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호재] “화이트칼라 범죄영화 힘들더라”
2009-02-18
글 : 김용언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작전>의 이호재 감독

<작전>은 말로 치고받는 액션영화다. 추상적인 ‘쩐의 전쟁’이자, 한국식 천민자본주의가 어느 정도로까지 우리의 일상생활 깊숙이 반영됐는가를 추적하는 영화이며, 동시에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엄청난 한탕을 꾸미는 과정을 스피디한 웃음으로 포장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한국에선 좀처럼 볼 수 없던 장르영화, 케이퍼 필름(Caper Film)을 데뷔작으로 선택하며 매끈하게 완성해낸 이호재 감독을 만났다. “<작전>이 풍자까지도 못 가고, 야유나 똥침 정도라고 생각한다. 상층부의 진짜 주범들을 다뤘다고는 솔직히 말 못하겠다”고 겸손하게 물러서긴 했지만, 발로 뛰는 취재와 웰메이드 장르영화에 대한 욕심으로 겁없는 데뷔작을 완성한 그의 야심은 뜨겁다.

-한국에는 할리우드의 <월 스트리트>나 일본의 <주바쿠>처럼 돈과 자본주의를 전면에 내세운 영화가 없었다. 한국식 천민주의 성격의 적나라한 모습들이 영화를 장악한다는 측면에서 <작전>은 최초의 영화다. 이 작품을 어떻게 시작하게 됐는지 궁금하다.
=처음 이 아이템을 떠올린 건 2005년경이다. 지인들 중에 증권업에 종사하는 형들이 몇몇 있다. 그들과 술을 마시던 중 “증권쪽 얘기도 장난 아니게 드라마틱하다. 이쪽 얘기를 해보라”라며 주가 조작, 즉 ‘작전’ 얘기를 들려줬다. 솔깃했다. 머릿속에 갈무리를 해놓았다가 2006년 말부터 본격적으로 시나리오 작업을 시작했다. 이때까지 범죄극은 많았는데, 주로 살인극이나 유괴 등 폭력적인 방식을 통해서였다. 그에 비해 사회에 대한 이야기까지 곁들일 수 있는 화이트칼라 범죄는 많이 안 다뤘다. 작업을 시작해보니 화이트칼라 범죄영화가 참 힘들더라. 범죄의 성격 자체가 워낙 지능적이라 시각언어로 표현하기에 제약이 많았다. 예전에 많이들 시도했지만 성과가 없었던 게 그래서였구나 싶더라. 결과적으로 주식시장의 본질보다는 주가 조작을 하는 사람들 이야기쪽으로 집중해서 풀어나갔다.

-쉽지 않은 소재를 하나의 이야기로 정리할 때 무엇에 제일 집중했는가.
=취재하면서 알게 된 사실은 주가 조작이라는 ‘작전’ 행위는 비일비재하지만 오히려 성공보다는 실패할 확률이 많다는 점이었다. 실패 이유는 100이면 99가 배반에 있었다. 언제 사서 언제 팔자라고 치밀하게 계획을 세웠는데, 꼭 한놈이 먼저 팔고 나가더라는 거다. 어차피 욕심이라는 게 남보다 무엇인가를 더 가지겠다는 꿍꿍이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서 ‘작전’을 짤 때, 이 많은 캐릭터들이 모여 저마다의 꿍꿍이를 숨기면서 한팀처럼 굴다가 어느 순간 와해되는 모습에 집중하자고 마음먹었다. 결과적으로 영화 <작전>은 어떻게 ‘작전’이 만들어지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작전’이 와해되는가에 대한 영화가 된 것 같다.

