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연기밖에 난 몰라”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오지혜
2001-11-28
글 : 이영진
사진 : 이혜정

“몰라봬서 죄송합니다”라고 하진 않았지만, 내내 미안한 맘뿐이었다. 1991년 연극 <따라지의 향연>으로 무대에 선 지 10년이 넘은 여배우에게 ‘페이스’라니…. 글 양이 적은데 질문은 왜 그리 많았냐고 나중에 한소리 들을까봐 간단한 질문을 최대한 느릿하게 던졌더니, 눈썰미 좋고 도량 넓은 배우 오지혜(34)의 한마디. “저, 그냥 수다떨러 왔어요. <한겨레> 마니아인데 언젠가 한번 오고 싶었거든요.” 이야기 실타래가 풀리기 시작하자 예쁜 딸 분윳값 때문에 <한겨레21> 대신 <씨네21> 구독을 중지했다며 크게 ‘한방’먹이는 억척어멈 오지혜.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인희만큼 씩씩하다.

“그래도 임순례 감독님은 촬영하면서 양이 안 차셨나 보더라구요. 저한테 편지를 쓰셨는데 인희의 아픔이 덜 묻어난다고 하시대요.” 극중 인희야 어렸을 때 품었던 가수의 꿈을 채소 한단에 묶어 내파는 처지가 됐고 거기에 남편까지 잃었는데, 자신은 지금 가장 좋아하는 광대 일을 하고 있고 영화촬영 도중 뱃속에 태기가 있다는 것까지 알았으니 얼마나 행복했겠느냐는 오지혜. “감독님이 제대로 보신 거죠. 사실 배우는 그 인물인 ‘척’하는 건데…, 그게 표현이 안 됐다면 배우로서의 한계지요.”

그녀가 인희를 만난 건 지난해 여름, 명필름, 청년필름 등 8개 제작사가 모여 벌인 ‘사상최대의 오디션’에서다. 당시 그녀는 연기학원이던 ‘액터스21’ 출신 신인배우들의 조련사였다. “명계남 아저씨가 인희와 비슷하다며 3차 오디션을 보라고 하시더라구요. 임 감독님이 끈적끈적한 걸 불러달래서 제18번인 <사랑밖에 난 몰라>를 한 곡조 뽑았는데 글쎄 노래까지 캐스팅된 거 있죠.” 그래도 연극무대에서는 모노드라마까지 치른 배우인데, 조역 오디션을 볼 생각이 났냐고 물었더니, “작품 보고 맘에 들었다면, 감독에게 자신을 보여주는 건 당연한 거 아니에요”라고 반문한다. 모노드라마 하면 다들 뜨는 줄 아는데 무대에선 외롭고, 정작 작품 끝내면 몸값 높아졌을 거라 지레 짐작해서 다들 고개 흔드는 분위기라 좋은 것 하나 없다는 푸념도 덧붙이면서.

딕션에서 국내에선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배우 오현경을 아버지로, 하늘이 내린 끼를 다룰 줄 아는 배우 윤소정을 어머니로 둔 탓에 어렸을 때부터 배우가 꿈이었던 그녀는 97년 <비언소>로 백상예술대상 신인상을 따내면서 두각을 나타낸다. 영화는 94년 <태백산맥>이 처음. 이후 <초록물고기> <창> 등에 얼굴을 내비쳤다. “저, 이래보여도 한석규 동생 전문 배우예요. 두 작품이나 동생으로 나왔으니.” 촬영현장에서 만난 말쑥하고 훤칠한 남편(궁금하신 분은 <씨네21> 228호 스탭25시를 참조하시길)을 길벗 삼아 평생 큰 욕심 부리지 않고 한길 가겠다는 그녀의 웃음에서 변함없는 진한 흙내가 풍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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