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곽재용] “더 센 여자는 이제 없겠지?”
2009-05-20
글 : 주성철
사진 : 최성열
<싸이보그 그녀> 감독 곽재용

곽재용 감독은 국내 활동이 뜸해서 근황이 무척 궁금한 사람이지만 사실 가장 바쁜 감독 중 하나이기도 하다. <엽기적인 그녀>(2001)의 범아시아적인 성공에 힘입어 그는 점차 활동영역을 아시아 전체로 넓혀왔던 것. 유위강의 <데이지>(2006)와 서극의 <여인불괴>(2008)에 시나리오를 써준 것을 비롯해, 2003년 유바리국제판타스틱영화제 최고인기상을 시작으로 일본에서도 수차례 러브콜을 받은 끝에 <싸이보그 그녀>(2008)를 연출하게 됐다. 국내에서의 최근 연출작 <무림여대생>(2008)이 달콤한 성공을 맛보지 못한 것이 개인적인 아쉬움으로 남지만 여전히 그를 잡으려는 아시아 각국 프로듀서들의 움직임은 분주하다. <싸이보그 그녀>를 통해 “한국 영화감독 중 일본에서 100억원에 가까운 제작비를 들인 영화를 연출한 최초의 감독”이 된 것도 그래서다. 그래도 그는 ‘한국 감독이 만든 일본영화’ <싸이보그 그녀>가 한국 극장에서 잘되기를 바라며 여전히 한국 관객의 사랑을 받는 ‘한국 감독’이고 싶어 했다.

- ‘한국 감독이 만든 일본영화’로 한국 극장에 서는 기분이 묘하겠다.
=다른 제의들을 뿌리치고 일본에서 영화 연출을 한다는 것 자체가 욕심나는 도전이었다. 영화가 잘되면 나도 좋지만 일본으로부터 투자도 많이 들어올 것이고, 혹시 다른 후배 감독들이 일본으로 진출하는 데에도 좋은 선례가 되리라 생각했다. 한국에서 잘 봐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싸이보그 그녀>의 성공 여부가 중요한 시험대가 될 것 같다. 나로서는 한국에서는 일본영화라 하고 일본에서는 한국영화라 그러는 게 제일 난감하다. 일본에서 도호영화사가 한국영화를 개봉했다가 실패를 맛보면서 원래 투자하기로 했던 <싸이보그 그녀>를 두고, 내가 한국 감독이라는 이유로 투자를 철회해 10억원 정도의 예산이 빠졌다. 거기에다 국내 대형 배급사들이 관심을 보이지 않은 것도 많이 섭섭했다. 그래서 뒤늦게나마 <싸이보그 그녀>가 한국에서 개봉할 수 있게 해준 동아수출공사에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난 이 영화가 잘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정말 초조하다. 개인적인 바람은 <일본침몰>의 120만 관객 기록을 깨서 국내 상영 일본영화 흥행기록을 새로 세우는 거다.

-그런 점에서 한국에서 가장 최근에 찍은 작품인 <무림여대생>이 만족스런 흥행 결과를 낳지 못해서 좀 신경이 쓰였겠다.
=아직도 <엽기적인 그녀> 얘기를 하는 사람이 많다. 이제는 더이상 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무림여대생>도 처음에는 거의 무협 분위기였는데 현실적인 코미디가 많이 들어가게 된 게 바로 그런 제작자의 요구였다. 또 하나 어려웠던 건 <무림여대생>도 처음에는 문근영이 캐스팅될 것 같아서 착수한 작품이었는데, 최종적으로는 문근영이 <사랑따윈 필요없어>에 출연하게 됐다. 그러다보니 기존 투자액에서 10억원 정도가 떨어져나갔다. 이거 또 10억원이네. (웃음)

