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정애연] 전형적인 역할도 신선하게
2009-03-19
글 : 장미
사진 : 오계옥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 배우 정애연

제나는 거칠 것이 없는 여자다. 사랑하는 이를 위해 파혼해달라고 찾아온 케이(권상우)에게, 그녀는 당신 소망대로 해줄 테니 부탁 하나 들어달라고 한다. “죽어가는 네 모습을 찍고 싶어.” 무감한 인생에 떠오른 단 하나의 욕망. 그녀는 그게 뭔지도 모른 채 움켜쥐려 한다. 당돌하고, 발칙하다. 깊은 상처에 뼛속까지 얼어붙은 제나는 정애연의 몸을 빌려 오만불손하나 매력적으로 살아났다. 줄담배를 피우면서 쏘아붙이는 시선과 카메라를 들고 서성일 때의 담대한 보폭, “내 옆에서 죽어달라”는 통렬한 대사까지 전형적임에도 지루하지 않다. 애초 캐스팅된 최송연이 하차해 촬영 이틀 전에 합류했다는 정애연은 세 남녀의 절절한 삼각관계 속에서도 ‘쿨하고 당당하게’ 스크린을 장악한다.

“내 성격이 가미되면서 캐릭터에 또 다른 색깔이 덧붙여진 것 같긴 하다. 터프한 제나로. (웃음) 처음엔 제나가 작업하는 스튜디오의 컨셉이 화이트였는데 감독님이 나를 찍다보니 강렬한 느낌이 드셨다더라. 그래서 작업실을 선택할 때도 붉은 계열을 염두에 둔 걸로 안다.” 도도한 인상 탓일까. 가장 최근작인 MBC <비포&애프터 성형외과>에선 ‘피도 눈물도 없는’ 윤서진 역을, SBS <소금인형>에선 ‘얼음공주’라 불려도 손색이 없을 서이현 역을 맡았으니, 날선 여인으로 그녀를 기억한다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래도 거기서 끝이라면 섭섭하다. SBS <홍콩 익스프레스>에서 당시로선 놀랍게도 비키니 차림으로 등장하기도 했던 그녀는 어떤 카드를 꺼내들지 몰라 다음이 기대되는 도전적인 배우다.

‘CF계의 유망주’로 이름을 알린 신선한 마스크의 배우 지망생은 본디 무용수였다. 정애연의 손짓에서 어딘지 모를 유연한 기색을 짚었다면 그건 그녀가 동작을 다스리는 법을 일찍이 터득해서일 것이다. “방학 때 언니가 있는 서울로 올라가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어떤 분이 연기를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하더라. 막상 먼저 한 건 모델 일이었다. 그 다음에 CF 찍고, 단막극하고, 드라마하고.” MBC <맨발의 청춘>이 조기종영되면서 잠시 활동이 뜸해지긴 했지만 그녀는 그 사이 연습실 친구들끼리 무대에 올린 연극 몇편을 강렬하게 기억한다. “<클로져> <무쏘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를 각색했다. <맨발의 청춘> 끝나고 바로 했는데, 그때 받은 상처를 극복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너무 재미있었다.” 시작은 우연이었지만 정애연은 지금 연기의 즐거움에 푹 빠져 있다.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