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리포트]
[포커스] 참 끈질긴 ‘제한상영가’ 등급이여
2009-02-17
글 : 이영진
사진 : 최성열
영비법 일부 개정법률안에서 거의 그대로 살려… 자의적 등급분류 위험도 그대로

“눈 가리고 아웅이다.” “분명 진일보한 조치다.”

제한상영가 등급분류 기준을 포함한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이하 영비법) 일부 개정법률안’을 둘러싸고 영화계와 영등위 및 정치권이 이견을 내놓으며 대립하고 있다. 한나라당 허원제 의원이 대표 발의한 영비법 개정안은 지난해 7월31일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의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른 것이다. 당시 헌재는 제한상영가 영화를 ‘상영 및 광고·선전에 있어서 일정한 제한이 필요한 영화’(영비법 제21조 제3항 제5호)라고만 적시한 영비법 조항이 “헌법정신이 요구하는 ‘명확성의 원칙’ 및 ‘포괄위임 금지의 원칙’ 등을 위반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헌법불합치 결정이란 “해당 조항이 위헌임에도 불구하고 당장 효력을 상실시킬 경우에 생길 법적 공백상태를 막기 위하여 입법자에게 법을 개정할 시간을 주는 것”을 뜻한다.

지나치게 추상적이고 모호한 표현들

현재 국회 법안 소위원회에 상정된 영비법 일부 개정법률안은 제한상영가 영화를 “성, 폭력, 반사회적 행위 등의 묘사가 지나치게 과도하여 상영 등에 있어서 일정한 제한이 필요한 영화”라고 규정하고 있다. 제한상영가 영화에 대한 규정과 함께 △대사나 영상의 표현이 선정성, 폭력성, 반사회적 행위 등을 지나치게 묘사하여 인간의 보편적인 존엄과 가치를 현저하게 손상하며, 사회질서 및 미풍양속을 과도하게 해할 우려가 있거나 △영화의 주제나 내용이 예술적, 문화적, 교육적, 과학적, 사회적 가치를 현저히 훼손한다고 인정되거나 △기타 국민정서를 심각하게 훼손할 우려가 있는 영화에 제한상영가 등급을 부여한다는 기준도 제시했다.

영화계에서는 이번 개정법률안이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을 지나치게 소극적으로 해석했다고 비판한다. 영화사 봄의 대표이기도 한 조광희 변호사는 “개정법률안의 규정들은 기존 영등위 내부의 등급분류 기준을 반복하는 것에 불과하다”면서 “반사회적, 비윤리적, 미풍양속 등 지나치게 추상적이고 모호한 표현들은 최대한 절제해야 하는데도 개정법률안이 또 다시 우를 반복한다”고 말한다. 그동안 제한상영가 등급 부여의 근거로 제시됐던 영등위 내부 기준과 비교해보면, 개정법률안은 형식적인 법률 개정이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이는 제한상영가 등급에 대한 규정이 마련됐지만, 또다시 제한상영가 등급 기준이 자의적이라는 법적 시비가 재연될 확률이 크다는 뜻이다.

<숏버스>
<천국의 전쟁>

헌재의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영등위의 자세는 과거와 비교하면 ‘전향적’이었다. 2008년 11월12일 영상물등급위원회가 주최한 토론회에서는 ‘제한상영가 등급의 폐지와 대안등급의 신설’ 주장도 나왔다. 이 자리에서 영등위 위원이기도 한 황창근 홍익대학교 법대교수는 “제한상영관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아 제한상영가 등급을 시행하는 정책 수단과 방법이 실효성이 없는데다 과잉규제의 측면이 있다”며 “제한상영 등급을 없애는 대신 19세 관람가 등급을 만들자”고 제시했다. 청소년 관람불가 기준인 ‘18세 이하’보다 연령 제한을 강화하되, 일반 상영관에서도 제한상영가 등급 영화를 제한상영할 수 있게끔 하자는 현실적인 절충안이었다. 이는 제한상영가 등급의 폐지를 원하는 이들의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적극적인 개선안이라는 평가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허원제 의원이 1월에 발의한 개정법률안은 이같은 논의를 결국 수용하지 않았다. 한 제작자는 “영등위 차원에서 적극적인 개선안이 나왔지만 정작 문화체육관광부와 국회 등을 거치면서 기존의 제한상영가 등급을 유지하기로 결정한 것 같다”고 말했다. 지명혁 영등위 위원장도 “의원입법으로 추진되고 있기 때문에 이렇다 저렇다 말하긴 어렵다”면서 “황창근 위원의 안은 개인 의견에 불과하다. 영등위 전체의 의견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허원제 의원실의 한 관계자 또한 “제한상영가 등급을 폐지하면 청소년 보호를 위한 영상물 유통 관리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헌재의 헌법불합치 결정이 “제한상영가 등급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개정법률안을 옹호하는 이들은 제한상영가 등급 영화 혹은 제한상영관에 대한 규제를 완화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과거 제한상영가 등급 판정을 받은 영화들은 비디오 출시 등을 금했으나 이번 개정법률안에서는 타 매체로의 전환 및 유통을 허용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반응은 싸늘하다. <천국의 전쟁>의 소송을 맡은 박주민 변호사는 “소송에서 모두 다 이겼는데도 영화 개봉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면서 “비디오물 유통만을 얻어내기 위해서 지난 3년 동안 싸운 것이 아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천국의 전쟁>을 수입한 월드시네마의 변석종 대표 또한 “(영상물등급위원회에서는) 지금도 문제장면에 모자이크를 하라고 한다. 그럼 등급을 내준다고 하더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법률안에 규제의 이유는 없어

