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사전에 쳐보니까 ‘역량이나 능력 따위를 모아서 다시 일어섬’ 이라고 나오는 ‘재기’라는 단어는 이제 거의 클리셰다. 잠시 텔레비전에서 사라졌다가 다시 등장해도 재기, 손목 좀 다쳤다가 깁스 풀고 나와도 재기, 웬만하면 재기나 부활 따위를 갖다 붙이니 말이다.
그래서 누가 재기했다는 기사를 봐도 감동적이지는 않은데 지난해 ‘재기’라는 말을 흐뭇하게 곱씹게 했던 인물이 있다. 아직 전성기라는 말을 붙이기엔 좀 뭣한, 그래서 여전히 재기 중이라고 봐도 무방할 개그맨 김국진이다.
내가 일하는 <한겨레> 섹션의 TV대담 코너에서 <라디오 스타>의 초창기 무렵 김국진을 열나게 ‘깠던’ 적이 있다. 하필 공중파 독한 프로그램의 효시가 된 이 코너로 복귀한 김국진은 웃자고 한 (센) 농담에 죽자고 버럭하는 모습을 자주 보였고 그 모습은 생뚱맞다 못해 처연해 보였다. 물론 오래전부터 불쌍해 보이는 이미지의 그였지만 독하고 능구렁이 같은 다른 출연진과 장단을 맞추지 못해 진짜 불쌍해지는 상황이 돼버린 거다. 말 그대로 영화 <라디오 스타>의 몰락한 왕년의 스타를 보는 기분이었달까.
우리의 독한 질타를 그가 봤는지, 그게 약이 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언젠가부터 김국진은 변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체념이었을 거다. 버르장머리 없는 후배들이 결코 자기를 ‘존경하는 대선배’로 대접해주지 않으리라 깨달은 것 같다. 물론 무시당하고 놀림받는 걸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아서 예의 이혼이나 골프 이야기로 공격당하면 얼굴은 벌게지고 코에서는 김이 나왔지만 그는 흐름을 깰 만큼 버럭하지는 않았고 강박적으로 뭔가 이 상황을 뒤집기 위해 억지를 쓰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그의 벌게진 얼굴은 CG로 빨갛게 칠해지고 똥 씹은 표정에 역시 CG로 비가 마구 쏟아지면서 웃음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여자 게스트만 나오면 이상하게 엮는 다른 MC들의 짓궂은 농담을 통해 그는 다시 수줍은 ‘늙은’ 청년으로 점점 돌아갔다. 그렇게 살벌한 정글에서 주춤주춤 적응을 해가더니 걸그룹 카라로까지 전수되는 “예예예” 회춘 댄스를 터뜨리고 사정없는 MC들의 공격에 “원펀치 스리 강냉이”(내가 한번 때리면 이빨이 3개 나간다)라는 귀여운 앙탈 개그로 포효하기에 이르렀다.
요즘 <라디오 스타>에서 가장 덜 뻔한 캐릭터인 그를 보면 재기라는 말보다는 성장이라는 말을 쓰고 싶다. 사람은 죽을 때까지 배우고 성장한다는 게 공자님 말씀만은 아니라는 걸 사십대 중반의 김국진을 보면서 새삼 느끼게 된다. 만약 김국진이 ‘국찐이빵’시절의 그 모습 그대로, 또는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복귀해서 자리잡았다면 성장담이 아니라 그냥 재기담처럼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결과적으로는 다행스럽게도 복귀작으로 ‘지뢰’를 밟는 바람에 이 험한 (오락 프로그램의) 시대에 군내 나는 아저씨의 아집- 왕년의 스타야!- 을 버리고 탱탱하게 맷집 좋은 ‘젊은 오빠’로 돌아왔다. 역시 사람은 맞으면서 커야 큰 그릇 된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