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spot] 동화 읽어주는 마음으로
2009-02-10
글 : 정재혁
사진 : 오계옥
<작은 영웅 데스페로> 내레이션 맡은 배우 신애라

‘옛날 옛적 어느 마을에….’ 착한 드라마나 동화엔 아이들 머리맡에 앉아 동화를 읽어주는 엄마가 등장한다. 고운 목소리에, 자상하고 부드러운 인상을 가진 그런 엄마 말이다. 뉴베리상 수상작을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 <작은 영웅 데스페로>도 그렇다. 겁이 미덕인 생쥐 마을에서 용기를 개성으로 갖고 태어난 생쥐 데스페로의 모험담인 이 영화는 슈퍼맘 배우 신애라의 해설로 국내 개봉판을 다듬었다. <사랑을 그대 품안에>의 청춘스타였지만 배우 차인표와의 결혼, 출산과 입양으로 이젠 엄마가 된 신애라. 그녀는 이번 내레이션에 대해서도 “아들에게 동화 읽어주는 마음”으로 녹음했다고 말했다. <작은 영웅 데스페로>는 배우 신애라의 활동 복귀작이라기보다 동화 속 이상형에 어울리는 그녀의 엄마 연장선처럼 보인다.

-내레이션 녹음은 처음이다. 어떻게 참여했나.
=<작은 영웅 데스페로>라는 소설이 있고, 이를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이 있다며 해설 역할을 제의받았다. 보통 작품 이야기는 남편하고 많이 하는데 이번엔 아들한테 물어봤다. “엄마 이거 할까”, 그랬더니 바로 하라고 하더라.

-아들이 엄마 목소리에 뭐라고 감상평을 남기던가.
=처음엔 엄마 목소리로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나중엔 영화에 빠져서 관심이 없더라. 그냥 톤이 좀 높다고 했나. (웃음)

-라디오 진행을 오래 해서 내레이션 녹음이 힘들진 않았겠다.
=맞다. 그게 있었다. 아까(기자 간담회 때) 답변으로 그 얘기를 할걸. (웃음) 라디오 하면서 사연도 많이 읽고, 시도 많이 읽어서이지 좀 편하게 했던 것 같다.

-그래도 특히 신경을 써서 녹음한 부분이 있나.
=더빙은 속도가 중요한 것 같다. 내 감정대로 하면 더 천천히 해야 할 것 같지만 장면과 맞추는 게 더 중요하다. 어떨 때는 감정을 넣기 힘들 정도로 빨리 읽어야 할 때도 있고.

-이번 작업을 아들에게 가장 먼저 물어봤다는 것도 그렇고, 결혼 이후 배우 신애라에겐 엄마의 이미지가 매우 커졌다.
=내 삶에 우선순위를 매기자면 종교가 일순위다. 기독교를 믿으니 하나님이지. 신앙이 90%는 될 것 같다. 그 다음 가족이 9%? 8%? 나머지가 나. (웃음)

-그래도 <사랑을 그대 품안에> 때에는 청춘스타였다. 결혼 이후 활동이 뜸해졌고, 지금도 아주 간간이 작품을 하는 것 같다. 배우의 화려한 생활, 바쁜 일상을 더 오래 하고 싶지는 않았나.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물론 지금은 엄마라는 내 위치가 좋지만 또 예전엔 내가 처했던 위치가 달랐으니까. 그때의 내 위치가 소중하고 감사하다는 걸 알았다면 조금은 더 많은, 다른 활동들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지금 내 나이가 41살인데(웃음) 나이를 먹어서 서글프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젊을 때에만 할 수 있었던 것들을 못해 아쉽긴 하다. 특히 요즘 젊은 친구들 활동하는 거 보면 나도 요즘 시대에 젊은 배우로 활동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런 생각도 하고. 환경이나 조건들이 많이 달라져서 우리가 누리지 못한 것들을 요즘엔 즐기는 것 같더라. (웃음) 또 왜 젊었을 때 배낭여행 한번 안 갔는지, 외국어 배우기 위해 시간을 더 투자 안 했는지, 싱글일 때 할 수 있었던 일을 못한 것에 대한 안타까움은 있다.