-이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선형적이라기보다는 방사선적이다. 영화의 중반 이후에도 새로운 인물들이 계속 등장하여 새로운 사건을 만들어나간다.
=과연 이 어려운 이야기를, 주식에 별 관심없는 관객에게도 설명 같지 않게 설명하면서 끌고 갈 수 있을지가 큰 숙제였다. 결과적으로 주식시장이라는 시스템을 일부러 단순화한 면은 있다. 사실 선물시장 내지는 옵션쪽이 더 드라마틱할 수도 있지만, 그런 파생시장까지 설명하려면 이야기가 너무 복잡해진다. 대신 전문용어나 주식의 숫자에 현혹되지 않은 채 이야기 진행에 몸을 실을 수만 있다면 어렵지 않게 따라갈 수 있을 거라고 봤다. 나는 한국 관객의 수준을 높게 평가한다. (웃음)

-<작전>은 한국식 천민자본주의의 면모가 가장 잘 드러나는 공간들로 꾸며졌다. 주식거래장은 말할 것도 없고 일식 주점, 꽃등심 고깃집, 외제차 매장 앞, 모범 택시, 멤버십 클럽, 룸살롱 등 돈놀이 풍경과 밀접하거나 혹은 사람들이 돈을 벌어서 가고 싶어 하는 공간들이다.
=일식집하고 룸살롱은 ‘작전’ 세력의 사무실과도 같다.

-왜 그럴까.
=나도 모르겠다. (웃음) 취재를 하다보면 이 사람들 노는 게 뻔하다. 술 마실 때도 고깃집이 아니라 꼭 일식집에 가고, 일식집에서 고급 술을 마시고 거드름 피우다가 막판엔 꼭 룸살롱을 간다. 뻔한 장소 선택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그 사람들이 실제로 가는 공간들이 거기였기 때문에 리얼리티 측면에서 그게 맞았다. 세트를 지을 때 같은 일식집이라도 좀더 일본 스타일, 왜색이 강하게 느껴지는 공간이었으면 좋겠다고 주문했다. 멤버십 클럽 장면에선 이른바 ‘1%’가 자기들끼리만 논다는 은밀한 느낌을 살리고 싶었다. 마틴 스코시즈의 <좋은 친구들>을 연상할 수도 있는데, 구불구불하게 차를 몰아 뒷길로 빠지는 듯하다가 어느 컴컴한 문을 들어서면 별천지가 나오는 동선이었기 때문에 그 공간을 선택했다.

-<작전>에서 가장 돋보이는 장면은 역시 폭탄주 제조와 통정거래 설명을 합친 장면이다.
=나 역시 영화가 100% 만족스럽진 않더라도, 통정거래 장면은 내가 이런 걸 했네 싶을 정도로 맘에 든다. (웃음) 일단 <작전>에선 주식시장이라는 낯선 세계를 설명하더라도 설명 같지 않게 설명하자, 설명하면서도 감정이 들어가고 이야기가 진행되도록 하자, 다중적이고 다의적인 표현을 하자고 컨셉을 잡았었다. 통정거래신에선 조민형이 술을 돌리면서 통정거래를 설명하는 인포메이션, 현수가 그놈의 ‘가오’ 때문에 마지못해 원샷하면서 조민형에게 동화되는 감정, 그러다가 뒷부분에서 쾅 하고 진실을 깨닫는 느낌, 조민형의 비열함 등이 적절하게 배치된 것 같다.

-‘작전’에 관여했던 실제 인물들을 인터뷰했다고 들었는데, 그들이 어디까지 ‘비밀’을 알려주었는지, 그리고 이들로부터 얻은 정보들이 어떻게 영화에 포함되었는지 궁금하다.
=<작전>에 나오는 주가 조작 방법들은 사실 정말 기본적이고 일반적인 방법이다. 실제로는 더 어렵다. 주가 조작에 관여했던 이들을 두명 정도 취재했는데, 그들은 뭔가 열심히 설명했지만 내가 잘 못 알아들었다. (웃음) 그런 구체적이고 어려운 조작 방식보다는 그들의 말투나 공간에서 내가 느낀 이미지들을 많이 가져왔다. 한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진행하는데, 사무실인데도 굉장히 휑했다. 책장엔 전화번호부만 있었다. 일하는 느낌이 안 든다. 그런 느낌을 DGS 캐피털 앤 홀딩스 사무실을 디자인할 때 반영했다. 화려하긴 한데 실속은 없고 좀 천박한 느낌.

