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단 레이] 혼자 돋보이는 품격
2009-03-05
글 : 정재혁
<블레임: 인류멸망 2011> 배우 단 레이

기품이 느껴진다. 하얀 피부에 곱게 내려간 턱선, 부드러움을 해치지 않는 콧날과 작게 앙다문 입술. 모든 게 재앙으로 뒤덮이는 영화 <블레임: 인류멸망 2011>에서 단 레이는 혼자 돋보인다.

정체불명의 바이러스로 수천만명이 죽어나가는 상황에서 그녀는 평정을 잃지 않는다. 용기와 망설임, 실패와 후회 사이에서 주저하는 쓰마부키 사토시를 감싸는 것도 그녀다. 부드럽고 동시에 당찬 인상. 단 레이는 다카라쓰가란 이름의 일본 여성 전용극단에서 10년 넘게 활동해온 배우다. 1990년 20살에 입단해 대배우 마코토 쓰바사의 상대역을 꿰차기까지 극단 안에서만 20편 넘는 가극을 완수했다. 그리고 2005년. 그녀는 ‘활동의 폭을 넓히겠다’는 마음으로 극단을 나왔다. 갑작스러운 탈퇴로 보였지만 야마다 요지 감독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그녀를 <무사의 체통>에 캐스팅했다.

절도와 기품이 배어 있는 단 레이는 야마다 감독의 시대극 속 헌신적인 여성으로 적합했다. 그녀는 몸을 굽혔고 반대로 마음은 꼿꼿이 세웠다. 단 레이를 ‘보물이라 생각’한 야마다 감독은 바로 다음해 다시 한번 그녀를 또 다른 시대극인 <카아베에>에 기용했다.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무너져가는 가족을 소재로 한 이 영화에서 단 레이는 잃어서는 안될 어떤 품격처럼 보였다. 천생 타고났거나 10년 넘는 무대 경험이 그녀에게 새기고 간 것들이 오롯이 드러났다. 단 레이는 아직도 스크린보다 엄한 무대의 기억을 떠올리며 “나에겐 매일 오르는 무대지만 관객에겐 그날만의 특별한 무대다”라고 말한다. 그리곤 “두근두근 뛰는 가슴으로” 촬영에 임한다. “서툴러 힘들지”만 “결코 익숙해져 편하게 하고 싶지는 않다”는 게 그녀의 연기론이기 때문이다. 요즘 시대엔 어울리지 않는 다소 미련한 말들. 하지만 이는 단 레이가 갈고닦아온 배우의 품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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