-슈퍼맘이란 수식어까지 생겼는데.
=음…. 지금은 엄마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니까 나쁘진 않다. 뭘 하는지보다 어떻게 하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엄마를 해야 한다면 엄마로선 최고가 되고 싶은 게 사실이고. 엄마 역할에 슈퍼가 들어갔으니 뭐 감사하다. (웃음)

-젊었을 때 꿈꿨던 결혼생활, 30, 40대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이 일치하나.
=꼭 그렇진 않다. 물론 어릴 때부터 아이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좋은 엄마가 되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빼놓지 않았던 게 좋은 연기자란 꿈이었다. 지금은 우선순위로 따지면 가족 밑이 됐으니까. 하지만 역으로 생각해보면 내가 가족이나 신앙을 놓치고 갔더라면 이 토끼도 잡지 못하고 저 토끼도 잡지 못했을 것 같다. 이러다 연기자로 끝나는 거 아냐, 불안해하면서 말이다.

-그래도 100% 중에 나의 비중이 1%인 건 너무 적은 거 아닌가.
=사실 90%가 종교라 해도 그 안에 이미 9%의 가족, 1%의 내가 포함되어 있는 것 같다. 나도, 가족도 없이 하나님만 외치는 건 아니다. 물론 그 안에서 내 자릴 잘 찾는 게 중요하겠지.

-1%을 더 크게 키우고 싶은 마음은 없나.
=물론 그런 생각도 한다. 하지만 동시에 지금은 아이들이 어리니까 엄마가 해줘야 하는 것들은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갈등도 하고. 물론 정말 엄마의 연장선 같은 역할 말고 연기자로서 내가 도전해야 할 게 있다면 한쪽은 잠시 쉬고 다른 한쪽에 전념할 거다. 그런데 아직은 엄마로서의 역할이 나에겐 더 크다.

-슈퍼맘 이미지 안에는 입양에 대한 부분이 꽤 큰 것 같다.
=입양은 그냥 단순하다. 어릴 때부터 아이를 좋아했다. 하지만 내가 다 낳을 순 없으니 입양도 하자고 생각했다. 지금은 그 생각이 더 단순해졌고. 물론 아직은 사회적으로 좀 다르게 보는 시선이 있는 것 같지만 나는 아들 정민이도, 두딸 예은이와 예진이도 똑같이 기른다. 그냥 조금은 다른 형태의 가족관계도 가능한 거고. 입양이 아닌 다른 경로로도 가족은 될 수 있는 거다.

-얼마 전엔 키즈12라는 어린이 교육 공간을 만들었다.
=지금은 손을 뗀 상태다. 엄마로서 아이들이 자유롭게 놀며 배울 수 있는 곳이 있었으면 싶었다. 그래서 힘들게 마련한 땅과 건물에 키즈12를 차렸다. 하지만 난 사업가가 아니라 계속 CEO를 구하고 있었고 얼마 전에 좋은 사람을 만나서 그분에게 모든 걸 넘겼다. 이젠 그냥 건물주일 뿐이다. (웃음)

-엄마로서 원했던 공간은 어떤 건가.
=나는, 아이들은 저학년까지 이렇게 영화 보고 그냥 놀아야 한다고 본다. 자연을 맛보면서. 근데 우리나라에선 많은 엄마들이 아이들을 공부에 가둔다. 물론 공부 잘하는 달란트를 갖고 태어난 아이도 있겠지만 모든 아이의 달란트가 공부는 아니다. 데스페로도 자기가 가진 개성으로 그렇게 큰 역할을 해낸 거 아닌가. 우리나라에선 공부 잘하는 걸 미덕으로 가르치는 것 같지만 나는 진짜 아이가 잘할 수 있는 거, 원하는 직업을 찾아주는 게 좋은 교육이라 생각한다.

-마지막 질문이다. 배우를 포함해 지금 갖고 있는 앞으로의 삶의 그림이 궁금하다.
=무슨 일을 하든 어떤 상황에 처하든 나는 사람들에게 인정받기보다는 하나님한테 인정받고 싶다. 사람들에게 오해를 받았더라도 하나님 앞에서 떳떳하고 당당하다면 속상해하지 않고 나아갈 수 있을 것 같다. 반대로 사람들에게 백번 칭찬받아도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우면 고쳐나가야 한다고 본다. 내 안의 하나님에게 어떻게 보여지는지가 더 중요하다.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