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홍경표] 꿈처럼 찍어야 할 것 같았다
2009-06-05
글 : 장미
글 : 문석
사진 : 오계옥
<마더>의 홍경표 촬영감독

고속버스 안에서 아줌마들이 열렬히 몸을 흔든다. 홀린 듯 비적비적 자리에서 일어난 엄마(김혜자)도 그들 중 하나가 된다. 지평선에 걸린 태양이 그녀들의 측면에 쏟아지고, 비극적이고도 희극적인 춤사위는 그림자로 변주된다. 아찔하다. <마더>는 기괴한 오프닝으로 시작해 기괴한 엔딩으로 끝맺는 영화다. 인상적인 장면이야 셀 수 없지만, 바람이 음울하게 살랑대는 너른 들판에서 엄마가 괴이한 표정으로 춤을 추는 오프닝과 빛줄기가 여자들의 실루엣을 타고 흘러내리는 엔딩만으로, 봉준호 감독의 신작은 무서운 마력을 발휘한다. 그러니 그와 처음 협업한 홍경표 촬영감독의 작업 또한 자연스럽게 궁금할 수밖에.

벌써 개봉을 앞두고 있건만 홍경표 촬영감독은 모성이라는 강력한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헤어나지 못한 듯했다. 그렇다면 <마더>를 “금방 안 잊혀지는 여자”라고 말하던 그에게, 이 끈덕진 엄마는 어떤 영감을 던졌을까. <챔피언>(2002), <지구를 지켜라!>(2003), <태극기 휘날리며>(2004), <태풍>(2005), <M>(2007) 등에서 색과 빛을 끊임없이 실험하는가 하면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는 데 두려움이 없는 홍경표 촬영감독을 만나 이번 영화가 어떤 도전이었는지 물었다. 가슴팍에 호랑이를, 팔엔 불새를 품고 있던 이 자그마한 사내는 엔딩신의 비밀 역시 소상하게 밝히는 호의를 베풀었다.

-<마더>의 작업은 언제 처음 제의받았나.
=작업 제의를 받았다기보다 다른 영화 준비하러 LA에 갔을 때 (봉)준호랑 통화를 했다. 미국에 온다 그래서 만나서 밥을 같이 먹었는데,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면서 내 일이 언제 끝나는지 물어보더라.

-<파이어 베이> 때문에 가 있었던 건가.
=그렇다. 4개월 정도 준비하다가 들어가기 일주일 전에 연기됐다. 독립영화인데 버짓(예산)이 좀 크다 보니. 멕시코하고 도미니카를 왔다갔다하면서 준비를 꽤 했다. 지금은 판권이랑 이런 게 스튜디오로 넘어갔다.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봉준호 감독이 <펀치 드렁크 러브> 같은 느낌을 요구했다던데.
=<펀치 드렁크 러브>의 차신을 보면 아무렇지 않은 가운데 갑자기 팡 치면서 뭔가 튀어나오지 않나. 컨셉은 여러 가지를 준비했다. 네덜란드 사진작가 헬렌 반 미네의 사진도 보고. 준호한테 어떻게 찍고 싶냐니까 강렬하게 찍고 싶다고 하더라. 컬러도 그렇고, 뭔가 미세하게 이야기하려는 게 있어서 나랑 하고 싶었다고. 조금 여성스러운 느낌도 있고, 그런데도 되게 강렬하다고. <태극기 휘날리며> <태풍> 이런 걸 해서 거친 남자영화만 했다고 기억하기도 하지만 제대로 보는 사람들은 그렇게 안 보더라. 섬세하고, 컬러의 미묘한 감정에도 신경 쓴다는 걸 느끼더라고. 잘 모르겠지만, 나는 빛을 계속 움직이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촬영 컨셉은 크게 어떻게 잡았나.
=감독이 준 미술 자료들을 보면서 색, 밸런스, 톤을 이야기하는 건지, 아니면 그 안의 느낌을 이야기하는 건지 잡아가는 과정에서 헬렌 반 미네의 사진이 눈에 들어오더라. 그린 톤의 묘한 사진이었다. 그게 어떤 감정의 방증인 것 같더라고. 이 느낌이 어떻게 배어나오게 할까. 그러면서 렌즈를 아나모픽으로, 화면비율을 2.35:1로 가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김혜자 선생님도 출연해서 클래식한 느낌을 많이 받았다. 시나리오 역시 웃기기도 한데 심플하면서도 속이 쓰리고. 그래서 옛날 렌즈인 아나모픽 렌즈로 시도해보자. 클로즈업도 많을 거라 그러더라고. 인물에 대한 이야기고, 선생님 눈빛이 중요하다고.

