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중훈 회고록]
[박중훈 스토리 5] 악어꼬리에 맞고 지뢰에 놀라고…
2009-03-19
글 : 박중훈 (영화배우)
정리 : 주성철
한국형 슈퍼히어로의 슬픈 운명, 타이와 홍콩에서의 <바이오맨> 촬영 뒷이야기
<바이오맨>에서 맨손으로 악어를 때려잡는 모습

<바이오맨>은 그 누구도 시도하지 않던 한국형 슈퍼히어로 장르의 괴작이다. 그 처참한 실패를 이듬해 <영구와 땡칠이>(1989)로 만회하긴 했지만 <바이오맨>은 ‘SF 성인 액션 장르’라는 전대미문의 시도였다. 아버지와 공학박사인 형 영일(남성훈)은 비밀리에 무언가를 연구하고 있었는데 그만 그 반도체 설계도가 괴한들에게 탈취되고 만다. 껄렁껄렁한 말썽쟁이 차남 도일(박중훈)이 그것을 되찾으려 하다 괴한들의 총격에 쓰러진다. 영일은 죽기 직전의 도일을 최첨단 과학을 총동원하여 가공할 능력을 지닌 사이보그 인간으로 재생시킨다. 그때부터 도일은 인터폴 수사요원 석도(신우철)와 신비스러운 여자 수지(신미아)의 도움으로 악당들을 일망타진하러 나선다. 바로 <바이오맨>은 애니메이션 장르를 넘어 <우뢰매>와 <슈퍼 홍길동> 시리즈로 승승장구하던 김청기 사단의 야심작이었다. <터미네이터> <람보> <로보캅>의 영향을 짙게 느낄 수 있는 <바이오맨>은 처음부터 성인용으로 기획된 장르였기 때문이다. 뭔가 좀 껄렁껄렁하고 장난기 많은 박중훈의 캐릭터는 <바이오맨>에서도 계속됐다. 하지만 이 영화의 실패 이후 그가 박광수, 장선우, 이명세 등 당대를 대표하는 감독들의 얼굴이 된 것은 참 묘한 운명이다.

<칠수와 만수>를 끝낸 다음 김청기 감독에게서 연락이 왔다. 나 역시 어렸을 때 <로보트 태권브이>를 보고 자란 터라 김청기 감독과의 만남은 신선했다. 조명화 감독과 함께 만났는데 <바이오맨>이라는 실사영화를 준비하고 계신다고 했다. 당시 김청기 감독은 애니메이션뿐만 아니라 실사영화로도 굉장히 흥행 중이었는데 1986년 시작한 <우뢰매>가 5탄까지, 1987년 시작한 또 다른 시리즈 <슈퍼 홍길동>이 속편까지 나온 때였다. “우리나라도 정말 제대로 된 SF 액션영화를 만들 때가 됐다”면서 나를 설득하셨는데 <바이오맨>은 분명히 ‘한국형 <터미네이터>’를 지향하는 영화였다. 제작비가 만만치 않을 것은 뻔했는데 <우뢰매>와 <슈퍼 홍길동>으로 벌어놓은 돈이 꽤 되니까 그때가 적기라고 하셨다. 한국식 슈퍼히어로라고나 할까. 나 역시 우리나라에도 그런 영화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크게 공감했고, 무엇보다 보여주신 시나리오가 너무 좋았다. 뒤늦게 이런 얘기를 하면 웃을지도 모르지만 정말 그랬다.

‘두두두’ 총소리가 ‘마사지마사지’로

타이와 홍콩 로케이션을 예정하고 있다는 사실도 즐거웠다. 그전에 <밤을 잊은 그대에게>를 진행하면서 프랑스 TF1의 <국경 없는 게임>이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돼 1주일 정도 프랑스를 다녀온 적 있는데, 당시는 해외여행 자유화 이전이라 그런 기회가 흔치 않았다. 누가 미국 갔다 왔다 하면 동네 사람 다 모여서 그 얘기 듣던 시절이니까. 먼저 타이로 떠났는데 <람보2>에 출연했던 엑스트라들을 데려다 <콰이강의 다리>를 찍기도 했던 칸차나부리에서 촬영을 시작했다. <님은 먼 곳에>도 그곳에서 찍었다고 하더라. 김청기 감독은 전체 총감독으로 관장하는 분이었고 실제적인 촬영은 조명화 감독 지휘 아래 이뤄졌다.

