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브 디아즈에게 농담처럼 물었다. “그런 상황이 찾아올 리 없지만 만약 갑자기 세상이 이상해져서 ‘영화는 두 시간 내외로만 만들어야한다’ 는 법이라도 만들어진다면 그때에도 영화를 하겠나”. 그가 같은 방식의 농담으로 반문했다. “누가 그런 법을 만들 수 있을까? 그 누가? 파시스트가?” 라브 디아즈는 그런 가정조차 하지 말자는 표정을 지으며 “예술가는 그런 것에 싸울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사실 그 말이 듣고 싶었다. <디지털 삼인삼색:어떤 방문> 중 <나비들에겐 기억이 없다>를 만들었고 8시간짜리 서사시 <멜랑콜리아>를 들고 온, 약진하는 필리핀 영화의 대표 감독 라브 디아즈를 만났다.
-당신을 선두로 후배들인 안토니오 쉐라드 산체스, 라야 마틴, 카븐 드 라 크루즈 등이 현재 필리핀 영화의 희망을 일구는 것 같다.
=방금 말한 그 젊은 감독들이 이제 막 활동을 시작했고 내가 생각하기에 그들은 필리핀의 정치적 변화를 위해서도 중요한 역할을 할 거라고 믿는다. 우리에게는 지금 사회적으로도 영화적으로도 ‘재구축’이라는 화두가 중요한 시점이다.
-그 젊은 감독들을 이끄는 정신적 지도자가 당신이다. 작품에 대한 조언도 하나….
=(아주 겸손하게) 나름대로 도와주려고 노력은 한다. 서로 열어 놓고 토론을 많이 한다. 하지만 이래라 저래라 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들에게 본인의 능력에 대한 책임과 함께 연출자로서의 사회적 책임을 지켜야 한다는 건 강조한다.
-어떤 평론가가 당신의 영화를 두고 ‘기내 영화Flight Cinema’라고 농담한 걸 보고 한참 웃은 적이 있다. 대체로 짧게는 5시간에서 길게는 10시간 정도의 상영 시간 때문일거다. 서울에서 런던이나 뉴욕까지 가는 동안 보면 딱 맞는 영화라는 뜻일 거다.
=(웃음) 맞다. 그 뒤에도 비슷한 이름들이 지어졌다. 그 중 하나가 ‘코마스코프’다. 보다가 혼수상태(코마)에 빠진다고 해서 말이다(웃음). 하지만 나 스스로는 프리 시네마라고 부른다. 영화가 왜 2시간으로 제약받아야 하는가. 그러기에 영화는 매우 거대한 매체다.
-<엥칸토 땅에서의 죽음>은 원래 태풍에 의한 자연재해 지역의 상황을 NGO에 알릴 목적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그곳에 가서 당신은 극화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결과적으로 이 영화는 다큐와 극의 혼합이 되었다.
=그 지역에 갔을 때가 2006년 11월30일이었다. 알다시피 태풍이 왔고 화산이 넘쳐서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그 때 내 친구들도 죽었다. 그 일이 일어난 지 5일 뒤쯤 갔다. 죽음의 고통이 느껴지는 장면을 쉬지 않고 계속 찍을 수밖에 없었다(이때 라브 디아즈의 목소리가 떨리고 눈시울이 얼마간 붉어졌다) 그러다가 죽은 사람들을 기리기 위해서라도 어느 순간 극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번 디지털 삼인삼색 작품 <나비들에겐 기억이 없다>를 통해서는 무엇을 표현하고 싶었나.
=이 영화를 한 마디로 말하자면 사람들의 부서지기 쉬운 휴머니즘에 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나비란 그런 상황을 은유한다. 좋은 본성을 가졌지만 순식간에 생명이 꺼질 수도 있는 나비 같은 그런 휴머니즘.
-언젠가 말한 것처럼 “구원을 향한 끝없는 모색"이 당신의 주제다.
=그럴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인간성의 구원이 찾아오길 바란다.
-차기작이 보고 싶다.
=<예레미야 BOOK 2 : 타가불락 섬의 전설>을 70퍼센트 완성했다(2006년에 만든 <예레미야 book 1 : 리자드 공주의 전설>의 속편 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