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광수] “나를 권력자로만 보지 말라”
2009-03-25
글 : 강병진
사진 : 최성열
<고死: 피의 중간고사>에 이어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 제작한 코어컨텐츠미디어의 김광수 제작이사

시작은 <무릎팍 도사>였다. 영화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의 개봉을 앞두고 주연배우 권상우와 감독 원태연이 연달아 출연했다. 이게 가능한 일이었나. 배우와 감독이 함께 출연한 것도 아니다. 감독이 출연했는데 배우가 전화 통화로 출연한 것도 아니다. 한 영화의 대표 관계자들이 2주 연속 각각의 고민거리를 들고 강호동을 찾아간 것이다. 전례가 없는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던 건 제작자 크레딧에서 김광수란 이름을 보고난 뒤였다. 청년필름의 김조광수 대표와 헷갈리지 말자. 지난해 <고死: 피의 중간고사>를 제작한 데 이어 올해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를 내놓은 코어컨텐츠미디어의 김광수 제작이사는 엠넷미디어의 컨텐츠 제작사업 본부장인 김광수고, 과거 GM기획의 대표였던 김광수다. 가수 인순이의 로드매니저로 시작해 김완선, 김민우, 윤상 등의 앨범을 제작했고 조성모를 발굴했고 드라마타이즈의 대작 뮤직비디오 시대를 열었던 장본인인 그는 현재도 송승헌과 이효리의 매니지먼트를 하고 있으며 SG워너비, 다비치, 씨야 등의 앨범과 <에덴의 동쪽> 등의 드라마를 제작하는 엔터테인먼트계의 큰손이다. 당연히 업계에서는 <무릎팍 도사>에 권상우와 원태연이 연이어 등장한 것이나,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의 뮤직비디오가 연말부터 방송을 탄 것이나, 프로모션차 마련된 콘서트에 수많은 스타들이 동원된 것이나, 그전에 배우들이 개런티를 낮추며 출연한 것 모두 김광수가 가진 권력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그에게 질투와 부러움을 동시에 느껴도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런데 그처럼 아쉬울 것 없는 연예계의 거물은 왜 지금 같은 위기의 시대에 영화계에 뛰어든 걸까. 2천만장 이상의 앨범을 판매한 음반제작자가 영화제작자를 겸업하면서 세우는 전략은 무엇일까. 몇 가지 의심스러운 궁금증을 안고 영화제작자 김광수를 만났다.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이하 <슬픈 이야기>)의 첫주 스코어가 약 34만명이다. 만족하나.
= 사실 마음속으로는 첫주 스코어 70만명을 기대했다. <고死: 피의 중간고사>(이하 <고死>) 때 보다 몇배 노력했고, 배우진도 좋고, 별 악재도 없었고, 보기에는 나름 잘 나온 것 같았으니까. 그런데 내가 원래 갖고 있던 스코어랑 더블로 차이가 났으니 겁이 날 수밖에. 처음으로 친한 기자들에게 물어보기까지 했다. 나 이제 어떻게 홍보해야 하냐고. (웃음)

- 원태연 시인에게 감독을 적극적으로 제안했다고 들었다. 어떤 가능성을 본 건가.
= 소개로 원태연을 만나게 돼서 시나리오를 읽었는데, 처음에는 별로였다. 그래서 첫 시나리오에서 30, 40% 정도 바꾸는 걸 동의한다면 제작을 하겠다고 했는데, 며칠 뒤 원태연 시인이 하겠다고 하더라. 물론 그에게 연출을 맡기자는 의견에 반대도 있었다. <고死>의 창 감독도 신인이었지만, 그는 드라마 타이즈 뮤직비디오를 이미 몇 십편 찍어본 사람이지 않나. 원태연에게 연출해본 거 물었더니 뮤직비디오를 연출한 적이 있다고 해서 찾아서 봤다. 그런데 나도 찍을 수 있을 것 같더라고. (웃음)

- 그럼에도 굳이 연출을 맡긴 이유는 무엇인가. 마케팅 측면에서 활용하고자 한 것인가.
= 그렇다. 하지만 그가 가진 감성은 필요했다. 원태연이 시와 시나리오를 쓰면서 머릿속으로 그린 감성적인 그림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만약 그가 생각하는 그림을 잘 뽑아낼 수 있는 촬영감독과 조명감독, 미술감독, 편집감독이 있다면 가능할 거라고 본 거지. 그래서 대한민국에서 감각이 가장 뛰어난 촬영감독이 누군지 수소문해보니 이모개라는 결론이 나오더라. 나중에는 이모개 감독과 원태연을 만나게 해서 둘이 술을 자주 먹게 해줬다. 마침 동갑이라서 친구가 되더니 연출을 하는 과정에서도 의견교환이 자연스러워졌다. 원태연으로서는 매우 중요한 과외공부를 할 수 있었던 거지.

