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 홈페이지에 이런 경고가 떴다. “임산부 및 노약자분들은 관람에 신중을 기해주시기 바랍니다.” 전주국제영화제의 인기 섹션 ‘불면의 밤’ 상영작 중 하나인 <악의 화신> 소개글에 덧붙여진 말이다. 빈말이 아니라,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의 ‘불면의 밤’은 세다. 특히 ‘광기와 욕망의 밤’과 ‘다나카 노보루의 밤’에선 극으로 치닫는 인간의 광기와 욕망, 성에 대한 집착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불편하고 역겨운 장면, 기괴하고 이해 불가능한 이야기가 오랫동안 당신의 잠을 앗아갈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이 영화들을 극장에서 볼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다. ‘불면의 밤’은 5월 2, 3, 4일 자정에 전북대학교 삼성문화회관에서 상영되며, ‘광기와 욕망의 밤’ ‘환상의 밤’ ‘다나카 노보루의 밤’ 순으로 이어진다.
구토유발작 <악의 화신>
‘광기와 욕망의 밤’에서는 장 끌로드 브리소의 <모험>, 주제 모지카 마린스의 <악의 화신>, 졸리오 브레사네의 <에르바 도 라토> 이상 세 편이 상영된다. 구토유발작 순위를 매기면 <악의 화신>이 꼭대기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브라질 호러 영화의 선구자인 주제 모지카 마린스 감독은 악당 중의 악당, ‘코핀 조’를 빚었다. 머리 껍질 벗기기 등의 신체절단 고문은 물론 인육 먹(이)기, 수간(獸姦) 장면이 예사로 나온다. 이런 시각적 역겨움보다 더 끔찍한 것은 어쩌면 악의 영속성에 대한 이야기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에르바 도 라토>는 남자와 여자, 쥐 한 마리가 등장인물의 전부인 영화다. 묘지에서 우연히 만난 남자와 여자는 동거를 시작하고, 남자는 카메라를 들어 여자의 알몸을 찍기 시작한다. 그리고 쥐가 등장한다. 새로운 국면의 시작이다. 모든 것이 쥐 때문이다, 라고 생각하는 남자는 쥐 한 마리에 둘의 관계를 통째로 걸어버린다. 독특한 설정과 기이한 에로티시즘이 돋보인다. <모험>은 어느날 갑자기 직장을 그만두고, 남자친구와도 헤어진 산드린이 자신의 무의식 속 욕망을 깨닫고 황홀한 오르가슴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 ‘모험’을 한다는 이야기다. <남자들이 모르는 은밀한 것들>을 연출한 장 끌로드 브리소의 작품이다.
‘환상의 밤’ 상영작들은 시각적 고통과 충격 면에서 약간 덜 한 편이다. 글렌 맥퀘이드 감독의 <아이 셀 더 데드>는 호러-코미디를 표방하는 영화로, 도굴꾼 아서와 윌리가 시체들과 함께 한 환상적인 모험 이야기다. 봄밤, 유쾌하게 낄낄 거리며 보기에 그만이다. 클라우제비츠의 유명한 병서 <전쟁론>에서 제목을 따온 영화 <전쟁론>은 새로운 제도와 새로운 삶의 방식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왕국’이라는 곳에 대한 이야기다. 포탄이 떨어지거나 총에 맞은 병사가 널브러져 있는 장면을 상상했다면 오산이다. <킬>은 <공각기동대>의 오시이 마모루와 후카사쿠 켄타, 다하라 미노루, 츠지모토 다카노리 등 네 명의 일본 감독이 만든 옴니버스 액션영화다. 검, 검객, 그들의 검에 쓰러져 나가는 무사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다나카 노보루의 밤’ 추천
‘다나카 노보루의 밤’은 그 자체로 흥미롭다. ‘닛카츠 로망 포르노’라는 장르 안에서 마음껏 자신의 재주를 부렸던 다나카 노보루 감독의 작품 3편이 상영된다. 닛카츠 로망 포르노는 1970년대 일본 메이저 영화사 닛카츠가 제작한 저예산 포르노영화, 핑크 영화를 말한다. 상영작은 <실록 아베 사다> <다락방의 산보자>와 더불어 다나카 노보루 감독의 최고 작품으로 꼽히는 <미인난무: 고문!>, 1979년 일본 아카데미 영화제와 <키네마준보>가 최고의 영화로 뽑은 <유부녀 집단폭행치사사건>, 관능적인 표정과 몸짓으로 카리스마를 뿜어내는 나카가와 리에 주연의 <창녀고문지옥> 이렇게 3편이다. 가혹한 여성 학대 장면에 비위가 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작품마다 새로운 무엇을 창조해내는 다나카 노보루 감독의 상상력과 연출력을 눈여겨보면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