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한민] 주제? 러브 이즈 커뮤니케이션!
2009-03-04
글 : 정재혁
사진 : 오계옥
<핸드폰> 감독 김한민

<극락도 살인사건>의 김한민 감독이 또 한편의 스릴러를 완성했다. 제목은 <핸드폰>. 하지만 그의 스릴러엔 항상 무언가가 하나 더 있다. 2007년 개봉한 <극락도 살인사건>은 스릴러 장르에 호러, 코미디를 곁들인 영화였고, 2월19일 개봉해 현재 상영 중인 <핸드폰>은 스릴러의 틀 안에서 한국사회를 바라보는 작품이다. 핸드폰을 분실한 남자와 핸드폰을 습득한 남자의 밀고 당기는 싸움을 바탕으로 두 남자의 일상과 사회적 조건이 씨줄과 날줄처럼 엮인다. 한국영화계에선 불모지에 가까운 스릴러 장르에 두번이나 도전한 남자. 그의 <핸드폰>은 스릴러를 잘 구워 삶았을까. ‘한국형 스릴러’, ‘생활형 스릴러’가 유일한 비책이라 말하는 그를 청담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다소 미지근한 관객 반응에 기분이 담담하다지만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 김한민 감독의 핸드폰은 꽤 자주 울렸다.

-뚜껑은 열렸다. 기분이 어떤가.
=담담하다. 음, 담담하다. (웃음) 흥행은 조금 아쉬운데 지금이 비수기라고 하니. <마린보이> <작전> <핸드폰>이 비슷한 시기에 개봉하면서 관객이 그냥 또 다른 스릴러라고 생각해버리는 것 같다. 또 시기적으로 지금은 따뜻한 영화만을 선호하는 것 같기도 하고.

-이번 영화는 <극락도 살인사건>과 달리 오리지널 각본이 아니더라.
=2008년 3월 말에 시나리오를 받았다. 왜 아직까지 IT 강국인 우리나라에서 이런 기획이 없었나 싶더라. 기획의 신선함이 좋았고 장르적이면서 장르적이지 않은 부분들이 돋보였다. 나는 이 영화를 생활 스릴러라고 부르는데 캐릭터의 요소들, 생활의 느낌이 묻어나는 디테일들이 좋았다. 내가 이 영화를 연출한다면 스릴러란 장르를 좀더 발전시킬 수 있겠구나 싶었고. ‘김한민표 영화’로서 자신있기도 했다. 사실 흥행까지 잘돼서 이런 얘기하면 목소리 더 키울 수 있겠지만. (웃음) 그냥 담담하다.

-처음부터 주인공의 직업이 매니저와 마트 직원이었나.
=그렇다. 핸드폰을 분실했을 때 가장 고통받을 수 있는 사람은 연예기획사 대표고, 핸드폰을 습득했을 때 가장 이중적일 수 있는 사람은 감정노동자, 마트 직원 같은 사람이라 생각했다. 연예인을 끼고 있는 화려한 매니지먼트사 대표와 서민적이고 일상적인 공간의 마트 직원. 이 상반되는 인물이 함께 그려지면 재밌을 것 같았다.

-영화 시작부터 오승민(엄태웅)이 꽤 오래 입고 나오는 새파란 슈트가 인상적이었다. 일부러 그런 흔하지 않은 색의 옷을 입힌 이유가 뭔가.
=정확한 컬러는 코발트 블루다. 일단 오승민이 매니지먼트사 대표니 정장을 입어야 할 텐데 검정이나 무채색 계열이면 영화가 너무 묻힐 것 같더라. 일상적이지만 일상적이지 않은 어떤 지점을 찾는 게 이번 영화의 화두였고, 그런 점에서 블루가 적합했다. 그냥 블루면 MBC 해설의원 같으니까 조금 다크하면서 중후한 느낌의 코발트 블루. 또 배우가 소화를 잘하더라. 예절, 격식을 차리려 하지만 항상 뭔가 튀는 느낌의 승민 캐릭터와도 잘 어울렸고.

-핸드폰의 모티브 외에도 감정노동자 정이규(박용우)의 서비스성 멘트들이 영화의 중요한 포인트가 된다.
=우리 사회에서 특히 심한 것 같다. 예의를 중시하고 격식을 차리고 존대를 하고 겸양을 취하는 게 미덕인 풍토다. 그러니 그 안에서 스트레스가 많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익명적인 공간, 사적인 공간에 들어가 과격하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스트레스를 표출하기도 한다. 예전부터 이런 생각들을 계속 해왔는데 <핸드폰> 시나리오를 보니 그게 감정노동자란 개념으로 정리되더라. 정이규 캐릭터는 현재 한국사회를 반성해볼 수 있는 캐릭터가 아닌가 싶다.