-렌즈를 들여오기가 힘들었다고 하던데.
=독일에서 들여왔다. 그중에서 호크 렌즈가 제일 쓰기 좋더라. 렌즈만 가져와서 우리나라에 있는 보디에 맞추면 되니까. 촬영감독은 특히 아나모픽으로 찍고 싶은 욕심이 있다. 렌즈 자체도 특색이 있더라. 이 영화에 딱 맞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눈빛하고도 관계가 있는 건가.
=관계가 있다. 보통 렌즈는 풀숏으로 멀리 있는 사람을 찍으면 거의 뭉개진다. 그런데 이 영화에선 그 먼 데서 걸어가는 김혜자 선생님의 스카프, 걸음걸이까지 다 보인다. 화각이나 느낌이 다른데 전문가들이 아니면 잘 모른다. 조그만 극장에서 보면 또 구분이 안 가고. 하이엔드에서 즐기고 싶은 사람은 메가박스 M관에서 보는 게. (웃음) 한국에선 딱 거기밖에 없으니까. 첫 장면에서도 거의 3D 같은 장면을 전개시키고 싶었는데, 큰 극장에서 보면 그런 걸 느낄 수 있다.

-엄마가 걸어나와서 춤추는 장면 말인가.
=맞다. 선생님이 이 영화를 이끌어갈 거니까 살아 움직이는 듯한 그런 느낌. 그런데 다른 극장에선 다 잘리고. (웃음)

-의도했던 2.35:1이 잘 안 살았겠다.
=완전히 사라지고. (웃음) 그래도 영화가 워낙 좋아서 볼 때마다 뒤통수를 때리는 게 있더라고. 특히 후반부 장면에서는 나도 정말 심혈을 기울였다. 감정적으로 잘 끌고 가야 하니까. 난 정말 이 영화의 생명이 바람이라고 봐. 아주 미세한 바람이 이미지에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다른 테크닉보다 화면 안에 바람이 있는 게 중요하다, 해보다도 더.

-봉준호 감독 영화 중에서 가장 판타지에 가깝지 않나 싶다.
=부산 문현동에서 찍을 때인가 꿈 이야기를 들었다. 꿈처럼 찍어야 하지 않을까. 이걸 내가 나름대로 해석해서 들은 건지, 준호가 그렇게 말한 건지, 정확하지 않은데(웃음) 어쨌든 와닿는 게 있어서 확실히 감을 잡았다. 이번 밤장면은 확실하게 밀어붙일 거야. 어둡게. 디테일이 안 보이게. 인물만 살리고. 꿈에는 강력한 라이트가 없지 않나. 어두운 데서 뭔가 막 나올 것 같은 그런 느낌. 라이트로 치면 백라이트가 없는.

-클로즈업이 많아서 고심한 부분이 있지 않을까 싶던데.
=그게 이 영화의 특색이다. 클로즈업이 많으면 부담스럽지. 나도 클로즈업 너무 많은 몇몇 영화들을 별로 안 좋아하니까 걱정도 좀 되고. 예쁜 사람들이 아니잖나. 감정들을 드러내는 건데 힘들지.

