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통신원]
[세계의 관객을 만나다-델리] 화장실 다이빙 해석의 여지 많아
2009-03-25
글 : 신민하 (델리 통신원)

지난해 말부터 시작된 지방선거와 눈앞으로 다가온 5월 총선으로 델리의 극장 간판은 낯선 얼굴의 주인공들로 가득하다. 스타급 배우들 대부분이 정치유세 현장으로 달려간 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화려했던 지난 시절을 되찾기 위해 정부와 싸우는 지방 왕족 패밀리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영화 <Gulaal>이 그나마 관객을 모은다기에 영화관을 찾았다. 3월16일 오후 1시10분 뉴델리의 프리야 시네마 매표소 앞은 비교적 한산했는데 같은 줄에 서서 기다리던 어느 대학생과 주고받은 가벼운 인사가 인터뷰의 방향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최근에 본 영화 중 <슬럼독 밀리어네어>가 두번이나 볼 만큼 괜찮았다는 얘기를 듣자 <Gulaal>을 위해 준비해간 예상 질문들은 머릿속에서 이미 지워지고 있었다. 영국인 감독이 인도인 스탭과 배우를 기용해서 만든 <슬럼독 밀리어네어>에 대해 과연 인도의 관객은 어떻게 생각할까라는 호기심이 일었다. 우리는 매표소 직원을 코앞에 두고서 줄에서 빠져나왔다.

<슬럼독 밀리어네어>가 인도사회의 한 단면이라면 직접 경험하는 인도는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고 샨은 말한다.

-자기 소개를 부탁한다.
=이름은 샨이고 델리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한다. 나이는 스물두살이다.

-평일날 이 시간에 극장을 찾은 것을 보면 영화를 꽤 좋아하나보다.
=사실 영화감독이 꿈이다. 아무리 바빠도 일주일에 두편 정도는 꼭 챙겨본다. 인도에는 사회과학을 전공하고 영화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도 그런 길을 생각한다. 사실 <그랜 토리노>나 <왓치맨> 같은 영화를 기대하는 중인데 개봉을 좀더 기다려야 할 것 같아서 이 영화를 보러왔다.

-할리우드영화를 인도영화보다 더 좋아하나.
=나의 경우 할리우드영화를 많이 보는 편이다. 물론 인도영화도 좋아한다. 하지만 할리우드영화에서 그려지는 라이프 스타일에서 매력을 더 크게 느낀다. 게다가 질적인 관점에서 볼 때 할리우드영화의 제작방식은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뛰어난 것 같다. 그리고 한국영화도 몇편 본 적 있다. 드라마도 있었는데, <풀하우스>였던가… 재밌게 봤다. (웃음)

-<슬럼독 밀리어네어>를 두번이나 봤다고 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아카데미 수상과도 무관하지 않다. 인도 출신 스탭과 배우가 대거 참여한 영화라는 점은 사실 자랑스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특히 음악상을 A. R. 라흐만이 단독으로 받았다는 점이 그렇다. 또 재미도 재미지만 사회과학 전공자인 나로서는 인도사회에 대해서 많은 부분을 생각하게 한 영화였다.

-이 영화를 어느 정도는 인도영화라고 생각하는 건가.
=물론 그런 것은 아니다. 감독은 엄연히 영국인이니까. 앞서도 말했지만 인도인들이 많이 참여했다는 점에서 좀더 가깝게 느껴졌고, 성과까지 좋은 것 같아 기분이 좋을 뿐이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나.
=영화 초반부에 꼬마 주인공이 뭄바이 슬럼의 야외 화장실 아래로 다이빙(?)하는 장면이다. 온몸에 똥을 뒤집어쓰고 슬럼을 찾은 아미타브 바흐찬에게 사인을 받으러 가는 그 장면이 충격적이라고들 하는데, 난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해석의 여지가 많은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나 역시 영화의 중반부까지 그려지는 인도가 외국인임에도 좀 낯뜨겁게 느껴지더라. 매체들을 보니 이 영화가 인도를 더러움과 가난함의 중심으로 묘사했다고 비난하는 목소리도 있던데 그런 부분은 어떻게 생각하나.
=음… 나는 인도가 가난하다는 사실을 숨기고 싶지 않다. 사실은 사실이니까. 때문에 영화에서 인도가 더럽거나 가난하게 그려진 것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영화에서 인도가 그려진 방식에 대해서 오히려 좋은 기회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무감해진 사실에 대해 한번쯤 다시 생각하게 해주니까. 어쩌면 사회과학을 전공한 사람들이 영화쪽으로 눈을 돌리는 것은 영화의 그러한 기능에 매력을 느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한국에서는 아직 <슬럼독 밀리어네어>가 개봉되지 않았다. 아마도 지금의 인터뷰가 <씨네21>에 소개될 때쯤이면 개봉하지 않았을까 싶은데. 이 영화를 보게 될 한국 관객에게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이 영화를 보고 인도에 대한 편견을 가지지 말아 달라든지 하는 얘기는 하고 싶지 않다. 다만 영화를 보고 인도에 대해 어떤 관심이 생기게 된다면 인도에 직접 와서 보고 듣고 경험하기를 바란다. 그때 보게 될 인도는 또 다른 사실이니까….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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