-음악 사용이 의외인 곳이 있었다. 여배우 섹스 동영상이 인터넷에 올라 모든 게 무너져내린 상황에서 오승민의 뒤로 흐르는 노래가 매우 끈적하더라.
=아, 태웅이 뒷모습에서 박용우 뒷모습으로 이어지는 대목? 그 부분은 두 사람을 정서적으로 받쳐주자는 의도였다. 두 사람의 동질성을 표현하고자 하는 의도도 있었고. 사실 스릴러다운 음악을 넣어보기도 했는데 맛이 없어지더라. 조금 의아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곡이라 생각했지만 그래도 과감하게 밀어붙였다.

-인물들의 디테일이 매우 상세하고 또 많다. 정이규는 아픈 모친을 모시고 있고 오승민은 아내와 소통을 하지 못하며 임신에도 실패하고 있다. 시나리오에 있던 설정들인가.
=원래 있던 설정이고 내가 각색을 하면서 더 강화됐다. 내가 이 영화에서 가장 끌렸던 점은 캐릭터였다. 캐릭터의 사회적인 맥락뿐 아니라 개인적인 설정들도 강화하고 싶었다. 본래 시나리오에선 이규가 사이코처럼 변해가는 느낌이 더 강했다. 하지만 그걸 좀더 개연성있게, 공감대있게 그리자는 마음에 이규의 개인적 공허함, 외로움을 추가했다. 이규가 정연(박솔미)에게 호감을 갖고 접근하는 것도 그 이유에서다. 캐스팅도 잘됐다. 실제로 엄태웅과 박용우는 대비가 잘된다. 여자친구 사귀는 방식도 다르고 연기 방식도 반대다. 엄태웅은 스폰지 같고 용우는 계산하는 식이고.

-인물들의 드라마가 많다 보면 스릴러의 긴장을 이끌어가는 데 방해가 되는 것도 사실이다. 이를 조절하는 게 힘들었을 것 같다.
=밸런스의 문제다. 편집을 하다 보면 영화의 흐름이 느껴진다. 속도. 그런데 어쩔 때는 드라마가 그걸 방해한다. 갑자기 멈춰서서 이야기를 해야 하는 상황인 거다. 속도를 방해하지 않으면서 드라마를 만드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어차피 연출자의 몫이다. 개인적으론 잘 버무렸고 어울렸다고 생각한다. 또 캐릭터의 드라마와 장르적인 법칙이 부딪히면서 나오는 효과도 중요하다고 봤다. 장르와 드라마를 묶는 게 쉬운 일은 아닌데 그 부분을 달성하는 게 한국에선 상업영화로 어필할 수 있는 한 지점이기도 하다. 이건 <극락도 살인사건> 때부터 갖고 있던 생각이다.

-이번 영화에선 특히 드라마에 집중한 느낌이 들었다.
=드라마를 일관되게 표현하는 거, 그게 이번에 중요한 지점이었다. 누군가가 이 영화의 주제가 뭐냐고 묻기에 내가 그랬다. 러브 이즈 커뮤니케이션. 왜 소통을 안 해서 그렇게 파국까지 가? (웃음) 결국 치정멜로였던 것 같기도 하다. 오승민이 왜 그렇게 핸드폰을 찾으려고 하나. 여배우 동영상이 아니다. 결국 아내의 외도, 그 상대 남자의 수족상해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드라마가 더 필요하다. 정이규란 인물도 마찬가지다. 감정노동자로 살아가다가 사적인 외로움을 못 참고는 주운 핸드폰으로 이야기를 하려 한다. 어떻게 보면 측은지심 스릴러가 아닌가도 싶다. (웃음) 인물들이 다 불쌍하다. 정연도, 이규도, 승민도. 소통을 위해 존재하는 핸드폰이 불소통의 매체가 되는데 아이러니하면서 참 매력적이더라.