주로 액션장면들을 촬영했는데 거의 람보처럼 M60 기관총으로 마구 갈기는 장면들이 꽤 있다. 총알 하나에 3만원 정도라고 하면, 화면상에서 “이야아~” 소리 지르면서 ‘두두두두두두’한 뒤 컷 하면 그게 30만원이다. 그렇게 한 장면 찍는 데 30만원 들고 NG 포함해서 100번 정도 찍으면 3천만원인 셈인데 당시 한국영화 제작비로 1억, 2억원 하면 많다고 할 때니까 엄청난 거지. 그러니까 몇번 안 쏴도 사람들은 일단 막 쓰러져야 한다. 한방에 3명 쓰러지는 것처럼 과하게 마구 쓰러지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었다. 그렇게 총알 하나에 타이 마사지 한번 받을 수 있는 돈이 매일 날아가니까 조명화 감독은 농담으로 ‘두두두’ 하는 소리가 ‘마사지마사지마사지’ 하는 소리로 들린다고도 했다.

나는 바이오맨이다 보니 그렇게 매일 싸워도 지쳐서는 안된다. 터미네이터 같은 설정이니까 지치지 않고 총을 쏘고, 날고 차고, 사람을 집어던져야 한다. 그러니까 아침에 일어나면 계속 액션신들을 찍는 거다. 해 떨어지면 촬영이 끝나니까 처음에는 저녁때 유흥을 즐기고 싶은 생각도 있었는데 도저히 피곤해서 그럴 수가 없었다. 칸차나부리에서 캠프를 날리는 신을 촬영할 때는 액션하던 도중 피곤해서 그냥 기절해버린 적도 있다. 그 상태로 주변에서 뻥뻥 터지는데도 10시간 이상을 잤다고 한다. 환경 역시 열악했다. 요즘 촬영현장에서는 주연급 배우들에게 스위트룸을 주기도 하고 비행기도 비즈니스석을 주고 그러지만 그때의 나는 ‘청춘스타’면 뭐 하나, 방콕에 있는 나라이 호텔이라고 별 2개짜리 호텔에 묵었는데 정말 거짓말 안 보태고 천장에 도마뱀 30마리 정도는 늘 붙어 있었던 것 같다. 그게 나은 정도였으니 다른 스탭들 숙소는 어땠겠나.

<바이오맨> 최고의 압권은 역시 악어와의 결투신이다. 의외로 내가 그런 걸 좀 무서워하는데 그걸 알고는 촬영 전에 조명화 감독이 악어농장으로 데려갔다. 악어가 무섭지 않고 인간에게 친근한 동물이라는 걸 보여주려고, 악어 입 속으로 숙달된 조련사가 머리를 들이밀고 하는 장면을 보여준 거다. 나는 그런 장면을 찍을 게 아니고 악어랑 싸우는 거니까 그 모습을 보고 더 아찔했다. 어쨌건 촬영은 시작됐고 상대 여배우인 신미아가 늪에서 샤워를 하던 도중 악어를 발견하자, 내가 “이야아아~” 하고 뛰어들어 악어와의 사투 끝에 제압하는 장면이었다.