- 지난해 <고死>를 제작하면서 영화제작자를 겸업하게 됐다. 영화를 만들게 된 건 어떤 이유였나.
= 오래전부터 영화를 하고 싶었다. 음반제작을 하면서 O.S.T 앨범을 만들다보니까 드라마 PD들을 만나게 된다. 또 연기자 매니지먼트를 하다보니까 영화 관계자들과 술을 마실 때도 있다. 그러다보니 드라마, 영화도 만들고 싶어지더라. 더 솔직히 말하면 이제 더이상 가요시장이, 조성모의 앨범이 200만장씩 팔리던 시절의 시장이 아니라는 거다. 10만장 정도 팔면 베스트10 안에 무난히 들어갈 정도다. 그래서 영화시장에 도전해보자는 생각이 있었다.

- <고死>는 어떤 전략으로 기획했나.
= 나는 순간적으로 생각난 걸 바로 실천하는 편이다. 뮤직비디오 제작 경험은 영화를 만드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됐다. 가수를 데리고 있는 것도 미리 실험을 해볼 수 있는 여건이고. 예전에 조성모의 <아시나요> 뮤직비디오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보고 만들었다. 또 <와호장룡>과 <비천무>를 보고 <명성황후> 뮤직비디오를 만든 거였고. 지난해 <고死> 때도 창 감독에게 먼저 공포 뮤직비디오를 찍어보자고 제안했다. 만든 걸 보니까 무섭더라. 그래서 4월 말에 불러다 학원공포물을 만들자고 했다. 내년 개봉이냐고 묻더라. 그래서 올해 개봉한다고 그랬지. (웃음) 지금부터 한달 뒤에 찍을 거고 촬영기간은 20일 정도라고. 당시 주변 사람들이 말리더라. 지난해에 공포영화들이 다 죽어서 이제 안 만드는 거라고 했었다. 하지만 그건 대중만 탓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영화시장이 어려워도 <과속스캔들>은 터지고, 음반시장이 다 죽었다고 해도 다비치, 소녀시대는 잘된다. 문제는 대중이 선택하는 폭이 좁아진 것뿐이다. 그 폭 안에 들어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 하지만 <고死>의 흥행을 두고 말이 많았다. 공포영화로서 가져야 할 긴장과 이야기적인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 솔직히 <고死>는 쉽게 생각하고 만들었다. 진짜 겁이 없었지. 적절한 이야기 안에서 무섭게 만들면 대중이 받아줄 거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TV에서 <전설의 고향>을 보고도 무서워하니까. 그런데 사실 나도 편집해놓은 걸 보니 안 무섭더라. (웃음) 예고편이 더 무섭네, 그랬다. 관객이 기대하는 리액션이 한 템포 늦은 것 같았다. 그래도 내가 승부를 본 건 마지막 크레딧이었다. 아예 상상을 깨는 내용이 등장하지 않나. 디테일이나 리액션이 약했던 것을 마지막 크레딧이 보충해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고死>의 흥행은 어느 정도 운이 작용했다고 본다. 정말로 운이 좋았던 거지.

- 아무래도 음반제작자가 영화를 만든다고 했을 때, 영화계에서 무조건 긍정적인 시선으로 보지는 않았을 것 같다.
= 대놓고 하지 말라는 사람은 없었지만, 들리는 말들은 있었다. “저 사람이 업계를 흐리는 것 같아” 이런 거? 왜 어느 업계나 공시가격이라는 게 있지 않나. 그걸 덤핑처리하듯 너무 파괴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를 듣는 것 같다.

- <고死>나 <슬픈 이야기>나 제작비를 감축한 부분이 화제가 됐다.
= <슬픈 이야기>는 벌써 김범수가 부른 주제곡의 모바일 수익만 7억원이 났다. 그런데 나는 이 수익을 가지고 다시 P&A 비용에 투자한다. 그래야 순제작비가 낮아질 테니까. 그리고 나는 아예 내 돈을 60∼70% 투자한다. 내 돈이 들어가야 돈을 아끼게 되지 않나. 현장에서 회식을 할 때도 내 개인카드를 쓴다. 물론 나로서는 이렇게 노력했지만, 업계 사람들의 90%는 <고死>가 틈새시장을 노렸기 때문에 흥행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슬픈 이야기>는 아예 처음부터 비수기에 가자고 했다. 꼭 운만은 아니었다고 평가받고 싶었으니까.

- 하지만 객관적 평가는 어렵지 않을까. 단적인 예로 권상우와 원태연 감독이 <무릎팍 도사>에 이어서 출연할 수 있었다는 건 김광수란 사람의 영향력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홍보 이벤트에 수많은 연예인들을 불러올 수 있는 것도 그럴 테고.
= 사실 처음에는 원태연만 부탁했다. 그런데 권상우는 정말 뜨거운 감자 아닌가. 어떤 돌발멘트를 할지 모르기 때문에 예능PD들이 제일 좋아한다. 담당PD가 권상우를 <무릎팍 도사>에 나오게 해달라고 통사정을 했다. 그래서 그럼 원태연을 해달라고 했다. 무비콘서트는 웬만한 가수 매니저들의 20, 30%가 내 밑에서 로드매니저를 거쳐갔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건 그럴 수 있는 거 아닌가.

