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영화]
어떤 찰나의 아름다움 <하수구>
2009-05-07
글 : 정한석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하수구> Imburnal
쉐라드 안토니 산체스 | 필리핀 | 2008년 | 212분 | 메가박스5 | 오전 11시

크고 작은 소년 소녀들이 하수구에 모여 있다. 이 장소는 이상한 곳이다. 아이들은 이곳을 놀이터 삼아 담배를 피우거나 술을 나눠 마시고 섹스를 하며 어른들의 쾌락을 흉내 낸다. 이곳은 위험해 보인다. 하지만 그들이 그 더러운 물가에 편안히 몸을 누이고 안식을 취할 때면 그들에게 이곳이 마지막 남은 안식처라는 것도 알게 된다. 이 하수구는 그러므로 이중적이다. 지금 닥친 현실이자 더 이상 물러설 곳 없는 보금자리. <하수구>는 푼타 두말라그라는 필리핀의 어떤 마을을 배경으로 한다. 아이들이 왜 하수구를 서성거리는지 당신이 의아해한다면 감독이 의도한 바에 정확히 반응하는 것이다. “이 영화에 정치적인 장면은 없다. 하지만 정치적인 질문이 가능하도록 은유적으로 표현했다.” 지금 푼타 두말라그의 사람들은 마을을 정비한다는 명분 아래 쫓겨나고 있다고 한다.

필리핀의 젊은 감독 중 한명인 안토니오 쉐라드 산체스는 이미지의 은유를 통해 한 편의 시를 쓰고 싶었던 것 같다. 때때로 그 은유적인 면모 때문에 다소 성긴 영화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이 영화는 어떤 찰나의 아름다움을 낚아채는 힘이 있다. 그게 미래에 더 강렬해질 안토니오 쉐라드 산체스의 가능성이기도 하다. 전통적인 서사에 얽매이지 않으면서도 심상을 포착하는 힘. 때때로 알고 보면 소문만큼 뛰어나지 않은 젊은 감독들에 비한다면 안토니오 쉐라드 산체스는 원석에 가깝다. <하수구>는 그가 만든 첫 번째 영화 <타자들의 짜여진 이야기>와 주제는 다르지만 기이한 형식적 리듬에서 맞닿아 있다. 같은 필리핀 감독 중 라브 디아즈가 숭고하고, 카븐 드 라 크루즈가 실험적이고, 브릴란테 멘도사가 활기차고, 라야 마틴이 명석하다면, 안토니오 쉐라드 산체스는 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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