늪에서 칼 문 채 진흙 벌레 다 먹고^^

먼저 악어에게 마취주사를 놓고 촬영을 시작했는데 입 모양을 통제하려고 피아노줄을 아가리에 묶어놓았다. 그런데 촬영감독이 먼저 늪에 허리 정도까지 들어갔는데 세상에 카메라가 고장이 난 거다. 카메라 손보는 데 30분 정도 걸렸다. 그리고 밀림의 늪이 보기에는 운치있어 보여도 더운 날씨에 고인 물이라 실제로는 굉장히 더럽다. 손만 살짝 넣어도 벌레들이 장난 아니게 들러붙는다. 몸을 담그고 있으면 그 불쾌감이 장난이 아니다. 당연히 신미아가 늪에 들어가는 걸 거부했지. 당시 신미아는 서울대 출신의 모델이라고 굉장히 화제가 된 배우였는데 <바이오맨> 역시 상대배우가 나라는 걸 알고 선뜻 계약한 경우였다. 그래서 굉장히 좋은 마음을 갖고 있었는데 상황이 그러다보니 그 배우가 너무 미운 거다. 난 빨리 촬영 끝내고 싶은데 계속 촬영이 지연되니까.

그런 승강이를 하느라 시간이 꽤 흘렀고 겨우 설득을 해서 촬영을 시작하게 됐다. 그런데 이걸 또 어떡하나. 시간이 지체되는 바람에 악어가 마취에서 깨어나기 시작한 거다. 악어와 싸우다가 악어 꼬리로 배를 정통으로 맞았는데 정말 죽는 줄 알았다. 그거 제대로 맞으면 바로 장 파열이라는데 나 역시 배에 힘이 잔뜩 들어간 상태에서 맞아 그대로 기절했다. 그래서 그 배우가 정말 미웠다. 다른 늪 장면도 비슷했다. 내가 람보처럼 입에 칼을 물고 늪 속에 잠겨 숨어 있다가 스르르 진흙이 줄줄 흘러내리면서 머리만 나오는 그런 장면 있잖나. 그게 보기에는 멋있어도 실제는 참 초라하다. 사실 그런 거 플라스틱 재질로 된 가짜 칼을 물고 있어도 되는데 그게 없어서 두꺼운 진짜 칼을 물고 촬영했다. 그래서 입이 제대로 안 닫혀서 입으로 진흙이랑 벌레들이 다 들어왔다.

지뢰밭 뛰는 장면도 잊을 수 없다. 총탄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그런 게 어디 묻혀 있는지는 알고 뛰어야 되는데 오히려 사실감을 높이기 위해서 그 묻혀 있는 자리를 안 가르쳐주고 촬영을 시작한 거다. 난 예고없이 여기저기서 팍팍 폭발하니까 정말 놀랐다. 내가 아역배우도 아니고 그걸 안 가르쳐주면 어떡하나. 그 장면에서 내가 우스꽝스럽게 뛰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이런 세 가지 일이 거의 비슷한 시기에 일어나자 드디어 폭발했다. 다시 서울 돌아간다고 난리를 부린 거다. 음식이 마음에 드느냐면 그것도 아니었다. 그 오지에서 타이 닭튀김에 파 두쪽으로 늘 점심을 먹었다. 그 습기 많고 더운 날씨에 눅진눅진한 튀김요리를 생각해봐라. 김치는 없었냐고? 칸차나부리 가기 전에 방콕에 있는 한국 식당에서 흰색 휘발유통에 김치를 가득 받아왔다. 그런데 그걸 엔진 옆에 둔 거다. 나중에 그걸 발견했을 때는 부풀어 올라서 휘발유통이 폭발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다 시어버린 거지.

우여곡절 끝에 타이 촬영을 마치고 홍콩으로 넘어갔다. 그래도 홍콩이니까, 하는 생각에 다시 기분은 좋아졌다. 1주일 정도 머무를 생각이었는데 분량상 3, 4일 안에 빨리 촬영을 끝내면 한 며칠 쉬면서 쇼핑도 할 수 있을 거라고 들떠 있었다. 영화상에서는 타이보다 앞선 장면인데 홍콩에서 신미아를 만나 타이로 떠나는 거다. 그런데 정식 촬영허가를 받은 게 아니라 거의 도둑촬영을 하다시피 했다. 홍콩 카이탁 공항에 도착한 내 모습을 저 멀리 2층에 숨어 있는 카메라가 촬영했는데 주변 사람들이 다 쳐다봤다. 더운 날씨에 나 혼자 두꺼운 양복 입고 선글라스를 낀 채 슥 나타나니 다들 미친놈이라고 했을 거다. 게다가 무전기 없이 멀리 있는 촬영감독하고는 손짓으로 계속 사인을 주고받으니까.

