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영화]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오랜만의 신작 <쉬린>
2009-05-04
글 : 정한석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쉬린> Shirin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이란/2008년/91분/메가박스10/오전 11시30분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오랜만의 신작. 디지털 세계로 접어든 다음 키아로스타미의 영화는 현실과 허구를 동화같은 이야기 안에서 오가게 하던 예전의 형식보다 훨씬 더 극단적이다. 이번 상영작 <쉬린>은 그 중에서도 그가 오즈 야스지로에게 헌정했던 영화 <파이브>와 함께 키아로스타미식 미니멀리즘의 끝점으로 기록될 지도 모르겠다. 물론 키아로스타미라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 영화를 나의 가장 미니멀리즘적인 영화라고 하겠지만 나로서는 이 영화가 나의 가장 진전된 시네마토그래픽 필름이라고 생각한다. 언어, 대사를 통해서 많은 것이 전달되는 영화가 아니라 모든 이들이 한 지점만을 바라보는 영화적 경험에 대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거짓말이 아니라 모두가 한 점만을 본다.

<쉬린>에서 우리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극장에 앉아 영화를 보는 수많은 여인들의 얼굴뿐이다. 그리고 그들이 지금 본다고 가정된 건 <코스로우와 쉬린>이라는, 왕의 여인이지만 다른 남자를 사랑한 쉬린이라는 여자의 이야기다. 800년 전부터 내려오던 페르시아 비극이다. 우리가 볼 수 있는 건 그걸 본다고 가정된 히잡을 쓴 여인들의 얼굴이다. 매우 지루하게 느껴지거나("90분간 이란 여인의 얼굴만 보고 나왔다"고 불평할 수도 있다) 단순하게 보일 지도 모르지만 키아로스타미는 여기에서 나름의 영화적 성찰을 관객에게 요구한다. <쉬린>을 촬영할 당시 여인들 앞에는 실제로 어떤 화면도 펼쳐지지 않았고 그녀들은 본 게 없다. “촬영장에 있는 건 와이드 스크린과 의자 몇 개, 카메라, 작은 조명 세 개 뿐이었다. 나는 그녀들이 무엇을 보고 있었는지 알 수 없다. 모두가 자신만의 기억, 혹은 자신들이 본 영화의 장면을 떠올렸을 것이다.” <쉬린>은 형식주의에 빠졌다는 비난을 감수해야겠지만, 키아로스타미가 아니라면 누구도 쉽게 취할 수 없는 극단의 미학으로 관객의 머릿속을 들여다보기를 희망한다.

관련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