-결말에서 승민이 부인을 죽였다는 게 드러나는데 굳이 거기까지 갈 필요가 있었을까 싶더라.
=그거 역시 장르적일 것인가, 아니면 장르를 벗어날 것인가의 문제다. 이야기를 단순히 오승민과 정이규의 대결로 끌고갈 수도 있다. 관객은 그걸 더 원할 거다. 하지만 그러려면 정이규가 완전히 사이코가 되어야 한다. 복수심 때문에 남의 집에 들어가 여자를 위협하는. 그리고 오승민은 아내를 구하기 위해 자기 집에 가는 거겠지. 하지만 그건 너무 컨벤션하지 않나. 할리우드 장르영화에서 많이 봐왔던 거다. 결말이 그렇게 되면 난 이 영화가 소모적인 장르로 끝나버린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나는 처음부터 캐릭터가 갖고 있는 사회적인 고충들을 계속 이야기하고 싶었다. 개인적으론 매우 세련된 결말이었다고 생각한다. 형사들에게 추궁을 받던 오승민이 아내 뱃속의 아이가 본인의 아이임이 밝혀지면서 공식적으로는 형사의 추적에서 벗어난다. 하지만 사실 그의 마음은 더 무너져내린다. 무릎을 탁 쳤었다. (웃음) 바로 이거라고.

-영화를 보면서 이규의 등장 시점이 좀 늦다는 느낌을 받았다.
=많이 당긴 거다. (웃음) 이건 모 아니면 도 게임이다. 범죄 스릴러물로서 영화를 몰고간다면 이규의 익명성을 더 유지하다 후반부에 등장시키는 방법이 있었을 테고, 그렇지 않다면 더 일찍 까놓고 가는 거. 하지만 내가 생기에는 관객이 인물에 대한 궁금증을 갖다가 어느 순간 인물이 나타나 일상적인 업무를 하고 있을 때 느껴지는 소름, 두려움이 있을 것 같았다. 일종의 선택의 문제였다. 더 장르적인 걸 기대했던 관객이라면 아쉽고, 느리다고 느꼈을 테지만 그게 또 새로운 시도라 생각한다.

-역시 이번에도 그냥 스릴러는 아니다. <극락도 살인사건>에선 장르의 변용으로 영화를 완성했는데 이번엔 스릴러에 캐릭터 설정, 사회드라마를 덧댔더라.
=일단 대중과의 접점이라는 점에서 장르를 무시할 순 없다. 하지만 장르가 공허하면 재미가 없다. 할리우드영화에서 느껴지는 허함도 달갑지 않다. 관객의 입장에서 많이 느끼는 거다. 하지만 장르를 뭔가와 버무린다면 허하지 않게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선 오히려 그런 영화들이 더 상업적이고 대중적일 수도 있다. <극락도 살인사건>에서 한 차례 좋은 결과를 봤고, <핸드폰>에서 다시 한번 시도한 거다. 결국 대중, 상업영화를 하는 감독의 고민은 감독의 영혼, 메시지와 관객의 흥미 사이의 밸런스 찾기인 것 같다.

-<극락도 살인사건>과 <핸드폰>. 스릴러 두편을 해보니 어떤가.
=스릴러를 고집하는 건 아니다. 내가 내러티브가 강한 영활 좋아하다보니 여기까지 왔다. 스릴러를 또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다. 공포, 코미디를 할 수도 있다. 다만 영화를 하나둘 만들어보니 메시지, 주제가 중요해지더라. 그쪽에 더 끌린다. 헐리우드에서 억만금 주고 철저한 장르영화 만들라면 할 수도 있겠지만(웃음) 2, 3년에 한편 찍는 감독 입장에선 허하지 않은, 너무 기획적이지 않은 영화를 하고 싶다.

-심부름센터 세명 중 한명으로 출연도 했다.
=가벼운 마음은 아니었고(웃음), 절실한 마음으로 했다. 원래 출연하기로 한 세분이 있었는데 그중 한분이 스케줄상 힘들다고 했다. 어설프게 다른 출연자 쓰기보다는 내가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 출연했다. 이상한 말투로 대사를 하면서. (웃음)

-준비하고 있는 작품은 뭔가. 예전엔 일제시대가 배경인 영화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고 들었는데.
=내가 민족 시리즈를 부르짖는 사람이라. (웃음) 희곡을 감명 깊게 읽은 게 있어 작품 하나를 준비했었다. <핸드폰> 하기 전까지 시나리오 쓰고 개발했는데 30년대가 배경이고 제작비가 좀 큰 영화라 투자가 잘 안됐다. 다시 해볼 생각이다. 차기작은 좀더 장르적으로 갈까, 아니면 장르를 파괴해볼까 사이에서 고민 중이다. 아니면 장르적인 거 하나 찍고 파괴한 거 하나 찍을 수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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