상대 여배우 신미아에게 백배사죄하고파

촬영 진도는 생각보다 잘 나가지 않았다. 일단 그전에 촬영 자체가 늦었다. 왜냐하면 타이에서 홍콩으로 옮기는 날 신미아가 호텔에 맡겨둔 물건을 찾아야 한다고 늦장을 부리다가 스탭 절반이 비행기를 놓쳤다. 그러니 상대배우가 더 미워졌다. 그렇게 늦은 채로 홍콩에 온 건데, 차 안에서 대화장면을 촬영할 때는 신미아가 크게 웃고 대화하고 그런 장면들을 잘 못하는 거다. 이젠 거의 촬영 막바지고 그것만 끝내면 바로 쇼핑하러 갈 수 있는데, 당장 내일 한국으로 떠나는 마당에 쇼핑은 고사하고 해지는 순간까지도 그 촬영을 못 끝낸 거다. 내 인생에 큰 실수이기도 한데, 난 너무 화가 난 나머지 잠깐 얘기 좀 하자며 신미아를 불러서 정말 심하게 욕을 했다. 젊은 혈기를 누를 수가 없었던 거다. 사실 그런 여배우가 있을 때는 해외 로케이션 때 남자배우의 역할이 중요하다. 신미아 역시 주변 사람들에게 활달하게 어울리는 성격은 아니어서 내가 그 사이에서 분위기를 잘 잡아야 하는데, 이런저런 악조건들이 겹치면서 아예 포기를 한 면이 있다. 그러니 나 때문에 계약을 했다는 신미아로서도 얼마나 배신감을 느꼈겠나. 촬영을 다 끝내고 한국에 돌아온 뒤, 우연히 한달 정도 있다가 덕수궁에서 신미아를 마주친 적 있는데 큰 거리에서 나와 안 마주치려고 빙 둘러서 가더라. 얼마나 내가 싫었으면 그랬겠나. 내가 정말 백배사죄하고 공개사과라도 해야 할 일이다. 아무리 그런 일이 있어도 상대배우에게 욕을 하거나 해서는 안됐는데. 정말 미안하게 생각한다.

드디어 <바이오맨> 개봉을 준비하는 시기가 됐다. 부끄러운 과거 얘기지만, 그때는 영화사들 대부분이 일간지 기자들에게 촌지를 주면서 홍보하던 시절이었다. 물론 거절하는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거의 기자 한명당 50만원쯤 나갔을 거다. 신문 문화면 자체가 TV 프로그램 옆에 붙어 있는 박스 정도였으니 거기에 소개되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큰 일이었다. 처음부터 성인용으로 기획했던 작품이었기 때문에 그런 쪽으로 홍보를 했다. 그런데 막상 프린트를 뽑고 시사를 하니 전혀 그렇지가 않은 거다. 그래서 방향을 급선회해서 어린이용으로 재포장을 했다. 어린이회관 같은 데서 개봉하고 상영하고 그러면서 죽도 밥도 안된 거지. 그런데 비디오로 굉장한 히트를 쳤다. 지나서는 컬트영화 대접도 받으면서 은근한 마니아층도 생기게 됐고. <바이오맨>의 가장 큰 교훈은 좋은 시나리오도 제대로 된 프로덕션이 뒷받침이 안되면 공수표, 라는 당연한 진리였다. 만약 할리우드 자본으로 찍었으면 대단한 작품이 나왔을지도 모른다. 그게 바로 우리네 열악한 환경과 겹친 한국형 슈퍼히어로의 슬픈 운명이었다.

사진제공 한국영상자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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