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
관객이여 분노하라, 그것이 나의 영화일지니
2009-05-11
글 : 홍성남 (평론가)
5월5일부터 매주 화요일 저녁 하이퍼텍 나다에서 베르트랑 블리에 감독전 열려

만일 자신의 영화들이 관객을 분개하도록 만들지 않으면 실망스러움을 느낀다고 베르트랑 블리에는 한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아무런 죄의식도 없이 범죄를 저지르고 욕망을 채우기에 급급한 두 젊은 남자(<남자들>, 1974), 심한 우울증에 빠진 아내에게 연인을 마련해주고자 하는 남편(<손수건을 준비하세요>, 1978), 죽은 어머니의 연인이었던 스물아홉살 남자에게 욕망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과감하게 밝히는 열네살 소녀(<의붓 아버지>, 1981), 부부에게 접근해 양쪽 모두를 유혹하지만 남편쪽에 더 관심을 갖는 한 남자(<이브닝 드레스>, 1985). 관객을 불편한 심정 속에 빠뜨리려 하는 블리에의 창작 태도는 상식을 뒤엎은 설정을 가진 그의 영화들 몇편만 거론해보아도 금방 드러날 것이다.

급진적이다 vs 공허한 도발이다

그래서 그의 영화는 수용하는 자세와 시각에 따라서 영화를 본 이들의 의견을 갈리게 만들곤 한다. 블리에의 영화는 어떤 이들이 봤을 때는 관객에게 도전하는 진정으로 급진적인 영화이고 또 다른 이들의 시선에서는 순간적인 당황스러움과 도발만을 제공하고 마는 공허한 영화인 것이다. 여하튼 그 자신의 말을 빌리면, 블리에는 영화를 통해 관객에게 흔히 ‘정상’이라고 생각되는 것과는 다른 방향을 여럿 지적해주려 했고 그렇기에 영화를 본 이들은 종종 어떻게 느끼는 것이 옳은지 몰라 난감해했다. 블리에는 이런 것이야말로 진정 재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한 영화감독이다. 창작자로서 그는 유희의 정신이야말로 최고의 자산임을 깨달은 사람이었다. 영화 속에 창의적이고 예리하며 때로는 잔혹하기도 한 유머감각을 불어넣고 당대 프랑스인들이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풍자적인 시선을 도입하는 식으로 블리에는 이를 증명해 보였다. 그리고는 뤽 물레와 함께 70년대 이후 코미디영화라는 영토 안에서 ‘작가영화’의 길을 추구한 프랑스 영화감독이라는 (물론 그에 대해 호의적인 평자에 의해) 평판을 얻어냈다.

1939년생인 블리에의 영화감독 경력은 1963년 <히틀러? 모르겠는데>를 찍으며 시작된다. 이것은 삶에 대한 태도를 이야기하는 젊은이들의 인터뷰로 구성된 ‘시네마 베리테’식의 영화로 당대의 영화적 흐름을 잘 따라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블리에는 60년대의 시네아스트로 두각을 드러내진 못했다. 1967년에 만든 그의 두 번째 영화는 완전한 실패작으로 기록되었다. 블리에의 첫 번째 성공작은 그의 세 번째 영화인 <남자들>이 될 터인데, 이 영화가 여러모로 난폭한 면모를 가지게 된 것은 영화감독으로서 자신이 그때까지 순탄한 길을 갖지 못한 데 대해 반발심이 일었기 때문이기도 하다고 블리에는 말한 바 있다. “나는 이 영화가 대중에 대한 고의적인 모욕이라고 생각했다. 이 영화는 엄청난 분노의 결과로 만들어진 것이었고 만들어지는 내내 영화를 지배했던 것도 이런 감정이었다.”

<남자들> 성공… 하지만 그만큼의 공격도

프랑스어로 ‘고환’을 의미하는 속어를 제목으로 삼은 것부터가 범상치 않아 보이는 <남자들>(Les Valseuses)은 ‘도발의 영화’로 부를 만한 작품이다. 자신이 쓴 소설을 스크린에 옮긴 이 영화에서 블리에는 욕망의 지시만을 따르는 듯한 두 20대 남자 장 클로드와 피에로의 대책없는 여정을 그린다. 특별한 직업이 없는 대신 그들은 모험을 하는 듯 자유로운 삶을 살아간다. 그들에게 길에 서 있는 자동차나 오토바이는 훔치라고 존재하는 것들이다. 한편으로 이 건달들의 눈에 그들과 마주치는 여러 여인들은 무엇보다도 그들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이 존재의 가장 중요한 이유로 비치는가 보다. 영화에서 그들은 오르가슴을 아직 느껴보지 못한 미용실 점원, 기차 안에서 어린 자식에게 젖을 물리는 아리따운 여인, 10년을 복역하고 이제 세상 밖으로 나온 중년 여인, 갑갑한 부르주아적 삶에서 탈출하고픈 열여섯살 소녀와 이런저런 ‘관계’를 갖는다.