-두대의 카메라로 촬영했고, 완성본이 3600컷에 달한다고 들었다.
=내용이 어렵다는 부담 플러스 시각적으로 볼 게 없다는 부담이 빠른 편집으로 이어졌다. 비효율적일 수도 있지만 카메라 두대로 ‘밀어찍기’를 했다. 한신에서 이 사람이 말할 때 A카메라로 죽 밀어찍고, 맞은편 사람이 말할 때 B카메라로 죽 밀어찍고. 그림을 많이 만들어서 편집의 여지를 충분히 뒀다. 컷이 많다는 게 반드시 빠르고 정신없다라는 걸 뜻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컷이 많기 때문에 이 사람이 말하는 동안 상대방의 리액션까지 일일이 짚을 수 있기 때문에 친절한 편집이라고도 할 수 있다. 대신 컷과 컷 사이는 무척 짧았다.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안 준다는 단점은 있겠지만, 빠른 영상에 익숙한 젊은 관객의 입맛에 우리가 맞춰간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편집이 다이내믹해 보인다면 무엇보다 신민경 편집기사의 공이다.

-주연급은 말할 것도 없고 수많은 조연에도 적재적소의 연기자들을 잘 섭외했다.
=조연급에서 가장 욕심을 냈던 캐스팅은 우 박사와 덕상이 역할이었다. 우 박사는 후반부에 뜬금없이 나타나서 허무하게 사라지는 감초인데, 이를테면 <펄프픽션>의 하비 카이틀 같은 역이다. ‘작전’계의 실력자이자 주식 살인마라는 사람이 되게 털털하고 동네 아저씨 같은 느낌이길 바랐는데, 신현종 선배가 카리스마와 찌질함을 미묘하게 잘 섞어주었다. 덕상이도 꽤 오래 고민했다. 그러다가 <복수는 나의 것>에 나왔던 박재웅을 떠올렸다. 그 친구의 매력은 뚱하고 무표정한 눈빛에 있다.

-관객의 반응을 가장 크게 끌어낸 건 역시 황종구 역의 박희순이다. 그가 황종구에게 워낙 입체적으로 활력을 불어넣는 바람에 오히려 한국영화에서 그동안 너무 많이 소비된 조폭이라는 캐릭터가 다시 한번 도드라지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아까 말한 일식집과도 비슷한데, 그건 주가 조작에도 실제로 조폭이 여기저기 깊숙이 개입되어 있기 때문이다. 대신 황종구 역을 만들 때 가장 중점을 뒀던 건 조폭이라는 직업이 아니라 ‘무언가가 되고 싶은 인물’이라는 캐릭터였다. ‘1%’에 소속되기 위해 발버둥치는 캐릭터이고, 어떻게 보면 현수의 한탕 욕구와 닮아 있다. 그 점이 병렬적으로 배치되면 재밌을 것 같았다. 이미 어떤 지위에 오른 인물이면 할 수 없는 이야기다. 어느 순간엔 필사적으로 ‘가오’를 잡다가 어떨 때에는 자기 성질을 못 이겨 펄펄 뛰는 이중적이고 이율배반적인 캐릭터다.

-현수 역할은 어떨까. 너무 찌질해도 안되고, 너무 영웅적이어도 안되는 캐릭터인데.
=현수의 제1컨셉은 평범함이었다. 평범함에도 자기 처지를 인정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서태지 노래에 나오는 것처럼 ‘환상 속의 그대’다. 이건 실제 내 모습이 아니야, 이 자리는 내 자리가 아니라 저 위야… 돈키호테적인 인물이며 허위의식으로 가득하다. 동시에 이 영화에선 화자이기도 하고, 주가 조작이라는 미지의 세계에 관객과 같이 들어가는 인물이다. 주인공이지만 다른 인물들과 균형을 맞춰주는 게 굉장히 중요했다. 박용하는 그런 전체적인 부분을 정확히 읽어주었다.

