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인터뷰]
[가상 인터뷰] <그랜 토리노>의 몽족 소녀 ‘수’
2009-03-18
글 : 김도훈
미국과는 무슨 관계신가요?

-흐몽족은 처음 들어봤어요. 인류학에 대한 제 무지를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뭘요. 우리는 소수민족이어서 아는 사람들이 사실 별로 없어요. 지금부터 배워나가시면 되죠 뭐. 그리고 흐몽족이 아니라 몽족입니다.

-아하, 그렇군요. 영어로는 Hmong이라고 쓰기에 ‘흐몽족’으로 읽어야 하는 줄 알았어요. 프랑스 애들은 제일 앞에 오는 H를 묵음으로 하던데. 제 친구 중에 프랑스 애가 하나 있는데 걔는 아침에 만나면 만날 ‘알로! 알로!’ 그랬죠. 킥킥.
=아… 네.

-제가 시답잖은 소리를 했네요. 죄송합니다. 그나저나 몽족은 어디서 온 민족인가요?
=몽족은 주로 중국 남서부와 동남아시아 북부의 산악지방에 거주하고 있는 민족이에요. 베트남, 라오스, 미얀마, 타이 북부 지방에서 모두 우리 몽족을 만날 수 있습니다. 백몽족과 청몽족이 따로 있는데 언어는 좀 다르지만 의사소통은 어렵지 않습니다. 누구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지만 몽족의 역사는 꽤 깊습니다. 한(漢)족이 들이닥치기 이전부터 이미 많은 몽족이 황허 유역에 살고 있었거든요.

-이거 너무 내셔널 지오그래픽스러운 질문이긴 하지만, 몽족은 뭘 하며 먹고사나요.
=고산지대에 사는 민족이니만큼 경제력이 그리 좋진 않아요. 과일이나 약초를 재배하고, 또 소나 돼지 같은 가축을 기르는 게 가장 큰 산업이었죠. 그리고….

-그리고?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몽족은 대마나 아편 재배로도 유명해요.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요.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요. 타이, 베트남, 라오스에서 저희는 경제적, 사회적으로 변두리에 위치한 소수민족 중 하나입니다. 아, 요즘은 관광객을 상대로 한 비즈니스도 조금씩 늘어나고 있어요. 그래봤자 여자들이 시장에 나가서 공예품 같은 걸 만들어 파는 정도지만 말입니다.

-영화를 보니 미국으로 이민 간 몽족이 꽤 많은 것 같던데. 그건 왜죠?
=전쟁 때문이에요. 동남아시아 반도의 내전들에 깊게 관여되어 있거든요.

-그럼 본국에서 미국으로 망명을 하셨단 말입니까?
=베트남 전쟁의 숨겨진 희생자들이라고 말해도 좋을 거예요. CIA는 베트남 전쟁 동안 라오스의 소수민족을, 특히 몽족을 무장시켜 베트남의 공산화를 막으려 했어요. 그러나 라오스와 베트남이 결국 공산화하면서 저희는 버려졌어요. 두 나라의 공산정권은 수만명의 몽족을 학살했습니다. 10여만명의 몽족이 타이로 도주했고, 미군을 적극 지원한 몽족 전사 가족 출신들은 미국으로 정치적 망명을 할 수 있었죠.

-거대한 국가들의 정치적 정쟁에 말려든 셈이군요. 그래도 미국이 적극적으로 망명을 받아주긴 했나봐요.
=그렇지도 않아요. 미국은 베트남을 떠나면서 몽족의 운명도 버린 거나 마찬가지니까요. 게다가 베트남과 국교를 정상화한 미국 정부는 2007년에 미국에 살고 있던 몽족 지도자인 방파오 장군을 체포했어요. 혐의가 뭔지 아세요?

-음주운전?
=그럴 리가요. ‘라오스 공산정권의 전복을 기도했다’는 것이 혐의예요.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군요.
=그게 저희들의 모토예요. 이스트우드 영감의 모토랑 일맥상통하는 데가 있지 않나요? 믿을 놈 없는 세상에서 네 몸은 스스로 지켜라.

-어쩜 딱이네요. 아유, 존경스럽게 교활한 이스트우드 영감. 한국인도 중국인 이민자도 아니고 왜 하필 몽족인가 했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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