-어떤 장면은 얼굴이 화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더라.
=엄마하고 도준이가 교도소에서 마주보고 이야기하는 장면에서 900mm 렌즈를 썼으니까. 화장터 장면도 900mm 줌렌즈를 가지고 당기면서 찍은 거다. 거기서 좀더 클로즈업, 좀더 클로즈업하더라고. 좀 불안하기도 했다. (웃음) 교도소신 중에서 진짜 긴 테이크가 하나 있다. 원테이크로 찍은 건데 그걸 잘랐다. 줌렌즈 크기가 이만한 걸 올리고, 포커스도 일부러 나갔다 들어오게 하고. 그래야 라이브한 느낌이 나니까. 편집을 묘하게 잘했더라고.

-전반적으로 톤이 좀 탁하다 싶기도 하다.
=약간 차갑다가 마지막에 강렬한 앰버를 주고 싶었다. 관광버스 시퀀스에서 해가 등장하고, 거기에서 색깔이, 빛이 확 느껴졌으면 싶더라. 개인적으로도 노란 영화는 별로 취향이…. (웃음) 게다가 준호가 <M>을 봤잖나. 밤신의 톤에 대해서는 믿고 가는 것 같더라. 블랙에도 많은 톤이 있는데, 이 영화의 블랙이 완전히 새카맣진 않다. 블랙이 깨끗하게 뜨면 정보가 없는데, 스모키 블랙이면 저 뒤에서 뭔가 튀어나올 것 같다. 그걸 <M> 하면서 많이 느꼈다,

-엔딩신이 인상적이다. 오랫동안 준비했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찍었나.
=해가 떨어지는 각도 때문에 장소가 정말 중요했다. 몇 군데를 찾았다. 고흥에도 있었는데 각도가 빗나가더라고. 거기서 찍으려면 10월 말이 돼야 하더라. 카메라의 화각이 있기 때문에 대상이 그 시야에 들어오려면 날짜까지 정확히 계산해야 한다. 3일 안에 찍어야 했다. 백업 카메라를 두대 놓고 찍었는데, 결국 내가 찍은 원신 원테이크로 갔다.

-하루 동안 촬영할 수 있는 시간은 얼마 정도였나.
=10분 안에 끝내야 했다. 새벽에는 테스트를 했다. 낮에 버스 장면들을 찍은 다음 해 떨어지기 전에 다시 찍는 거다. 근데 거기에 과속방지턱을 만들어놨더라고. 힘들었지만 찍다 보니 또 느낌이 좋더라. 더 리얼하고 감정에도 맞더라. 그 숏 찍고 나서 정말 운이 좋았다 싶었다. 1월7일이었는데, 날씨가 흐리면 찍을 수가 없잖나. 근데 해가 넘어가면서 쫙 비치는 거다. 야, 이거 정말 죽인다. 찍으면서도 느낌이 와.

-전 장면도 특이하던데. 카메라가 의자 위를 넘듯이 엄마 자리까지 움직이는 그 장면.
=다들 신기해하지. 유일하게 CG 쓴 장면이다. (웃음) 차를 뜯어보고 했는데도 도저히 카메라 본체가 그 사이에 안 들어가는 거다. 그래서 의자 다 뜯어내고 찍자. CG팀하고 협의를 했는데 그걸 <헨젤과 그레텔> 때 한번 써봤다고 그러더라. 그래서 완벽하게, 아무도 모르게. (웃음) <마더>는 CG도 그렇고 눈에 거슬리는 게 눈곱만큼도 없어. 준호는 <괴물> 끝내고 불 때문에, 나도 <태극기 휘날리며> 끝나고 마지막 폭파 때문에 좀. (웃음) CG 많은 영화 하다보면 감정이입을 깨는 순간이 있을 수 있으니까.

-가장 고생하면서 찍은 장면이라면.
=문현동 밤장면. 김혜자 선생님이 옥상에 서 있는 그 한 장면을 위해서 꼭대기 집에까지 크레인을 집어넣어서 동네 전체에 조명을 설치했는데, 그 장면이 빠졌지. (웃음) 반대각에서 보는 게. 텅스텐으로 다 걸어서 찍었으니 라이트 개수로 치면 지금까지 한국영화에서 제일 많을 거다.