<남자들>은 흥행에서 대성공을 거두며 영화감독으로서 인정받고자 하는 블리에의 욕망도 충족시켜줬다. 그러나 이처럼 노골적으로 무례한 영화가 성공작이 되었다는 것은 다른 한편으로는 뜨거운 논란의 대상이 된다는 것과 동의어이기도 했다. 영화는 언론과 평단으로부터 거침없는 공격을 당했다. 누군가는 이 ‘쓰레기’ 같은 작품이야말로 검열의 일차적인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했고 또 누군가는 청소년들이 영화에서와 같은 범죄를 저지르지 않도록 심리학자들의 노력을 촉구하기도 했다. 또 다른 이들은 저속하고 음탕한 영화라며, 나치주의자의 작품이라며, 범죄자를 희생자로 다루는 비윤리적인 영화라며 <남자들>을 공격했다.

그렇다고 <남자들>에게 이런 식의 반대하는 의견만이 쏟아진 것은 아니었다. 다른 진영, 특히 앞선 견해를 가진 이들보다 자유주의적이거나 혹은 좌익에 가까운 시선을 가진 언론과 평자들로부터 영화는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남자들>이 어떤 이들에게 환대를 받았다면 우선적으로 그것은 영화가 보여주는 거침없이 분출하는 상상력의 에너지 때문이었을 것이다. <남자들>은 무정부주의적인 활력이 넘치는 ‘카니발의 영화’로 보였던 것이다. 한편 이 영화에 드러나는 정치적인 견해를 옹호하는 이들도 있었다. 영화는 소비주의- 자동차로 대변되는- 가 급속도로 진행된 사회 속에 두 주인공들을 위치시킨다. 이 거대한 사회는 미천한 인물들의 욕구 같은 것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비인간적인 공간이다. 게다가 두 주인공은 무언가 권위를 대표하는 인물이나 부를 자랑하는 인물들과 계속해서 대면하게 된다. 이제 이들은 무심하고 비정한 시스템의 희생자로, 그들의 일탈 행위는 숨 막히게 하는 시스템을 헤쳐나가는 순진한 반항으로 그려진다. 이렇게 해서, <남자들>은 감수성과 (정치적) 시선의 측면에서 지난 시대의 영화보다 한발 앞서나가는 영화로 보일 수 있었던 것이다.

남성의 긴요하고 기이한 욕망이란 주제

<남자들>이 블리에의 최고작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모아지지 않을 것이다(그의 최고작으로 누군가는 <손수건을 준비하세요>를 이야기할 것이고, 또 누군가는 <이브닝 드레스>를 거론할 것이다). 하지만 그의 대표작인 것에는 틀림이 없다. 이건 <남자들>이 단지 블리에의 가장 잘 알려진 영화라는 의미에서만이 아니라 블리에의 영화 세계에 대해 꽤 많은 점들을 이야기해준다는 점에서도 유효한 말이다. <남자들>은 우선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아서 펜, 1967), <이지 라이더>(데니스 호퍼, 1969), 그리고 <미치광이 피에로>(장 뤽 고다르, 1965)를 떠올리게 하는 영화다. 여기서 우리는 블리에라는 이가 미국영화 그리고 자국의 누벨바그의 영향을 자기 식으로 흡수한 영화감독임을 이야기할 수 있다. 블리에 자신은 <남자들>을 만드는 데에 가장 큰 영감을 준 작품으로 스탠리 큐브릭의 <시계태엽 오렌지>(1971)를 거론한 적이 있다. <의붓 아버지>가 큐브릭의 <로리타>(1962)와 연관이 없어 보이지는 않는다는 다른 예를 든다면, 어떤 면에서 블리에에게서 프랑스 코미디판의 큐브릭을 발견하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라 할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남자들>, 그리고 블리에의 영화를 논의할 때면 빼놓을 수 없는 영향력은 60년대 말부터 프랑스에서 성행했던 카페 테아트르 양식일 것이다. 협소한 공간에서 어떤 과장을 통해서 기존 사회의 습속을 조롱하는 극을 올렸던 이 전통이 특히 잘 드러나는 영화는 <차가운 식사>(1979)일 것이다.

하지만 블리에의 영화 세계 안에서 <남자들>을 이야기하고자 할 때 역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욕망이란 주제, 특히 남성의 긴요하고 기이한 욕망이란 주제일 것이다. 종종 여성혐오주의자란 소리를 듣는 그는 삶 안에서 여성들은 다소 재미가 없기 때문에 코믹한 캐릭터로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항상 남성들이라고 말한다. 이 남성들은, 라블레를 인용한 블리에에 따르면, “한 사람이 머리를 잃어버리면 한 사람만 죽지만 한 사람이 고환을 잃어버리면 인류 전체를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종족들이다. 이들이 재미있는 것은, 그렇게 욕망을 중시하면서도 알고 보면 그 욕망 때문에 초조해하고 자신에 대해 불신하기도 하며 의외의 길로 향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블리에의 영화들은 위기에 처한 남성성에 대한 이야기가 되기도 하고 가족과 같은 관습을 비웃는 영화가 되기도 한다. 이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진지한 욕망에 대한 오묘한 코미디가 ‘베르트랑 블리에 감독전’이란 이름 아래 공개된다. 하이퍼텍 나다에서는 5월5일부터 매주 화요일 오후 8시20분에 블리에 감독의 작품들을 상영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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