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난, 품고 싶은 게 많아! <아메리칸 뷰티>의 미나 수바리
2001-11-28
글 : 박은영

<아메리칸 뷰티> 이전

내 이름이 이상하다구? 동의해. 아빠가 에스토니아 출신이고, 엄마 조상이 그리스인이라서 내 이름이 조금 이국적이지. 난 로드아일랜드에서 나고 자랐는데, 13살에 우연히 모델일을 시작하면서 식구들을 졸라 LA로 이사왔어. 피자 CF에도 출연하고 시트콤에도 출연했지만, 학교 생활을 등한시하진 않았지. 난 절대 모델로는 성공 못했을 거야. 알다시피 내 키는 160cm가 간신히 넘걸랑. 오죽하면 학교 때 별명이 ‘콩’(bean)이었겠어.사람들은 내가 학교를 주름잡는 치어리더나 메이 퀸이었을 줄로 알지만, 정반대였어. 학교에서 난 눈에 띄는 아이가 아니었지. 사교적이지도 못했고. 그저 촌스런 교복 대신 와일드하고 펑키한 옷을 입고 싶어한 평범한 소녀였어. 그러다 같은 드라마에 단역 출연하면서, <노웨어> <키스 더 걸> 같은 영화에도 얼굴을 내밀게 됐지. 좀 비중있는 역할로 나온 건 <캐리2>부터야. <아메리칸 파이>에 출연하면서 <아메리칸 뷰티>에도 나오게 됐어. 품행이 너무 방정해서 남자친구 애를 태우는 합창단 소녀 헤더, 친구 아버지를 매혹시키고 좌절시키는 당돌한 소녀 안젤라. 서로 너무 다른 캐릭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연달아 출연하게 됐지. 난 본래 즉흥적으로 사는 편이고, 배우를 꿈꿔오지도 않았지만, 연기가 막 재밌어지기 시작하는 거야. 당분간은 한눈팔지 말아야겠다 싶었어.

<아메리칸 뷰티> 이후

어느날 거리에 나갔는데, 사람들이 다가와서 사인을 해달라고 하는 거야. 기분은 꽤 좋았지만 이런 일이 내게 일어날 거란 생각은 한 적 없거든. 도대체 내가 누구지? 좀 혼란스럽기도 하구. 더 기가 막힌 건 <아메리칸 뷰티> 이후에 누드연기 제의가 쇄도한다는 점이지. 장미꽃잎 속에서 벗은 몸을 뒤척이던 그 장면이 그리도 인상적이었는지. 그건 그냥 상징이잖아. 맥락상 꼭 필요했던. 사람들은 내게 누드연기, 롤리타 내지는 뱀프의 이미지를 지속적으로 요구했지만, 따르지 않았어. 내 자신이 부당하게 다뤄지거나 소모되는 건 싫으니까. <슈거 앤 스파이스> <루저> <아메리칸 버진> 같은 영화에 줄줄이 출연한 것도 물론 내 ‘소신’에 따른 선택이었지. 난 캐릭터의 감정선이 복잡한 영화, 전에 했던 것과 다른 역할에 도전하는 게 좋아. 시대극 <머스킷티어>를 선택한 것도 그런 이유였어. 시대극은 처음이었거든. 게다가 그 호사스런 공주옷을 입는 기분이란. 달타냥의 맘을 사로잡는 시골 아가씨 프란체스카는 너무 인내하지도 희생하지도 않는 용감한 여자거든. 시대극에, 또 그 시대에 희귀한 여자라서 맘이 끌렸지. 그런데 사람들은 이런 나를 오해해. 내가 어리기 때문에, 어려보이기 때문에, 뭘 잘 모를 거라고 밀쳐내거든(결혼한 거 갖고도 왜들 트집이람). 예쁘고 섹시하게 보이고 싶어 안달난 철부지인 줄 안다니까. 난 그렇지 않아. 내가 남들 눈에 어떻게 보일지 따위는 관심없다구. 나는 내가 하는 모든 일에 깊숙이, 그리고 창의적으로 개입하고 싶을 뿐야. 남들이 그걸 원치 않는다고 해도. 난 품고 싶은 게 많아. 남들 의견에도 귀를 기울일 줄 알지. 수십년 동안 혼자 시행착오하는 것보다는 남의 쓴소리에 귀기울이고 받아들이는 게 경제적이라고 생각해. 연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야. 연기를 그만둬야 한다면, 난 죽어버릴 거야, 라고 말 못해. 앞으로 내 인생에 무슨 일이 닥칠지 누가 알겠어. 지금은 내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할 뿐야. 내가 아는 건, 조금씩 나이를 먹어갈 거라는 사실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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