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두비>와 <로니를 찾아서>를 모두 관람한 관객이라면, 저 배우, 은근히 낯익다며 고개를 갸웃거리지 않을까. 맞다. 분명 어디서 본 듯한 얼굴이다. 그의 이름은 마붑 알엄. 이주노동자영화제 집행위원장이면서 다큐멘터리 제작자, 게다가 전주영화제 상영작 중 무려 두편에 이름을 올린 어엿한 배우다. 당돌한 여고생과 우정을 나누는가 하면(<반두비>) 태권도장 사범을 한방에 때려눕히기도 했던(<로니를 찾아서>) 그는 1999년 처음 한국 땅을 밟은 방글라데시 출신의 이주민. 연기한 캐릭터 역시 방글라데시에서 온 이주노동자들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당장 돈을 벌어야겠다는 압박감을 느꼈다. 이주를 하려면 어느 정도 비용이 필요한데 마침 내가 가지고 있던 돈이 한국이랑 맞더라. (웃음)”
고국 방글라데시에 대안학교 세우고파
단일민족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낯선 나라에 도착해 2여년을 힘들게 일했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편견도 새삼 느꼈다. 그러다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에 “공동체를 만들어 서로 돕는 일”을 시작했고, 노동운동에도 손을 뻗었다. “이주노동자도 노동자의 기본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언론에 제대로 안 나오는 문제는 나서서 알려야했다. 주변 사람들부터 찍다가 자연스럽게 영화제를 만들게 됐다.” 완성한 다큐멘터리만 5편. 언론에서 왜곡 보도하는 이주노동자 상(像)을 바로잡는 게 그의 바람이다. “이주민들이 대상자가 아니라 주체로 미디어에 참여한다는 의미가 있다. 방송 제작에 참여한다기보다 다큐멘터리를 하는 셈이다. 다큐에 관심이 많다.” 계속 끌어가고 싶은 것 역시 ‘기록’ 활동이다. 다큐멘터리든, 단편영화든, 책이든, 개인사를 통해 전체를 바라볼 수 있는 이야기들. 게다가 이 야심 많고 꿈 많은 청년에겐 자신의 고국 방글라데시에 대안학교를 만들고 싶은 소망도 있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교육 프로젝트를 펼치고 싶다.”
물론 어떤 작업이든 수월하지만은 않다. 7월로 예정된 이주노동자영화제는 정부에서 지원금을 받아 꾸려왔지만 4회를 맞은 올해는 예산이 없는 상황. “두달째 임금을 못 받으면서 일하고 있다. 영화를 좋아하거나 이주민들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힘을 보태줬으면 좋겠다. 그래도 이번이 4회째라 그런지 영화제에 대한 관심은 높아지는 것 같다.” 방글라데시인, 한국인, 아니, 한국에 사는 방글라데시인이라고 해야 할까. 한국여인과 결혼한 지도 4년째. 정확하게 정의내리기 힘든 지금의 위치를 그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자신을 “한국인도, 방글라데시인도 아닌 국적 없는 사람”이라 칭하던 그는 “지구인”이라는 재치 있는 답변을 꺼내들었다. “가끔 나를 한국인이라 불러도 되겠구나 싶지만 ‘어디에서 왔어요’라고 물을 때마다 내가 한국인이 아니라는 걸 실감한다. 그렇다면 지구인이라는 말은 어떨까. 우리 모두 지구에 살고 있으니. (웃음)”
이주노동자영화제, 올해부터 지원금도 끊겨
5월5일 오후 4시30분. 따사로운 햇살로 인터뷰를 진행한 카페 안은 유난히 환했다. 허겁지겁 자리에 앉은 마붑 알엄에게 인터뷰 시간에 늦은 이유를 물었더니 영화가 생각보다 늦게 끝났다며 미안해한다. “<유토피아>를 보고 왔다. 좋더라. <워낭소리>가 소와 사람에 대해 말한다면, 이건 자연과 농민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다. 자연이 너무 예쁘고 아름답더라.” <반두비>에서 외로운 한국 소녀와 나란히 길을 걷던 그의 뒷모습도 그만큼 보기 좋지 않았나. 첫인사는 어색하고 무례했을지라도 마지막까지 그와 우리가 ‘반두비’, 그러니까 좋은 ‘친구’이길. <로니를 찾아서>의 태권도장 사범 인호가 어느 결에 뚜힌의 천진함에 서서히 빠져들었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