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영화]
필리핀의 과거와 현재 <짙은 어둠 속의 마닐라>
2009-05-03
글 : 정한석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짙은 어둠 속의 마닐라> Manila in the Fangs of Darkness
필리핀/2008/72분/DV/컬러/카븐 드 라 크루즈

필리핀 영화의 정신적 지주 리노 브로카의 대표작 <네온 불빛 속의 마닐라>에서 따온 제목이 분명하다. 그 영화에서 사랑하는 여인을 찾아 1975년의 마닐라를 떠돌던 젊은이 줄리오 마디아가 역을 맡았던 배우 밤볼 로코가 세월을 건너 <짙은 어둠 속의 마닐라>에 다시 출연한다. 한 편 리노 브로카가 연출하고 밤볼 로코가 군사령관 콘트라로 출연했던 또 한 편의 영화 <우리를 위한 싸움>(1989)도 여기 겹친다.

그렇게 하여 밤볼 로코가 맡았던 이 두 역할의 이름을 엮어 만든 ‘콘트라 마디아가’라는 인물이 지금의 마닐라를 떠돈다. <네온 불빛 속의 마닐라>와 <우리를 위한 싸움>, 두 영화의 클립도 지속적으로 등장한다. 감독 카븐 드 라 크루즈는 리노 브로카의 두 편의 영화 주인공을 오늘날로 귀환시켜 과거와 현재를 잇는 정치적 이미지 모험을 감행한다. 여기에는 영화의 역사를 빌어서 하는 어떤 질문이 있다. 필리핀은 변했는가? 과거로부터 진화했는가? <짙은 어둠 속의 마닐라>는 필리핀의 역사를 잘 알지 못하는 우리들에게는 낯설기 마련이다. 한 눈에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은 영화다. 하지만 이 영화가 왜 이런 모양새를 갖추게 되었을까 주목하다 보면 이것이 영화를 통한 역사에의 질문이란 것이 확실해진다. 실험적인 형식과 정치적인 예리함을 지닌 이 영화는 필리핀 영화의 약진과 더불어 지난 해 적지 않은 관심을 끌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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