- 그러니까 그런 딜이 가능한 사람이 영화제작자 중 몇이나 되겠냐는 거다.
= 그건 그렇다. 사실 많은 업계 사람들이 “나도 김광수처럼 방송사에서 밀어주면 히트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나한테는 그게 정말 어마어마한 스트레스다. 정말 말하고 싶은 게, 나는 아침 9시에 출근하면 12시까지 책상에서 단 한 발자국도 안 움직인다. 포털 연예면에만 하루에 300번 이상 들어간다. 보도자료도 다 내가 체크하고 어느 기자에게 전달했는지, 그 기자가 어떤 제목으로 썼는지 다 파악한다. 또 배우들하고도 직접 통화해서 이걸 왜 해야 하는지 이해시키고 설득한다. 한시도 마음을 놓고 살지 않는 거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김광수가 언론사 데스크하고 친해서 언론 플레이도 마음껏 하는 줄 안다.

- 말하자면 김광수를 권력자로 보느냐, 아니면 노력하는 실력자로 보느냐의 차이일 것 같다.
= 그런데 권력자로 보는 거지. 음반으로만 따져보자. 박진영과 양현석은 언제나 실력자로 본다. 그런데 나는 SG워너비나 이효리의 앨범을 아무리 많이 팔아도 권력으로 히트를 친 사람으로 본다. 심지어 영화 관련 뮤직비디오는 개봉 전에 나올 수 없는 게 관례인데, <슬픈 이야기>의 영화장면을 편집한 뮤직비디오가 개봉 전에 나오는 것도 김광수의 권력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나는 그걸 피해가려고 배우들을 데리고 따로 뮤직비디오를 찍은 건데도 말이다. 예전에 조성모의 <To Heaven> 뮤직비디오도 내가 팔 수 있는 건 다 팔고 빚내서 만든 거였다. 나는 실력자가 되고 싶은데, 그런 노력을 모르는 사람들이 나를 권력자로 보고 있다.

- 영화 제작만 놓고 볼 때, 목표는 무엇인가. 칸영화제 레드카펫을 밟는 건 아닐 것 같다.
= 나도 그런 꿈은 있다. 하지만 그렇게 큰 문제는 아니다. 사실 가요를 제작하면서도 그런 상들을 염두에 두고 만들지 않았다. 대중이 듣고 따라부르고 때로는 울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디까지나 나는 대중음악을 하는 사람이니까.

- 29년 동안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해오면서 대중에 대해 정립한 개념이 있을 것 같다.
= 나는 대중과 컴퓨터 게임을 하는 것 같다. 내가 예측한 대중의 반응이 거의 90%는 맞았던 것 같다. 그렇게 볼 때 대중이란 맛있으면 먹고 맛없으면 뱉는 존재다. 그리고 나는 사람들이 먹기 좋아하는 음식을 방부제 같은 것 치지 않고 잘 만드는 사람이다. 중요한 것은 요즘 어떤 사람이 각광받는지를 파악하고 그들과 함께 새로운 트렌드를 맞춰보는 것이다. 영화도 그렇다. 성실히 만들다보면 언젠가는 영화제에 나가는 작품도 만들 수 있을 거다. 요즘도 주변 사람들에게 실력있는 독립영화 감독이 있다면 소개해달라고 부탁하고 다닌다. 타이슨에게 돈킹이란 프로모터가 있었듯이 나도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다. 필요하면 상영관도 많이 잡고, 엠넷 같은 케이블이나 공중파를 이용해 알릴 수도 있다. 그건 권력의 힘이겠지. 하지만 그렇게라도 작품성있는 영화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하고 싶다.

- 차기작으로 준비 중인 작품은 어떤 건가.
= 오는 4월에 방영 예정인 드라마 <신데렐라 맨>이 촬영 중이고, 내년 봄에는 표민수 PD와 함께 <풀하우스>풍의 드라마를 만들기로 했다. 추석 시즌에 내놓을 코미디영화는 강남 건달과 강북 건달의 이야기다. 현재 나온 가제는 <남북전쟁>이다. 쓰러져가는 코미디 클럽에서 만난 두 건달의 이야기인데, <개그콘서트>의 작가를 섭외해 극중에서 보여질 개그 콩트를 준비하고 있다. 이 영화가 개봉하기 한주 전에 주연배우들을 <개그콘서트>에 출연시키려고 한다. 배우들이 영화 속의 콩트를 <개그콘서트>의 방청객에게 직접 보여주는 거지. 만약 거기에서 터지면, 이 영화도 터지는 거다. 하긴 그것도 권력의 힘이겠네. (웃음)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