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요리]
[그 요리] 중국 요리 칼질의 미학
2009-03-18
글 : 박찬일

<음식남녀>는 음식을 매개로 가족간의 사랑, 우정, 인간사의 희로애락을 팔보채처럼 버무려놓은 리안 감독의 영화다. 마지막에는 유쾌한 깜짝 반전까지 양념처럼 얹어놓은 리안 영화의 대표작 중 하나. 나는 ‘요리가 나오는 최고의 영화’로 <바베트의 만찬>과 이 영화를 꼽는다. 드라마도 완벽하게 볼 만하지만, 중국 음식사의 사료로 써도 될 만큼 의미있는 장면들로 가득하다.

오프닝부터 심하게 위를 자극하는 장면이 쏟아진다. 아버지 ‘주사부’가 세딸들과의 만찬을 위해 요리를 한다. 나는 이 장면들이 중국 요리 칼질의 미학을 제대로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넓적한 중화칼 하나로 섬세한 온갖 칼질의 세리모니가 펼쳐진다. 여기다 치이익 하는 기름 요리의 폭발적인 음향이 더해져 넋을 빼놓는다. 총탄이 빗발치는 전쟁영화처럼 ‘5.1채널로 봐야 할 영화’라고 주석을 다는 이유다. 이 영화의 출현 이후 쏟아진 아시아의 수많은 음식영화와 드라마가 이 영화의 ‘아류’라는 주장은 바로 이 오프닝에서 확신을 준다. 직접 확인하시길.

언젠가 이 칼럼에서 내가 최고의 카메라워크로 묘사했던 주방장면도 강력 추천하는 대목이다. 은퇴했지만 친구가 대연회를 앞두고 그의 솜씨를 빌리고자 한다. 그가 오랜만에 친구의 거대한 주방 안으로 들어가는 장면에서 카메라는 춤을 춘다. 운동장처럼 넓은 대만 최고의 주방에서 촬영했다는 이 장면 때문에 대만에서 요리사 지망생이 크게 늘었다지 아마.

나도 나이 든(?) 요리사 처지여서인지 그 대연회가 끝나고 주사부와 친구가 쓸쓸히 술잔을 기울이는 장면에 처연해진다. 혀의 미각을 잃은 주사부는 침통한 얼굴로 술잔을 들이켜며 친구와 대화를 나눈다. 나는 엉뚱하게도,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진땀을 흘리며 대통령 옆을 뛰던 모습이 오버랩된다.

대충 이렇게 마무리할 것 같던 영화는 상상 밖의 반전도 준비하는데, 아무리 오래된 영화라도 스포일러는 스포일러일 테지. 영화 내내 주사부를 늙은이로 묘사하는 이유가 마치 이 반전을 위한 장치처럼 느껴질 정도다. 오천련의 귀여운 모습을 감상하는 건 보너스다. 어쨌든 영화를 보고 중국집에 전화를 걸지는 마시라. 영화 속 요리는 배달 중국집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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