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통신원]
[세계의 관객을 만나다-베이징] 닝하오 스타일, 리얼해서 좋아요
2009-04-01
글 : 안재민 (베이징 통신원)
저예산, 게다가 유명배우가 출연하지 않는데도 닝하오 감독의 영화는 그 자체로 매력있다는 관객 탕하오

올해 중국에는 건국 60주년을 맞아 국가 이념을 강조하는 ‘주선율영화’(主旋律暎畵: 사회주의적 윤리, 국가·가족 등 집단주의를 고취하는 영화)들이 유난히 많이 제작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중국 관객은 코미디영화에 푹 빠져 있는 것 같다. 3년 전 <크레이지 스톤>으로 중국 대륙에 저예산 상업영화의 신드롬을 일으켰던 닝하오 감독의 신작 <실버 메달리스트>(Silver Medalist)가 개봉 두달이 지난 지금도 꾸준히 관객을 불러모으기 때문이다. 불명예스럽게 은퇴한 사이클 선수가 우연한 기회에 마약상, 킬러들과 얽히며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 이번 작품은 자가복제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전작 <크레이지 스톤>과 동일한 컨셉과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언제나처럼 그닥 많지 않은 1천만위안 정도의 제작비를 들인 이 영화는 이미 1억위안이 넘는 박스오피스를 기록하며 다시 한번 ‘크레이지’ 신드롬을 재현해내고 있다. 베이징의 서쪽에 위치한 ‘UME 화성’ 극장에서 진지한 표정으로 영화를 보고 나오는 탕하오를 만났다.

-영화를 어떻게 봤나.
=색다른 오락영화라고 생각한다. 중국에서는 보기 드문 시추에이션 코미디 장르인데다가 소재나 제재를 풀어가는 방식도 신선하다. 영화 후반부에서는 억지로 상황을 비틀려는 것이 뻔하게 보이기는 했지만, 전반부까지는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스토리 진행과 여러 등장인물간의 절묘하게 얽히는 상황 설정이 돋보였다. 그리고 적절하게 과장되면서도 코믹한 배우들의 연기도 인상적이었다. 대체로 젊은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소재를 잘 포착해낸 것 같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스타일의 영화는 아니다.

-그럼 어떤 스타일의 영화를 좋아하는가.
=생활 속에서 삶의 의미를 생각하게 만드는 현실적인 영화를 좋아한다. 리안 감독의 초기작들이나 양덕창의 영화 같은. 그리고 <북경자전거>도 좋아한다.

-그런데 굳이 <실버 메달리스트>를 본 이유는 뭔가.
=보통 할인이 되는 화요일은 극장에 와서 영화를 자주 보는 편이다. 원래는 <첨밀밀>의 시나리오를 쓴 ‘안서’가 감독한 <친밀>이라는 영화가 보고 싶었는데, 베이징에서 그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이 별로 없다. 그리고 친구들이 워낙 추천을 많이 해서 어차피 <실버 메달리스트>도 보려고 했었다. 닝하오 감독의 예전 영화도 좋아했었고.

-<크레이지 스톤> 말인가.
=아니,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데 <크레이지 스톤> 전에 <녹초지>라고, 지금과는 스타일이 아주 다른 영화를 만든 적이 있다.

-그럼 이후 영화들을 보고 실망했을 수도 있겠다.
=처음 <크레이지 스톤>을 봤을 때는 별로였는데, 이번 영화는 촬영이나 편집도 훨씬 세련됐고, 광고나 뮤직비디오 같은 리듬감이 느껴진다. 특히 음악이 좋았는데 영화에 나오는 느린 멜로디의 노래는 옛날 대만의 대중가요 같은 정서가 느껴진다. 영화 스타일과 화면에 상반되는 이런 설정이 좋았던 것 같다. 그래서 집에 가서 다시 한번 <크레이지 스톤>을 볼 생각이다.

-외국이나 홍콩영화 중에도 비슷한 유의 영화를 찾아볼 수 있지 않나.
=스타일은 비슷하지만 본질적인 것이 다르다. 대사만 봐도 그저 코미디를 위한 것이 아니라, 평소에 관찰하고 생각했던 현재 중국사회의 문제점들을 농담과 말장난을 통해 표현해내고 있다. 이건 단순히 외국영화 스타일을 모방한 다른 중국 상업영화들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점이다.

-닝하오 감독의 다음 작품은 코미디영화가 아니라고 한다. 혹시 알고 있나.
=알고 있다. 신문사에서 일하기 때문에 문화 관련 소식은 자주 듣는 편이다. 요즘 닝하오 감독의 영화는 상업영화로 전환을 모색하는 중국 영화산업의 방향과 잘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있다. 스토리를 풀어가는 방식만 봐도 그렇다. 젊은 관객이 영화에서 기대하는 바를 본능적으로 잘 잡아낸다. 그리고 유명 배우가 출연하지도 않는데도 지금 중국 관객은 ‘닝하오 스타일’ 영화 자체의 매력에 끌려 그의 영화를 본다. 차기작이 어떤 장르, 형식이든 간에 지금보다는 더 특색있는 상업영화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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