-헌팅을 많이 다녔다던데.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전국을 스캐닝했다. (웃음) 첫 장면의 들판 헌팅을 직접 하려고 했다. 제주도의 바람 부는 들판을 생각했다. 촬영날 바람이 안 불면 안되는데 제주도에는 바람이 많지 않나. 준호가 처음 보여준 사진도 제주도다. 김영갑이라고 지금은 루게릭병으로 죽은 사진작가가 있는데, 그 사람 사진을 보여주더라고. 3박4일 제주도 들판을 쓱 훑었지.

-진짜 로케이션은 어디인가.
=충남 태안군 신두리다. 나무가 병풍처럼 쳐져 있으면 좋겠다 했는데, 애들이 찍어온 걸 보니 그런 느낌이 있더라고. 가을쯤 다시 가서 사진을 찍어오고, 나는 세번 정도 더 갔다. 촬영감독이 포지션 잡기가 제일 힘든 게 들판이다. 워낙 넓으니까 미리 가서 잡아놓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 장소를 어떻게 찾아냈나.
=전국을 스캐닝했다니까. (웃음) 전체 분량의 80∼90%가 로케이션이다. 진태 집이랑 면회실 빼고 나머지는 다 로케이션이니까. 자연을, 해를 통제한다는 게 만만치 않다.

-그전부터 현장에서 스틸도 같이 찍었나.
=원래 비디오카메라를 가지고 다니면서 찍었다. 본격적으로 찍기 시작한 건 <태풍> 이후다. 그전에는 한국에서 다 같이 다니니까 어려움이 없었는데, 외국으로 나가면서 사진을 찍어서 정리하기 시작했다. 작업하는 데도 도움이 되더라. 이명세 감독님이 내 사진을 정말 좋아했다. 컨셉대로 테스트한 사진을 다 모아서 라디오 헤드의 음악에 맞춰 슬라이드로 쫙 틀어드렸더니, 정말 좋아하시더라.

-이례적으로 포스터 사진도 찍었는데, 누가 먼저 이야기를 꺼냈나.
=마케팅팀의 박혜경 실장 말이 봉 감독이 부탁해보라고 했다더라. 이 영화의 특색도 그렇고, 현장에서 나온 사진이 좋지 않겠냐고. 선생님이고, 빈이잖나. 그런 역할의 애를 스튜디오에서 찍으면 그 느낌이 날까. 김혜자 선생님이 낯을 가리기도 하고. 조명만 해주려고 했는데 촬영까지 하라 그래서 내가 찍던 방식대로. 입자나 느낌들이 조금 거칠게 나오도록.

-봉준호 감독과는 첫 작업인데 어땠나.
=정말 재미있더라. 커뮤니케이션이 잘돼서 너무 편했다. 최근에 <도쿄!>를 봤는데, 야, 이거 멜로도 참. (웃음) 봉준호라는 이름을 빼면 누가 찍었는지 모르겠더라고. 하여튼 이번 영화는 나도 너무 깊이 들어가서 빠져나오기가 힘들다. 다른 영화를 찍어야 하는데 빨리 안된다. 내가 잘 잊어버리거든. 그랬는데 모르겠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아, 되게 아쉽다. 말로 표현을 못하겠는데 후유증이 좀 있다. 여자랑 헤어져도 뒤끝이 오래 가는 여자가 있고 금방 빨리 잊혀지는 여자가 있는데, 이건 잘 안 잊혀진다.

-다음 여자는 이재용 감독 영화라고.
=그건 완전히 다를 거다. 디지털영화다. 여배우에 대한 페이크다큐멘터리인데, 그냥 나가서 찍으면 될 것 같아. (웃음) 너무 계산을 하면 안되잖나. 이재용 감독도 그러더라고. 마음대로, 본능대로 찍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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