-BBK라든가 미네르바, 거기다 용역깡패가 등장하는 용산참사까지, 영화 속 사건들이 생각지도 않게 현실화되는 상황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나.
=뭐랄까… 대한민국에선 늘 일어나는 일이다. 시나리오 기획단계부터 촬영, 후반작업을 할 때까지 이 모든 사건들이 대한민국의 현주소라는 생각을 했다. 설령 <작전>의 개봉시기가 더 빨랐더라도 분명 다른 사건과 그런 식으로 연계되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론 미네르바와 현수의 공통점이 그리 많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작전>에서 가장 욕심을 낸 부분을 꼽는다면 어떤 게 있을까.
=쌓아가는 재미가 있는 영화이길 바랐다. 한 장면이 다음 장면과 부딪칠 때의 그 맛, 충돌의 재미가 필요했다.

-당신의 영화적 취향이 궁금하다.
=첫 상업 장편영화를 <작전>으로 만들었을 때에는, 분명 이런 식의 이야기를 내가 좋아한다는 데서 출발했다. 쉽지 않은 장르다. 재미있다 혹은 재미없다가 너무 분명한 장르다. <스팅>부터 <오션스 일레븐> <이탈리안 잡> <저수지의 개들> <범죄의 재구성> <타짜>에 이르기까지, 케이퍼 필름쪽에 가깝다. 각각의 주특기를 가진 범죄자 여럿이 모여서 작당을 하고 한탕하는 그런 장르 말이다. 개인적인 취향은 잡식성이다.

-그 질문을 한 이유는, <달콤한 거짓말>이라든가 <과속스캔들>과 <작전>에 이르기까지 한국에서 새로운 세대의 데뷔감독들이 나온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젊은 감독들이 할리우드 장르영화의 황금기를 보고 즐기면서, ‘보는 것’만으로도 할리우드식 장르영화의 문법을 습득하고 그것을 체화했다는 느낌이랄까. ‘예술영화’의 강박에서 벗어나 장르영화에 대한 촌스러움이나 주저함이 없어진 세대의 등장이라는 생각이 든다.
=동의한다. 나 역시 장르의 틀을 불편해하지 않았다. 장르의 룰을 따라가면 결국엔 답습이고 통속이 될 것이라는 걱정보다는 이 장르가 가진 장점을 어떻게 적극적으로 차용할 것인지 고민했다. 난 <작전>이 더 많은 사람들이 재밌게 보는 영화가 되길 바랐기 때문에 유머가 가미되며 범용성이 높은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이건 감독들이 젊고 젊지 않고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오히려 관객의 변화에 영화가 발맞춰간다는 생각이 든다. 관객보다 반 발자국 앞서서 관객을 끌어가는 영화도 있지만, 관객의 취향에 맞춰야 할 필요도 있다. 신인들의 트렌드라기보다 2008년과 2009년의 자연스러운 영화적 흐름이 아닐까 생각한다.

-앞으로의 계획은 어떤가.
=한 장르의 장인이 되는 것도 좋지만, 개인적인 만족을 더 염두에 둔다면 늘 새로운 걸 해보고 싶다. 물론 <작전> 스타일의 영화를 다시 만든다면 더 잘 만들 순 있을 텐데, 전혀 다른 장르에 부딪히며 배워가는 어려운 과정이 훨씬 재밌다. 난 이야기를 먼저 생각하고 장르를 거기 맞춰보는 편이다. 어떤 이야기를 떠올렸는데 공포로 가는 게 맞겠다 싶으면 공포 장르를 입힐 것이다.

-장르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건가.
=잘난 척하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는데(웃음), 두려움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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