조광희 변호사는 지난해 헌재의 헌법불합치 결정은 사전심의 및 등급보류 위헌 판정에 이어 “(국가의) 영화 사전통제에 대한 세 번째 부정적 판단”이라며 “제한상영가 등급의 영화도 헌법상 표현의 자유를 통해 보호를 받는 표현물”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도 법률상으로 제한상영가 등급이 필요한 이유와 제한상영가 등급의 영화를 그토록 규제해야 하는 이유가 이번 개정법률안에는 빠져 있다. 등급 분류시 자의적인 판단으로 인해 표현의 자유가 제한될 위험은 전혀 줄지 않은 것이다. 영등위 등이 제한상영가 등급 영화를 ‘사실상 음란물로 취급하고 있다’는 인식도 지난 10년 동안 전혀 변하지 않았다. 음란물 반포 및 상영을 처벌하게끔 한 형법 243조가 버젓이 있는데도, 굳이 제한상영가 등급을 유지하겠다는 고집은 뭘까. “검찰 혹은 청소년보호위원회의 제2중대로 남겠다”는 영등위의 의지인가.

“그래도 일정한 틈 열어준 것”

지명혁 영상물등급위원회 위원장

-제한상영가 등급을 유지하겠다는 뜻을 문화체육관광부와 국회에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비법 개정은 의원입법으로 추진되고 있어서 굳이 내가 나서서 말할 바는 없다. 다만 지난해 8월 헌법재판소가 내린 헌법불합치 결정을 존중한다. 기존 영비법의 제한상영가 관련 조항이 명확성의 원칙, 포괄위임 금지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지적도 받아들인다. 영등위 내부의 규정에 제한상영가 등급 기준을 제시했지만, 규정이야 영등위 위원들이 바꿀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그동안 제한상영가 등급 부여 때마다 자의적이라는 비난을 받았던 것도 그 때문이고. 다만 헌재의 결정이 제한상영가 등급 부여 자체를 문제삼은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번 개정안은 등급 분류 기준들을 법률에 적시하는 수준이 될 것 같다.

-영등위 위원장이 됐을 때 ‘만들어진 영화는 보여져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안다.
=기사화 과정에서 좀 의미가 확대된 것 같다. 제한상영가 등급은 꼭 있어야 한다고 주장해왔고, 지금도 생각은 바뀌지 않았다.

-허원제 의원이 대표발의한 영비법 일부 개정법률안의 제한상영가 등급 기준은 기존 영등위 규정을 고스란히 반영한 결과처럼 보인다. 영등위 내부 규정은 법 조항과 달리 세부적인 분류 기준을 새로 내놓아야 하는 것 아닌가.
=제한상영가 등급뿐만 아니라 모든 등급에 내용정보 기술제를 추진하려 한다. 폭력, 성, 마약, 대사 등 7개의 항목으로 나누어 관객에게 미리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러한 작업은 청소년 보호를 위한 것이지만 심의 과정에 대한 투명성 확보에도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제한상영가 등급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 마련도 내부 과제 중 하나다. 가능한 장면과 불가능한 장면에 대한 가이드 말이다. 심의는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데 그렇다고 기계적인 잣대를 들이댈 순 없다. 과거에도 영등위 내부에서 심의 기준들을 구체화하자고 하면 ‘내가 전문가인데 뭘’ 하는 부정적인 분위기가 있었다. 구체적인 가이드와 함께 기존 심의 결과들까지 함께 데이터베이스화하면 논란을 줄일 수 있다고 본다.

-제한상영관이 사실상 거의 없는 현실에서 이번 개정안은 여전히 논란의 불씨를 안고 있다.
=이번 개정안은 제한상영가 영화들에 일정한 틈을 열어준 것이라고 본다. 과거와 달리 제한상영관은 옥외광고를 할 수 있고, 제한관람가 비디오물 등급 신설도 함께 추진되고 있어 제한상영가 등급 영화라고 해도 다른 형태의 유통이 가능하다. 한편 2달에 한번씩 자문위원회를 열어 바깥 의견도 들을 생각이다. 자문위원회에는 한국영화제작가협회, 언론계 등의 인사들이 포함되어 있다.

-지난해 헌재의 결정 이후 영등위가 주최한 토론회에서 제한상영가 등급 폐지를 통한 완전등급제의 필요성에 대한 주장이 다시 제기됐다.
=제한상영가 등급을 없애면 법원이 매번 힘들어지지 않겠나. 고발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 법적 갈등으로 가는 것을 막기 위해 영등위가 더 존재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작전>에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내리면서 내놓았던 이유 중 모방범죄 위험은 쉽사리 이해되지 않더라.
=욕설이 좀 심했다고 들었다. 폭력장면이 몇개 있었는데 끔찍했다고 했다. 여러 근거들을 제시했는데 모방범죄 위험만 크게 이슈화됐다. 미네르바 이야기는 기발한 상상력이라고밖에 할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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