-<싸이보그 그녀>는 일본 내에서도 <엽기적인 그녀>와 많이 묶여서 홍보가 됐다.
=아무래도 <엽기적인 그녀>가 일본에서 드라마로 만들어질 정도로 유명하다보니 그런 건데 나 스스로는 크게 의도하지 않았다. 오히려 벗어나려고 노력 많이 했다. 그런데 묘한 게 아야세 하루카나 고이데 게이스케가 묘하게 전지현이나 차태현을 생각나게 하는 부분들이 있다. 가령 아야세가 엄지손가락 딱 치켜들 때 보면 ‘불쑥’ 그러는 모습이 전지현이랑 참 비슷하다. 고이데 역시 외모나 표정은 물론 만화적인 상상력이 담긴 제스처가 무척 비슷하다. 고이데는 맨 처음 봤을 때 머리도 길고 해서 연관성을 찾지 못했는데 무대인사 같은 거 할 때 유쾌하게 얘기하는 거 보면 그런 것도 비슷하다.

-언어가 원활하게 통하지 않는 어린 배우들과 어떻게 소통했나.
=아무래도 언어문제가 컸는데 아무리 뛰어난 통역을 거쳐도 친근한 대화는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 두 가지 원칙을 세웠는데 언제나 무조건 함께 식사를 하는 것과 통역을 거치더라도 모든 설명과 지시를 내가 직접 하는 것이었다. 밥을 먹으면서 그 어떤 사소한 얘기라도 함께하려 했고, 일본에서는 감독의 지시가 대부분 조감독을 거쳐 전해지던데 그게 싫었다. 그래서 감정잡는 거라든가 액션 제스처 등 모든 것을 내가 직접 보여주고 동의를 구하면서 세밀하게 작업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한국이건 일본이건 아주 절친한 배우가 아니고서야 기본적인 거리감은 있을 수밖에 없다.

-아야세 하루카는 최근 굉장히 많이 뜬 배우다. 뿌듯한 마음도 있겠다.
=고맙게도 <싸이보그 그녀>를 자신의 데뷔작으로 하려고 나를 1년이나 기다렸다. <싸이보그 그녀> 뒤에 촬영한 <이치> 같은 작품도 미뤄둔 채 나를 기다린 거다. 내가 생각한 캐릭터에 매력을 느끼고 애착을 가져준 게 얼마나 고맙겠나. 게다가 닛칸스포츠 필름 어워드에서 상도 탔으니 더더욱.

-모든 스탭과 배우를 일본인으로 꾸리긴 했지만, 차태현 같은 경우는 카메오처럼 출연시키려는 생각도 있었던 것으로 안다.
=차태현이 잠깐 우정출연해서 고이데와 마주치는 장면이었다. 차태현도 미래에서 왔는데 잘못된 시점에 떨어져서 “지금 몇년이에요?” 하고 물어보는 장면이었다. 그러면서 고이데랑 마주치는 건데, 말하자면 자기가 자기를 보는 거다. 성사됐으면 재미있었을 장면이 사정이 여의치 않아 무산됐다.

-<싸이보그 그녀>를 보며 가장 놀란 건, 정말 다른 한국 스탭이나 배우 없이 혼자 참여한 것임에도 자신의 기존 스타일이나 선호하는 장면들을 그대로 유지했다는 점이었다.
=사실 그걸 좀 알아줬으면 좋겠다. (웃음) 내 생각은 그거였다. 이 사람들이 나를 감독으로 데려온 것은 내 색깔을 넣어주길 바라서지, 다른 일본 감독들처럼 익숙한 일본영화 만들듯이 만들기 위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특히 과거로 넘어간 시골 장면은 정말 고집해서 촬영했다. 제작비 문제로 빼자는 얘기가 굉장히 많았는데 난 무조건 넣어야 한다고 했다. 제작자가 처음에는 “맘대로 해!” 그렇게 화내다가 나중에는 “제발 좀 빼고 갑시다”라고 사정하기도 했었다. (웃음)

