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프로듀서 A씨는 영화 <숙명>의 제작비를 횡령, 배임한 혐의로 제작사로부터 고발을 당했다(684호 포커스 ‘<숙명>의 수억원은 어디로 갔나’ 참조). 제작사 대표는 “A씨가 투자사와 감독과의 친분을 이용해 제작비를 임의로 사용하거나 유용했다”고 말했다. 영화산업노조와 제작가협회는 “이 문제가 작금의 영화산업 위기를 극복하려는 업계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중대한 사안임을 인식하고 이런 부조리를 뿌리까지 발본색원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당시 A씨는 억울하다고 했다. “언론에 보도된 내용은 허위이며 거짓”이라고 밝힌 그는 “나도 을의 입장에서 제작사와 계약한 스탭인데, 모든 권한을 행사하던 제작사가 이제 와서 나한테 모든 책임을 떠맡기는 지금의 상황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달 뒤, A씨와 제작사 대표는 어느 식당에서 만났다. A씨는 그 대표가 “자신을 보자마자 멱살을 잡고 흔드는 등 폭력을 행사했다”고 전했다. 그리고 3개월 뒤인 4월, A씨는 검찰로부터 한통의 우편물을 받았다. <숙명>의 제작사가 고소한 건이 검찰에서 각하됐다는 것이다. A씨는 “횡령, 배임, 사기, 명예훼손 등 몇건이 있었는데, 모두 각하됐다”며 “누명은 벗었지만, 달라진 것 없다”고 한숨을 쉬었다.
제작사쪽은 다시 증거자료를 구비해 재고소를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대해 A씨도 맞대응을 할 계획이다. “이게 참… <숙명>의 폐해가 모두 나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거 아닌가. 정작 이익은 제작사가 다 챙겨놓고 말이다.” 그는 “재고소를 하든 말든, 애석한 곳은 따로 있다”고 말했다. “처음부터 제작가협회와 영화산업노조가 이 사건을 제3기관에 의뢰하는 방식으로라도, 공정하게 분석하고 원인을 규명했어야 했다”는 것이다. “지금 제협과 노조에 보낼 협조문을 작성하고 있다. 하지만 왜곡된 보도와 성명서 발표로 입은 피해를 보상받는다는 것도 구체적인 답이 없는 일이다. 처음부터 제협과 노조가 공정성을 지켜야 했다고 생각한다.” A씨가 애석함을 털지 못하는 이유는 이미 “영화계에서는 천하의 죽일놈”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겠냐고 바라보는 시선들이 있는 것도 이유다. “여전히 영화인들은 내가 큰돈은 아니어도 뜯어먹기는 했다고 본다. 요즘은 나 때문에 영화판이 그렇게 문제라면 차라리 아예 다른 일을 할까 생각도 한다.”
각하처분에 대해 <숙명>의 제작사와 함께 고발을 진행한 영화산업노조는 “아직 더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김윤태 사무국장은 “각하가 됐지만, 무혐의로 결론이 난 것은 아니다”며 “증거자료가 불충분해 검찰쪽에서 자료를 수집하려는 차원이 있는 것 같다. 아직 의혹이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우리도 확실한 입장을 밝히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어쩌면 A씨와 제작사는 고소와 맞고소로 지난한 싸움을 벌일지도 모른다. A씨가 <숙명>의 제작사 대표쪽에 폭행과 명예훼손 혐의로 제기한 고소도 이미 검찰에 올라간 상태다. 과연 이 싸움은 언제쯤 마무리를 지을까. 승자도 패자도 없이 양쪽 모두 상처만 입을 것 같아 우려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