 전달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있었다. 온몸에 테이프를 붙인 채 벽에 붙어야 했던 준호 형이나 찬 바다에 빠져야 했던 운택이를 생각하면 뭐 나야 놀고먹은 셈이지만.

-전작과 달리 노출장면도 있다.
=한달 동안 술 끊고 보충제 먹으면서 열심히 운동했다. 복근이나 이두박근, 삼두박근, 가슴 근육은 단기간에도 만들어지는데 하체는 효과를 많이 못 봤다. 체지방을 빼는 것도 어렵고.

-영화에선 주로 뒷모습이 나오지 않나.
=그렇지. 소송할까 싶다.

-전작들에서도 로맨스 설정이 없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주로 코믹한 느낌이었다. 이번엔 다르다. 반면 전작까지 주로 멜로 부분을 맡았던 정준호의 비중은 줄었다.
=시나리오가 나왔을 때만 해도 준호 형은 여자친구가 아예 없었다. 마지막에 총을 쏘는 것도 나였고. 그거 보고 준호 형이 노발대발했나 보지. (웃음) <투사부일체> 끝나고 나서 준호 형이 이제 자기는 다 보여줬으니 다음엔 내가, 그 다음엔 운택이가 포커스를 나눠 갖자고 했다. 시나리오를 봤을 때만 해도 이중대가 주인공에 가까웠다. 그런데 말처럼 쉽나. 그 마음 이해한다. 스크린에서 정준호를 더 많이 보고 싶어하는 관객도 있을 텐데, 시나리오대로 찍었으면 속상했겠지. 인물이나 설정을 새로 보강해 넣은 건 그런 측면도 있다.

-코미디는 현장에서 아이디어를 만들어 찍었다가 편집 과정에서 거르는 경우도 많은데.
=내 것은 한 장면이 빠졌을 뿐이다. 이중대가 경찰이 되려고 두눈에 성냥개비 꽂고 공부하는 장면이 있었다. 그러다 잠이 드는데 꿈에서 아버지가 나타난다. 경찰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묻는 아들에게 아버지는 ‘중대야, 장롱 문을 열어보거라. 비디오테이프가 있을 것이다. 반납 좀 해다오’ 뭐 그런 장면이었다. (김)대희가 아이디어를 내서 재밌게 찍긴 했는데 감독님이 나중에 붙여보니 잘 안 붙어서 뺐다고 하더라.

-전작들을 답습하는 데 그쳤다는 비난도 적지 않다.
=유치한 부분이 없다고 말할 순 없다. 하지만 처음부터 이 영화는 15세 관람가를 목표로 했다. 고등학생들과 30, 40대 관객이 보는 코미디는 분명 다르다. 장사를 하려면 그걸 섞을 수밖에 없다. 볼거리만 놓고 보면 업그레이드된 부분이 분명 있다고 본다.

-<상사부일체>는 봤나.
=저렇게 말아야겠다 싶더라. 다른 배우를 보면서 관객이 저건 정준호, 저건 정웅인, 저건 정운택 그러지 않았겠나. 이번 영화 찍으면서 우리끼리도 이야기 많이 했다. <두사부일체>도 시리즈로 가려면 앞으로는 전작들을 디졸브 아웃시키고 조폭이 아닌 새로운 소재로 가야 한다고 말이다.

-<마법사들> 이후 지난해까지 영화는 <잘못된 만남>밖에 없다. <발칙한 여자들> <문희>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 등과 같은 드라마로 더 주목받았는데.
=시나리오를 많이 못 받았으니까 그런 거지. 받아도 대부분 그런저런 코미디고. 그중에 엎어진 프로젝트도 있었고.

-신기한 건 드라마에서 맡은 역할들이 다 제각각이다. 그래서 더 좋은 반응을 얻은 것이 아닐까.
=영화보다는 경제적 손실이 덜하니까. 그래서 멜로 연기도 시키잖나. 드라마야 시청률이 안 나오면 다른 캐릭터, 다른 배우로 끌고 가면 된다. 이쪽에서 안 되면 저쪽에서 올리면 되는 거지. <은실이> 할 때 내 매니저 도움도 있었다. 연극할 때부터 인연을 튼 사이라 나를 잘 안다. 그가 캐스팅 디렉터로 드라마에 참여하면서 나를 추천한 거지. 올해는 사극드라마도 한편 할 예정이다. 그런데 내일 상견례라고 했는데 왜 아직 연락이 안 오는 거야. 잘린 건가.

-결혼 뒤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고나서 달라진 게 있나.
=가정을 꾸린 뒤 고민이 많아졌다. 내키지 않은 작품이라도 분윳값 생각하면 쉽게 죄송합니다, 라고 못하게 된다. 반면 나의 다른 모습을 기억해주는 분들을 위해서 마냥 끌려갈 수만도 없다. 해야 해, 말아야 해, 정말 잘 모르겠다 싶을 때는 가족 투표를 하기도 한다. 그러다 내 뜻이랑 어머니 뜻이랑 다를 때는 죄송합니다, 하는데 그때마다 ‘우리가 뭐 굶어 죽겠니’ 하신다.