-예민의 <어느 산골소년의 사랑 이야기>가 번안곡으로 계속 들려온 그 시골 장면에 대해 더 얘기해 달라.
=처음부터 CD를 스탭과 배우들에게 주고 ‘이 노래는 시골 장면에 들어갈 것’이라고 주입시켰다. (웃음) 현장에서는 큰 스피커로 틀어놓고 촬영했고 촬영감독도 프레임수를 계산하면서 음악 들으며 작업했다. 그런데 일반 관객을 대상으로 시사를 하는데 한국 노래 그대로 그렇게 오래 쓰이는 것에 대해서 조금 충격이 있더라. 그래서 제작자들도 걱정을 많이 했는데 나는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에서 처음으로 일본 노래를 한국영화에 쓴 감독”이라고 강조하면서 별 문제없을 거라고 얘기했다. 그런데 최종적으로는 내가 양보를 해서 가사를 조금 바꿔 일본 가수의 번안곡으로 넣고 아이들의 합창 장면을 넣었다. 내가 좋아하는 장면 중 하나인데 일본 개봉 당시 나이 드신 분들은 그 아이들 노랫소리에 눈물 꽤 흘리시더라.

-아무래도 한국과 일본의 그런 미묘한 차이는 연출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었겠다.
=가령 시골 장면에서 할머니가 학교에서 돌아온 손자를 보고 “학교에서 안 혼났어?” 하고 물으면 “다른 애들은 숙제 안 해서 혼났는데 난 안 혼났어”라고 대답하고 할머니는 “아이구 내 새끼” 그런다. 그런데 일본 학교에서는 딱히 그렇게 야단치는 일이 없으니까 할머니가 그런 질문을 하는 것 자체가 틀린 거라고 하더라. 근데 내 입장에서는 ‘안되는 게 어딨어?’하는 생각으로 넣었다. (웃음) 누가 참견하는 걸 좀 싫어하는 편이라 옥탑방 장면 같은 경우도, 한국에서는 돈 없는 젊은 학생들이 지내는 곳이지만 영화 속의 그런 옥탑방이 일본에서는 잘사는 애들이 사는 곳이라고 했다. 그리고 일본에는 ‘생일빵’이나 폭탄주 같은 것도 없으니까 신기하고 재밌어했다. 아, 또 생각나는 게 있는데 고베 실제 거리에서 지진 장면을 촬영하고 싶어서 피 흘리는 사람들의 거리 장면을 준비했다. 건물 무너지는 건 CG로 하기로 하고. 경찰 협조까지 다 얻었는데 결국 비가 와서 완전히 실패했다. 일본 경찰은 완전히 ‘칼’이더라. 좀 사정을 구하고 싶어도 전혀 융통성이 없었다. 내가 불평을 하고 있으니까 우리 스탭 중에 전에 한국에서 영화 촬영한 적 있는 친구가 얘기하길, 거리에서 촬영하던 중 한국 경찰이 무섭게 다가오기에 다들 졸았는데 경찰이 웃으면서 “주인공이 누구예요?” 그랬다더라. 사인을 받아주니 “수고하십쇼” 하고 돌아갔다고 했다. (웃음)

-아무래도 지진은 일본인들에게 예민한 부분일 텐데 그런 점에서 조심스러운 측면은 없었나.
=고베 지진 12주년 되는 날 촬영을 시작했다. 촬영 때는 문제가 없었는데 영화 도입부에 등장하는 ‘동경대지진’이라는 대목을 빼달라고 하더라. 일본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두려워하는 것이다 보니 그런 자막이 나오면 관객이 이미 패닉 상태로 영화를 보기 시작한다는 거지. 그렇게 일본 사람들은 언젠가 큰 지진이 온다, 하지만 그게 언제인지 모른다, 그런 생각을 일상적으로 갖고 있다고 하더라. 실제로 엄청 두려운 거다. 그리고 일본에서 80년대 이후 지은 건물들은 지진 설계가 잘돼 있어서 영화처럼 그렇게 와르르 무너지지는 않는다고 하더라. 사실과 좀 다른 거지. <싸이보그 그녀> 속 도시 지진 풍경은 오히려 서울과 비슷할 거라는 얘기를 들은 적 있다. 그래서 이 영화의 지진 풍경은 거의 전쟁이 난 느낌, 종말에 가까운 듯한 느낌을 줘서 인상적이라는 얘기도 들었다.

