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영화]
혼돈 속에 방황하는 오늘의 칠레 <토니 마네로>
2009-05-05
글 : 안현진 (LA 통신원)

<토니 마네로> Tony Manero
파블로 라라인/칠레, 브라질/2008년/98분/전주시네마타운8/오후 8시30분

피노체트 정권의 독재가 칠레에 드리운 그늘 위로 할리우드 디스코 영화 <토요일 밤의 열기>가 선명한 콘트라스트를 던지는 영화. 배경은 1978년의 산티아고. 댄스 공연자로 근근히 살아가는 50대 라울은, <토요일 밤의 열기> 속 존 트라볼타가 연기한 ‘토니 마네로’의 광적인 팬이다. 어찌나 영화를 보았던지 서툰 발음으로 영어 대사까지 암송하는 그가 토니 마네로에 집착하는 이유는 한 가지. 일주일에 한번 방송하는 TV쇼에서 다음 주에 ‘칠레의 토니 마네로’를 뽑기 때문이다. 철 안든 50대 아저씨의 도전으로 보기에, 그 욕망에 다가서는 라울의 방식은 충격적이다. 그는 살인을 선택한다. 토니의 십자가 목걸이를 손에 넣기 위해, 토니가 춤을 추던 글라스플로어를 만들기 위해 그는 주저 없이 그러나 치밀한 계획 아래 사람을 죽인다. 의상의 디테일부터 그 영혼까지 토니 마네로가 되려는 사이코패스는 과연 우승할 것인가.

저예산으로 만들어진 <토니 마네로>는 낮은 화질과 점프컷, 종종 사라져버리는 포커스에도 다음 장면을 기대하게 만드는 영화다. 그것은 최소의 충동을 살인으로 이어간 라울의 광기가 어디까지 증폭될 것인가에 대한 아슬아슬한 궁금증이기도 하고, 발기부전인 라울이 토니가 되어서만 느끼는 그로테스크한 오르가즘을 향한 경멸에 찬 호기심이기도 하다. 경쟁자의 흰 의상 위에 쭈그려 앉아 똥을 싸지르는 장면은 영화의 고약한 향취를 담아낸 절정. 수상한 분위기를 감지한 형사가 들이닥치자 그는, 쥐새끼처럼 도망쳐 방송국으로 향한다. 두드러지지 않지만 영화 전반에 고루 녹여낸 정치적인 비관도 이 영화의 빼어난 점이다. 감독 파블로 라라인이 그려낸 1970년대의 칠레는, 여전한 혼돈 속에 방황하는 오늘의 칠레인 동시에 강대국의 경제·문화적 지배 아래 놓인 약소국들이 마주한 메마른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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