-연극 연습은 언제부터 했나.
=제대로 한 건 얼마 안 됐다. 공연이 2월13일부터인데 겁난다. 13년 만에 무대에 선다는 공포도 있다. 대사도 정말 많다. 주고받는 건 괜찮은데, 혼자 주절거리는 대사가 많아서 걱정이다.

-출연 제안은 <연극열전2> 프로그래머인 조재현이 했나.
=형수님이 위성 TV로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을 몰아서 보신 적이 있는데 그때 같이 보셨다더라. 그러면서 쟤가 저런 연기도 해, 하셨다고 했다. 그전까지는 서로 잘 몰랐다. 전에 <국희> 촬영 때 잠깐 도와주러 오신 적은 있는데 그때 인사드리고 경조사 때 뵌 게 인연의 전부다. 그런데 대학 동창인 동숭씨어터컴퍼니 홍기유 대표에게서 전화가 왔다. 전에도 나보고 연극 하라고 했던 친구인데, 그 친구가 전화해서는 나보고 재현이 형이 보자고 했다면서 일단 <민들레 바람 되어>부터 보라고 했다. 장항준 감독이랑 같이 가서 봤는데 보는 내내 콧물, 눈물 흘렸다. 연극 끝난 뒤 술집에 가서 건배하고 나서 바로 하겠다고 했다. 만취해서 하겠다고 한 적은 있지만 이번처럼 맨 정신에 출연하겠다고 한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연장공연에서는 조재현, 안내상 등과 함께 세 배우가 안중기 역을 나눠 맡는다.
=가장 버벅대고 있다. 재현이 형은 지난해 11월부터 공연을 했으니 “컨디션이 안 좋으니 이번 공연은 5분 당기자” 뭐 이렇게 말할 정도가 됐을 거다. 내상이 형은 <조강지처 클럽> 끝난 뒤 가족들하고 여행을 다녀오느라 연습에 늦게 참여했는데 벌써 대사를 다 외웠다. 반면 나는 아직도 차 안에서, 화장실에서 쪽대본 들고 다닌다. 새벽에 일어나서 대사 외우기도 하고.

-트리플 캐스팅이다 보니 부담이 적지 않을 것 같다.
=되도록 공연을 안 보려고 한다. 재현이 형 공연 한번 보고나선 안 봤다. 귀가 얇은 편이라 보면 따라갈 것 같다. 따라가 봤자 내 색깔도 안 날 것 같고. 내상이 형은 연습을 같이 해야 해서 아무래도 슬쩍슬쩍 보게 된다. 두 선배의 연륜을 따라잡지는 못할 것 같고. 다만 나는 내 평범함을 잘 보여주면 될 것 같다. 그게 뭔지는 직접 와서 봐라.

-노인 연기도 해야 하는데.
=관객이 그전에 안중기라는 인물에 빠지도록 해야지, 뭐. 전엔 일이 없어서 쉴 때 난 배우인데 뭘 해야 하나 싶었다. 지하철 타고 다니면서 사람들 훑어봐야 하나. 아니면 몸을 만들어야 하는 건가. 야구 선수들은 운동장 가서 타이어 치면 되지만 배우는 딱히 할 게 없다. 근데 이제 연극 해야겠구나 싶다. 저 뒷자리에 앉은 관객에게까지 내 오열을 보여주려면 얼마나 많은 연습이 필요한가. 무대 위에서는 손을 주머니에 넣고 연기를 할 수도 없는 것이고. 내가 왜 여기 서 있어야 하나를 끊임없이 따지게 되고, 공부하게 된다. 반면 연기라는 건 계산하는 순간 어색하게 보일 수밖에 없다. 간혹 아역배우들을 보면 배울 게 많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은 계산하지 않으니까. 그 둘을 오가다 보면 좋은 연기가 뭔지 보이겠지.

-영화만 놓고 보면 가장 어색함을 많이 노출한 작품이 뭐라고 생각하나.
=<써클>. 내 딴에는 자연스럽게 했는데 잡생각이 많았던 것 같다. 사채업자들한테 시달리기도 했고. 역할에 푹 빠져야 하는데 그렇게 못했다.

-사채업자?
=누구나 다 그런 때가 있잖나. 친구 잘못 만나서 그렇게 됐다. 따지고 보면 불효 많이 했지. 지난해에야 복구가 됐다.

-전에 홍상수 감독 영화에 출연하고 싶다고 한 적 있다. 아직도 그런가.
=하고 싶지. 그런데 이제는 굳이 유턴을 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내 길 가다 보면 어느 지점에서 만나겠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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