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경은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
<마더>의 줄거리를 처음 접했을 때, 직감적으로 어떤 이미지 하나가 떠올랐다. 구치소에서 막 풀려난 아들과 엄마의 감격적인 포옹을 클로즈업한 사진이었다. 다시 찾아보니, 1993년 12월17일자 <한겨레>에 실린 거였다. 이듬해 한국사진기자협회 보도사진전 뉴스 부문에서 수상한 덕에 여러 매체에 실려 기억에 남았던 것 같다. 그 보도사진 속 엄마의 표정은 강렬했다. 목숨을 걸고 아들의 결백을 위해 싸웠을 그녀의 모정이 뭉클하게 잡힐 듯 했다. 아닌 게 아니라, 직감은 맞았다. 봉준호 감독은 지난호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마더>의 모티브를 그 사건에서 찾았다고 말했다. 바로 김순경 사건이다.
1992년 11월, 관악경찰서 소속 26살 김아무개 순경은 어처구니없이 몰렸다. 그와 함께 여관에 투숙했던 애인이 목졸려 죽은 채 발견돼서다. 그는 같은 경찰서의 형사들에게 용의자로 지목됐고 구속됐다. 기본적으로 정황이 불리했다. 결정적으로 ‘과학수사’가 배신했다. 시신의 경직과 체내온도를 감식한 서울경찰청 감식계와 이에 기반한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사망시간 추정은 그를 꼼짝 못하게 했다. 풀리지 않는 의문점들이 나왔지만 묵살됐다. 그는 1, 2심에서 징역 12년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던 중 우연히 진범이 잡혔다. 13개월만에 풀려난 그는 기자들에게 말했다. “진실을 밝혀준 것은 검찰도 사법부도 아니다. 외롭게 애쓴 가족들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마더>의 도준(원빈)과 김순경의 처지가 일치하는지 어쩐지는 말할 수가 없다. 스포일러다. 시사회를 앞두고 기자들 사이에서는 “영화에 강력한 반전이 있다더라”는 소문이 떠돌았다. 그 소문의 진위 여부는 극장에서 직접 확인해보시라.
김순경 사건은 완벽한 반전이었다. 대검찰청은 이 사건을 반성하는 의미로 <K씨 사건을 계기로 본 강력 사건의 수사상 문제점과 대책>이라는 소책자를 발간했다. 법원은 또 “김순경이 당한 정신적·물질적 피해와 관련해 국가는 2억4천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김순경은 자신을 범인으로 엮은 경찰과 검찰 관계자들을 고소·고발했다. 그 고발장에 담긴 검경의 행태는 한마디로 ‘악마의 기록’이다. 협박과 회유, 폭력과 모욕의 소름끼치는 교본이다(고발장은 인터넷에서 검색된다). 아니다. <마더>를 통해 경찰 강압수사의 교훈을 되새기자고 할 이유는 전혀 없다. 영화를 보고 나서도 나는 보도사진 속에서 울부짖던 김순경의 어머니 홍아무개씨의 잔상이 떠나지 않았다. 악마와의 싸움에서 승리했던 그 엄마는 이제 행복하게 잘 살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