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아주 먼 옛날 시궁쥐 로스큐로가 수프의 왕국 ‘도르’에서 사람들의 오해와 무지로 여왕을 죽게 한 뒤 도르 왕국은 대혼란에 빠진다. 우리의 영웅 생쥐 데스페로가 이 왕국에 나타나 다시 도르 왕국을 살리고 위험에 빠진 공주도 구한다는 그런 줄거리다. <작은 영웅 데스페로>는 요리 영화는 아니지만 영화의 내러티브에 핵심 노릇을 하는 게 수프다. 할리우드가 지중해의 소박한 요리 라타투이에 재미를 봤는가 보다. 또다시 소박한 남부 유럽 요리인 채소 수프를 가져다 썼으니 말이다.
우리도 국물 요리에 요리 이상의 어떤 상징을 부여한다. 노숙자들이 ‘어허’ 하면서 뜨끈한 국물 한 그릇을 비우는 장면이려야 텔레비전 다큐 프로그램의 ‘그림’이 되지 그들이 설사 최고급 빵집 제품인들 케이크를 물어뜯으면 영 재미없게 되는 거다. 요리의 대가를 묘사하는 영화나 소설 속에서도 눈을 지그시 감고 국자로 국물을 떠먹어보는 장면이 가장 그럴듯하게 차용된다(이 영화에서도 비슷한 신이 나온다). 하긴 일본 열도를 지금도 울린다는 <우동 한 그릇>도 국물 요리이다.
사실 수프를 왕이 사랑하는 고급 요리로 묘사하는 장면은 좀 과장이다. 게다가 등장하는 수프는 라타투이처럼 소박한 서민 수프다. 이 영화의 무대는 중세 유럽일 텐데, 이 시절의 유럽 문화를 평균적인 미국 관객의 선입견과 교양에 대충 두들겨 맞춘 인상이 짙다. 중세 유럽의 왕이 수프 따위에 목숨을 건다는 설정은 코미디 같은 얘기다. 축구공 만한 트러플버섯이나 사냥한 황금색 뇌조의 척수로 만든 수프라면 몰라도.
어쨌든 영화 도입부에 궁정 요리사가 수프를 맛있게 만들려는 지난한 노력이 묘사된다. 왕의 입맛에 착 붙는 수프를 만들어야 한다. 그는 비전의 요리책에서 불러낸 요리 도사에게 비법을 전수받으려고 한다. 이때 마늘이 등장한다. 그까짓 마늘, 할지 몰라도 서양 관객에게 마늘은 맛의 신비를 쥔 열쇠처럼 통용되곤 한다. 마늘을 평생 먹지 않는 사람도 흔한 서양인들에게는 꽤 그럴듯한 소재이다. 여기에다 포도주병이 수프에 빠지면서 수프의 맛을 환상적으로 바꾸는 장면도 나오는데, 술이 음식 맛을 낸다는 것을 신기해할 미국 어린이 관객을 겨냥한 설정이 아닌가 싶다. 술은 학교에서 담배나 코카인과 함께 마약류로 취급되고 교육받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