-당신 영화는 <엽기적인 그녀> 스타일과 <클래식> 스타일로 나눌 수 있을 것 같은데, 전자의 경우 괄괄한 성격의 <엽기적인 그녀>에서 <무림여대생>의 차력사로까지 나아가더니 <싸이보그 그녀>에서는 아예 사이보그가 됐다. 당신이 좋아하는 여성 캐릭터가 점점 더 세지고 있는 것 같다.
=바꿔 말해 내 영화가 점점 판타지에 가까워진다는 얘기일 거다. 나도 그런 점을 생각해보니 점점 현실에서 계속 판타지로 나아가려는 욕망이 있는 것 같다. 처음에는 사귀고 싶은 여자에 대한 소망으로 시작했다가 그런 여자가 내 소망을 이뤄주는 것도 좋고, 시간도 왔다갔다하면서 나를 구해주고 나쁜 놈들을 물리쳐주기도 한다. 점점 더 내 여자친구한테 바라는 게 많은 거지. (웃음) 시나리오에 있었는데 빠진 장면 중에 아야세가 야쿠자와 100 대 1로 싸우는 장면이 있다. 그런데 아무래도 제작비 문제도 있고 해서 지진 장면에 집중하느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여자는 빠른데 야쿠자는 느리고 또 그렇게 화려한 액션을 해야 하니 CG도 많을뿐더러 적어도 일주일 이상 촬영해야 하는 장면이었다. 그렇게 내 페르소나가 약한 남자와 센 여자의 구도에서 점점 더 그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그래서 이젠 좀 다른 걸 해봐야지 하는 생각이 있다. 사이보그보다 더 센 여자를 지금으로선 생각하기 힘들어서. (웃음)

-그래도 기본적으로 곽재용 하면 ‘멜로’ 이외의 것을 생각하긴 힘들다.
=멜로는 하되 이런 구도의 이야기는 좀 그만하고 싶다는 얘기다. <클래식> 같은 영화를 하고 싶은데 그 속편 하자는 사람도 있고, 그 느낌의 다른 시나리오로 <순수의 시대>라는 작품도 생각 중이다. 생각해보면 <클래식>도 모든 영화사에서 다 거절당하다가 <엽기적인 그녀>가 성공하면서 하게 된 경우였다. 사실 그런 영화들을 제대로 알아주는 사람은 드물다. 가령 <데이지>는 시나리오가 재밌지만 <클래식>은 시나리오만 볼 때 하품난다. 당시 시네마서비스도 <클래식> 찍는 동안 나온 영상들을 보고는 이거 (시나리오와) 같은 영화냐고 물었다. (웃음)

-일본에서 제의받은 또 다른 프로젝트들은 없나.
=<충신장>은 액션영화로서 한번 해보려고 했다. 그런데 <충신장>은 무조건 연말 연시 개봉 영화여야 해서 스케줄이 잘 맞지 않았다. 그리고 <나생문>을 하자는 제의도 있었고 실제 배우로 오구리 슌과 아오이 유우를 캐스팅할 수 있는 단계까지 갔었다. 그런데 그것 역시 구로사와 아키라의 기존 작품을 다시 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 등으로 인해 무산됐고, 다시 그 두 배우를 캐스팅해서 <라이호우>를 준비하기도 했다. 아오이 유우가 어렸을 때 납치돼서 깊은 산골에서만 사는 여자로 나오고, 왕자인 오구리 슌이 이동하던 도중 사고를 겪고 그 마을에 머물게 되면서 둘이 사랑에 빠지는 내용이었다. 이것 역시 편집권 문제로 인해 의견 차이가 있었고 결국 잘 안됐다. <덤불 속> 영화화 제의도 있었는데 그건 개인적으로 별로 하고 싶지가 않았고. 그것 역시 아오이 유우를 캐스팅할 수 있었는데 그때만 해도 아오이 유우는 투자받기 힘든 배우였다. (웃음) 그렇게 고생을 좀 했다. 미이케 다카시는 일본이 얼마나 영화감독하기 힘든 나라인지 아느냐며 만류했고, 이와이 순지도 한국에서 잘하시던 분이 왜 굳이 일본에서 영화를 만들려고 하냐고 그러더라. 그럴수록 더 힘을 낸 거지.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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