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년 동안 극장 대신 법원을 지키던 <숏버스>가 드디어 개봉한다. 지난 2007년 4월 수입된 이후 영상물등급위원회로부터 2차례에 걸쳐 제한상영가 결정을 받았던 <숏버스>는 이후 등급분류결정취소소송에 올랐고 지난 1월23일 대법원으로부터 원고승소 판결을 얻었다. 당시 대법원의 판결은 “집단성교, 혼음, 사디즘, 항문성교 장면 등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성’을 주제로 한 영화의 특성상 해당 장면들이 필요한 것으로 보이며 다수 영화제에서 공식 상영돼 예술성을 인정받은 만큼 음란영화라고 보기는 어려워 영등위의 처분은 위법하다”는 것이었다. 여전히 제한상영가 논란이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과연 <숏버스>는 어떤 재판과정을 통해 관객을 만나게 됐는지 궁금했다. <숏버스>의 변호를 맡은 법무법인 한결의 윤지영 변호사를 만났다.
-<숏버스>의 재판은 어떻게 맡게 됐나.
=직접 수임한 것은 아니었다. 아직 경력이 별로 없다. 한결에 들어오기 전에는 영화 관련 창투사에서 일했었다. 이 사건은 <그때 그사람들> 사건을 맡았던 이동직 변호사가 유학을 가면서 맡긴 거다. 개인적으로 존 카메론 미첼의 <헤드윅>을 좋아했던 터라 맡아보고 싶기도 했다.
-재판에서 주장한 것은 무엇이었나.
=일단 제한상영가 규정이 모호하다는 점을 들어 위헌법률심판제청을 했다. 그리고 동시에 설사 제한상영가 규정이 합헌이라고 해도 <숏버스>는 그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걸 입증하려고 했다. 표현과 예술의 자유를 보장하는 측면에서는 규정을 더욱 좁고 엄격하게 해석해야 하는데, 지금의 애매모호한 규정은 법률을 적용하는 사람의 자의적인 해석이 가능하다는 게 변론의 주요 쟁점이었다.
-현 제한상영가 규정으로 해석했을 때 <숏버스>는 어떤 영화였나.
=법리적으로 해석하면 제한상영가의 분류 기준에 해당되지 않는 영화였다. 기준을 보면 “수간·근친상간·혼음을 구체적이고 노골적으로 표현하거나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잔학한 내용”, “성욕 자극만을 추구하여 미풍양속을 해하는 것”, “표현기법 면에서 반국가적, 반사회적, 반윤리적인 것” 등에 해당돼야 한다. 하지만 <숏버스>에는 수간이나 근친상간이 등장하지 않는다. 혼음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구체적으로 표현하지 않았다. 표현기법 면이 반국가적, 반사회적, 반윤리적인 것이라는 기준에서 볼 때도 <숏버스>가 나치즘이나 북한 정권을 찬양하는 영화는 아니지 않나. 인종 차별이나 아동학대 장면이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주장한 것은 <숏버스>가 아름다운 영상과 음악으로 성을 표현한 영화이며 관객이 사랑과 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라는 것이었다.
-재판과정에서 고비도 있었을 것 같다.
=영등위에서 검증신청을 했다. 말하자면 양쪽 당사자를 비롯해 재판부가 함께 <숏버스>를 보자는 것인데, 영화를 보게 되면 게임은 끝난 거라고 생각했다. 우리나라 재판부는 음란죄를 판단할 때 “일반인의 법감정”이란 표현을 쓴다. 그런데 사실상 재판부가 자신들이 일반인이라고 가정하고 판단하는 것이다. ‘일반인’이란 개념이 오히려 진실을 왜곡할 수도 있다. 그래서 만약 재판부가 <숏버스>를 본다면 분명히 제한상영가가 마땅하다고 판결할 것 같았다.
-그렇게 모여서 함께 영화를 보는 풍경이 어땠을까 궁금하다.
=나와 스폰지에서 나온 직원만 여자였고 나머지 10명 이상은 모두 남자분들이었다. (웃음) 자막이 없는 버전으로 영화를 봐야 해서 장면장면을 일일이 다 설명해야 했다. 논란의 소지가 있는 장면이 나오면 옆에서 이 장면이 왜 필요하고 얼마나 중요한지를 설명하는 것이다. 상대방인 영등위쪽은 별로 말이 없더라. 아마 그들은 재판부가 직접 영화를 보면 왜 제한상영가일 수밖에 없는지 알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변호사가 아닌 관객으로서 <숏버스>를 봤을 때는 어땠나.
=이런 이야기 해도 되나. 사실 개인적으로는 충격적이었다. (웃음) 내가 평소 극장에서 접했던 것과는 차원이 달라서 그런지 막연한 거부감이 생기더라. (웃음)
-변호사 본인의 개인적인 가치관에 반하는 사건도 자주 맡을 텐데.
=난감할 때가 종종 있다. 그렇다고 다른 변호사에게 넘기지는 않는다. 변호사 윤리의 제1원칙은 ‘의뢰인이 원하는 것에 맞추는 것’이다. <숏버스>도 내 개인적인 감정과는 달랐지만 할 수 있었던 건 그런 윤리 때문이다. 물론 귀를 기울여서 마음을 열고 마인드를 바꾸는 자세가 필요하다. <숏버스>도 4, 5번 정도 보니까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흔히 강간이나 성매매 장면에 대해서는 관대하지 않나. 오히려 그런 이상한 관대함이 왜곡된 성의식을 주입하는 것일 텐데, 나도 그 틀에 갇혀 있었던 것 같더라.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