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인터뷰]
[가상 인터뷰] <말리와 나>의 말리
2009-03-04
글 : 김도훈
“개로 사는 편이 낫네요”

-기자님은 요즘 왜 이렇게 동물들만 만나시나요.
=엥? 말리씨. 그게 무슨 말이죠?

-4주 전에는 <워낭소리>의 소님을 만났잖아요. 그러더니 이번주는 개를 만나시기로 하시고. 이유가 궁금해서요.
=휴, 이유를 말씀드리기가 조금 난감한데. 에이, 말씀드리죠. 사실 요즘 영화를 통 못 봤어요. 기사 쓸 영화만 겨우겨우 보고 있는데다가 최근에는 시사회를 역삼동 메가박스나 CGV왕십리에서 하는 일도 늘어나서.

-귀찮음?
=네, 귀찮죠 사실. 시사 한번 갔다오면 하루가 다 가니까요.

-게으르시군요 적잖이.
=제가 좀 그런 편이에요 적잖이. 하지만 이유가 하나 더 있어요. 왠지 요즘은 세상 돌아가는 꼴도 수상하고 경제도 난삽하고. 또 그런 세상에 살다보니 머리 복잡한 인간들이랑 만나서 머릿속에 들어 있는 걸 캐내는 것도 다 무상하더라고요. 내 머리도 복잡한데 남의 복잡한 머리 들여다보는 것도 머리 아파요.

-피곤하시겠어요. 개로 사는 편이 훨씬 낫겠네요 정말.
=하이고 이 사람아. 아니, 이 개야. 당신처럼 플로리다주 중산층 기자 커플의 애완견으로 사는 거랑 공덕동 길거리의 길 잃은 개로 사는 건 전혀 다른 일입니다요. 요즘 한국 꼬맹이들은 버릇없는 부모들이 왕처럼 키운 탓에 하나같이 못되먹었어요. 그런 꼬맹이들이 돌멩이라도 들고 달려와서 해코지할 걸 생각하면…. 게다가 공덕동은 오래된 보신탕집도 많아서 조심해야 합니다. 애완견으로 키워져도 문제죠. 일년에 한국에서 버려지는 애완견이 얼마나 많은 줄 아십니까. 요즘 인간들은 작고 귀엽다고 집에 데려와서는 똥도 못 가리고 밥값도 없다며 엄동설한에 길거리에 버리면서 죄책감도 못 느끼는 병맛들이에요. 얼마 전엔 애들 키우는 주부 하나가 새끼 몰티즈가 짖는다고 입을 고무줄로 3일 동안 묶어서 결국 입 주위가 괴사….

-악, 악, 그만하세요. 그만하세요.
=죄송합니다. 제가 급흥분을 했네요. 개 이야기만 나오면 나도 모르게.

-하아 하아. 지옥을 엿본 기분이에요. 한국에서 다시 개로 환생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아, 그래도 개를 사랑하는 사람들도 많은 나라입니다. 너무 놀라지 마세요.

-개를 먹는다면서요.
=거기까지 가지 맙시다 말리씨. 문화상대주의 이야기까지 나오면 머리 아파요.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제가 이번주는 좀 편하게 가려고 말리씨를 부른 거거든요. 우리 개 이야기 해요. 개 이야기. 귀여운 강아지 이야기.

-아 네. 강아지를 키우시나봐요?
=… 키웠… 었죠.

-그럼 지금은 어디에?
=지난해 가을에 무지개 다리 건넜어요. 부모님이 기르던 개예요. 작은 요크셔 테리언데 너무 몸이 작아서 그런지 잔병치레를 엄청 했어요. 그러다가 폐가 갑자기 안 좋아졌고요.

-명복을 빕니다. 제가 천국에 온 지 얼마 안돼 아직 많은 개들을 만나지는 못했는데. 만나면 안부 전해드릴게요. 모든 개는 천국으로 오거든요. 그러니 당연히 기자님 개도 여기 있을 겁니다. 참, 만나면 아는 척을 해야 하는데 이름이?
=뽀삐요.

-뭐 전할 말이라도 있으십니까.
=그게… 제가 하필 일본으로 휴가를 가는 날이었거든요. 뽀삐가 산책시켜달라고 막 조르더라고요. 짐을 싸느라 너무 바빴습니다. 귀찮은 나머지 돌아오면 놀아주겠다며 입 닦았어요. 그런데 돌아왔더니… 만나시면… 꼭 미안하다고 전해주세요. 임종을 지키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아직도 핸드폰에 사진을 담고 다닌다고도요. 그리고 이 말도 전해주세요. 너가 세계 최고의 개였어.

-멍!멍! 책임지고 전해드리겠습니다. 어떤 개든 주인에게는 세계 최고의 개죠. 암요, 그렇고 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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