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지환은 물론, 배우다. 하얀 피부와 큰 키, 시원하게 뻗은 팔다리부터 매우 그럴듯한. 심지어 <영화는 영화다>에선 도맡은 캐릭터 자체가 영화배우였다. 하지만 배우의 클리셰, 그 점잖은 가면을 벗겨보니 전혀 다른 인물이 걸어나온다. 강지환에게 배우라는 아우라를 입힌 드라마쪽에서도 애초 남자다운 외모를 배반하는 유머스러움, 그 엇박의 매력에 반한 듯했다. <쾌도 홍길동>의 홍길동, <경성스캔들>의 선우완, <굳세어라 금순아>의 구재희 모두 멀쩡한 허우대 아래 허점을 감춘 인간적인 사내들 아니었나. <7급 공무원>의 이재준 역시 비슷한 종류의 남자다. 애인 안수지의 반복적인 거짓말에 지쳐 결별을 선언한 그는 국가정보원 요원으로 그녀와 조우한다. 옛 연인이 경력 6년차 베테랑 요원이니 큰맘 먹고 맞붙는다 한들 공력 차이는 무시할 수 없을 터. 신참요원의 지나친 열정을 코믹하게 변환하는 게 미션의 핵심이었다.
드라마로 얼굴을 익혔다 싶지만 강지환은 이미 두편의 영화를 필모그래피에 올린 영화 유경험자다. “카메라 앞에 서고 싶어 무작정 뛰어들”었던 신동일 감독의 <방문자>와 김기덕 감독이 시나리오를 쓴 <영화는 영화다>. 특히 비범한 액션드라마 <영화는 영화다>로 백상예술대상, 청룡영화상, 대한민국 영화대상 등에서 신인연기자상을 휩쓸기도 했다. 그럼에도 <7급 공무원>은 그에게 “여러모로 극적인” 경험이었다. “먼저 카메라가 두대였다. 장훈 감독님은 진담 반 장담 반으로 우리 필름 너무 많이 썼어요 그랬는데 신태라 감독님은 오케이가 났는데도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더 해보라고 하시더라. (웃음) <방문자> 때도 필름값 걱정 많이 했는데.” 여전한 면모도 있다. 캐릭터들에 몇 가지 디테일을 덧붙이곤 했던 강지환은 이번에도 배우의 기지를 숨기지 않았다. “사실 제스처나 습관을 만들어넣는 게 내 나름의 트레이드마크다. 임무에 돌입하기 전 긴장하는 재준을 표현하기 위해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는 식의 버릇을 넣었다.” 흉포한 영화배우 수타가 군것질에 탐닉하던 모습 역시 그의 아이디어였지만 자유롭게 자기를 털어내고 싶은 갈증은 남아 있었다. 그러니 “마음껏 준비해서 마음껏 뛰어놀아보라”는 신태라 감독의 주문이 반가울 수밖에.
흥분하는 일이 없을 듯한 이 차분한 배우의 전공은 그래픽 디자인. 그렇다고 연기에 대한 야망이 없었던 건 아니다. 유치원 무렵부터 ‘토요명화’, ‘주말의 명화’를 꾸준히 봤고, 주말에는 아버지의 손을 잡고 극장에 다녔던 소년은 문득 스크린에 비친 자기 모습을 상상하게 됐다. “예전에 봤던 수많은 영화들이나 일상, 주변 사람들과 같은 소스들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고 해야 할까. 그걸 채취해서 나랑 맞춰 조립하는 작업이 정말 재미있는 것 같다.” 말 나온 김에 어떤 영화가 기억에 남느냐 물었더니, “성룡 영화”라는 다소 놀라운(?) 답변이 돌아온다. “성룡, 주윤발, 아놀드 슈워제너거가 너무 좋다. 액션배우들도 연기파 배우들처럼 대접받을 수 있도록 끝까지 홍보하려고. (웃음)” 배우의 길로 들어설 가장 좋은 조건이라는 생각에 “춤, 노래 아무것도 못하”는 상태에서 뮤지컬 <록키호러쇼> 오디션에 응시한 일화는 어떤가. “시나리오 보고 나면 겁부터 난다”는 강지환이 지금에 이른 건 “평생 흘릴 땀을 다 쏟으”면서 기어이 오디션에 도전하고, “무대에 안 세워도 좋으니 배울 기회만 달라” 부탁했다는 그때의 용기 덕이 아니었을까. 의외의 면모를 갖춘 이 엉뚱한 남자는, 보면 볼수록 매력적인 배우가 될 게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