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액세서리]
[그 액세서리] 그 구두는 정말 여자 같았을까
2009-05-20
글 : 강지영 (GQ KOREA 패션디렉터)

한물간 토크쇼 진행자 데이빗 프로스트(마이클 신). 탈출 예술가를 꽁꽁 묶어서 강물에 빠뜨린 뒤, 노란색 포켓치프와 남색 물방울 타이를 맨 채 “그가 과연 살아서 나올까요?” 하곤 눈썹을 찡긋 올리는 일에 이제 그만 넌덜머리가 난 그는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사임한 직후의 닉슨(프랭크 란젤라)에게 인터뷰쇼를 제안한다. 닉슨은 라펠이 커다란 영국식 스트라이프 슈트와 보라색 클레릭 셔츠(칼라와 소매만 흰색, 몸판은 다른 색을 쓴 셔츠), 매듭이 야구공만한 넥타이를 매고 나타난 프로스트를 광대 같은 멋이나 부리는 애송이로 단정짓고 출연을 허락한다.

교만한 전직 대통령은 만만한 상대를 슬슬 갖고 놀면서 인터뷰 대가로 돈이나 챙기고 제 할 말만 실컷 하고 끝낼 작정을 한다. 그는 프로스트를 배웅하면서 보좌관에게 “아까 그 구두 봤나? 이탈리아제. 끈없는 거 말야” 하고 묻고, 보좌관은 “남자 구두는 끈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대답한다. 닉슨은 “당연하지” 하고는 문을 닫는다.

인터뷰쇼 첫날. 차에서 내리는 닉슨의 구두가 클로즈업된다. 광택없는 검정색 끈 묶는 구두. 남색의 헐렁한 슈트에 평범한 셔츠를 입고 눈에 띄지 않는 타이를 맸다. 반면 프로스트는 금단추가 달린 더블 블레이저, 하늘색 클레릭 셔츠, 매듭을 크게 맨 파란 타이와 늘 신는 구찌 로퍼 차림이다. 마주 앉아 메이크업을 받는 동안 닉슨은 “그 구두 말야, 너무 여자 같다고 생각하지 않나?” 놀리듯 말한다.

4일간 예정된 인터뷰쇼 내내 프로스트는 영양가 없는 ‘잽’만 날리는 반면 닉슨은 움직였다 하면 그게 다 ‘펀치’다. 누가 봐도 상대가 안되는 게임. 그러나 결정적인 어떤 순간 때문에(짐작했겠지만) 결국 닉슨이 말했던 ‘둘 중 한 사람에겐 영광, 나머지에게 황야’가 될 거라던 쇼의 영광은 프로스트에게 돌아간다. 영화 <프로스트 VS 닉슨>의 마지막. 프로스트는 닉슨을 찾아가 선물을 건넨다. “유심히 보시던 그 구두 한 켤레입니다.” 은퇴한 정치인다운 바닷가의 집, 석조 난간 위에 부드러운 양가죽으로 싸인 금장 홀스빗 장식의 구찌 로퍼가 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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