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영화]
‘멈블코어’의 대표 앤드류 부잘스키의 세 번째 영화 <밀랍>
2009-05-02
글 : 안현진 (LA 통신원)

<밀랍> Beeswax
앤드류 부잘스키/미국/2009년/100분/35mm/컬러

“20~30대 캐릭터, 등장인물 간 관계에 집중, 초저예산, 즉흥적인 대사의 웅얼거림, 비전문 배우”로 규정되는 미국 인디계의 소장르, ‘멈블코어’(Mumblecore)의 대표감독 앤드류 부잘스키의 세 번째 영화. 전작 <퍼니 하 하> <뮤추얼 어프리시에이션>에서와 마찬가지로, 무작위로 집어낸 듯한 삶의 조각들이 프레임 안에서 예리한 단면들 드러낸다. 제목 <밀랍>은 “너나 잘해”라는 의미로 사용하는 “Mind Your Own Beeswax”(밀랍, Business 대신 구어체에서 사용됨)에서 가져온 표현.

주인공은 쌍둥이 자매 지니와 로렌이다. 하반신 마비로 휠체어 신세를 지는 지니는 작은 일에서 쉽게 상처 받는 타입. 불편한 몸에도 타인의 도움을 받기보다 스스로 모든 일을 해결하려는 그녀는, 중고 옷가게를 함께 운영해온 동업자 아만다와 운영권을 놓고 소송 중이라 예민하다. 온유하고 밝은 성격에 어디서나 잘 어울리는 로렌은 두 남자 사이에서 뚜렷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오가며, ‘여기, 지금’을 떠날 꿈도 어렴풋이 꾸고 있다.

<밀랍>은 전형적인 멈블코어의 공식대로 특별한 서사없이 진행된다. 상황은 일상에서 떼온 듯 거칠고 그 위로 수많은 사람들이 오갈 뿐이다. 예를 들면, 지니가 남자친구 메릴과 동침하는 장면. 끈끈하지도 로맨틱하지도 않은 그 장면은, 세끼 밥먹듯 화장실 다녀와서 손씻듯 지나간다. 다음 날 아침의 뒤처리나 굿모닝 키스에도 드라마가 개입될 틈이 없다. 인물들은 희로애락을 표출하며 ‘삶의 편린’을 그려내지만 어디에도 극적인 제스처는 보이지 않는다. 그저 지금 지구 위의 누군가가 그러하듯 별것 아닌 일에 웃고 별것 아닌 일에 마음이 상한다. 그런데 그 무미건조함이 현실과 꼭 닮은 까닭에 아이러니하게도 감정의 파편을 자꾸만 쏟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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