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모든 게 처음부터 정해진 일이었을까요?”
세상 모든 것을 파괴할 빛나는 태양의 대폭발을 예감하며 존 코슬러(니콜라스 케이지)는 그녀에게 물었다. “글쎄요.” 지친 눈빛으로 그녀는 존의 말을 받았다. 비오듯 땀이 쏟아지는 존의 얼굴을 더듬으며 그녀도 이제 마지막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예감했다. “이제 끝이로군요.”
존이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몇달 전 그녀의 집 앞에서였다. 반드시 확인해야 할 것이 있었다. 존의 아들 케일럽(챈들러 캔터베리)이 초등학교 50주년 행사에서 과거 타임캡슐에 담긴 메시지 가운데 하나를 받아오던 날 모든 사건이 시작됐다. 케일럽의 종이에는 알 수 없는 숫자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MIT에서 천체물리학을 가르치는 존은 우연히 그 숫자들이 그동안 터진 대형 참사와 그 참사로 숨을 거둔 사람들의 수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당황한 존은 쪽지의 주인공을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50년 전 그 쪽지를 쓴 소녀의 딸이었던 것이다.
존은 그녀가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딸아이와 집에서 나오는 그녀의 뒤를 밟아 박물관까지 따라갔다. 존은 케일럽과 그녀의 딸을 친구로 만들어 그녀에게 접근했고, 그녀의 어머니의 예언을 추적하자는 이유로 그녀와 장거리 드라이브를 즐겼다. 그녀는 낯을 많이 가리지만 호감 어린 태도로 존을 맞았다. 그녀가 없을 때 존은 먹먹해져 오는 가슴을 가눌 길이 없어 당혹스러웠다. 존은 이 모든 것이 사랑일지도 모르겠다는 예감을 품었다. 그러는 사이 시간은 흘렀고, 종이의 예언대로 사람들은 죽어갔다. 존은 눈앞에서 벌어진 비행기 추락사고와 지하철 탈선사고를 잇따라 겪으며 좌절에 빠졌다. 존은 종이가 예언한 마지막 재앙을 막기 위해 동분서주했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아 보였다.
그리고 운명의 그날. 마침내 존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낯선 이’들은 “모든 것은 처음부터 다 정해진 일”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의 아들과 그녀의 딸을 안전한 곳으로 데려가야 한다고 존에게 제안했다. 존은 그들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밤 그녀는 마침내 존에게 “사랑을 받아들이겠다”고 나지막하게 말했다.
존은 그녀의 눈을 마주보며 물었다. “우리가 사랑하게 된 것은 우리의 자유 의지에 의한 것이었을까요, 아니면 모든 것은 처음부터 결정됐던 일이었을까요.”
그녀는 답하지 않았다. “모든 것이 정해진 일이라면 우리가 슬퍼하거나 분노하거나 좌절하거나 환희할 일도 없겠죠. 마치 물방울이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듯.” 그녀는 쓰게 웃었고 존의 손을 잡았다. 둘은 물방울이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듯 편안한 마음으로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은 뒤 마침내 폭발한 태양의 섬광을 받아안았다. 존은 자신의 결말이 마음에 들어 쓴웃음을 지었다. 잠시 정적이 지난 뒤, 모든 게 처음부터 그랬던 것처럼 아득한 흑암만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