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유준상] “영화 속 욕을 몽땅 정치판에…”
2009-06-12
글 : 주성철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로니를 찾아서> 배우 유준상

유준상의 표정은 밝았다. 한마디 한마디 배우로서 에너지가 넘쳐 보였다. 그럴 만도 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와 <로니를 찾아서>, 그리고 뮤지컬 <삼총사>에 이르기까지 그는 새로운 전성기를 열어가고 있다. <로니를 찾아서>에서 그가 연기하는 태권도 사범 ‘인호’는 평범한 소시민이다. 자신에게 망신을 준 방글라데시 청년 로니를 찾기 위해 생업을 내팽개치고 그의 친구 뚜힌과 옥신각신하던 그는 결국 방글라데시까지 가게 된다. 로니를 찾는 과정, 뚜힌에게 마음을 열기까지의 과정은 바로 그에게 잃어버린 자신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 된다. 유준상이 <로니를 찾아서> 출연을 결심하게 된 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좋아서다. 서로 전혀 다른 세계에 있다고 생각하던 두 사람이 만나 우정을 나누고, 서로를 갈라놓고 있던 벽은 스르르 기분 좋게 무너진다. 그것은 또한 유준상이 배우로서 애타게 자신의 얼굴을 찾는 과정이기도 했다. 예전에는 거울 속 자신을 보면서 늘 시선을 피하거나 갸우뚱했지만 이제는 똑바로 쳐다볼 수 있게 됐단다. 그는 정말 로니도 찾았고 자기 자신도 찾았다.

-<로니를 찾아서>를 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심상국 감독님에게 시나리오를 받고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됐다. 그즈음 난 계속 뭔가를 잃어버리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돌아가신 아버지도 생각나고, 잃어버린 시간이나 일기장도 생각나고. 그런 고민을 하던 차에 <로니를 찾아서>를 만나게 된 거다. 제목도 ‘찾아서’고. (웃음) 물론 내가 찾는 것과 영화가 찾는 것은 다르지만 그렇게 영화와 내가 하나로 일치되는 동질감 같은 걸 느꼈다. 게다가 요즘 너무 욕 나오는 세상인데 영화 속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인호의 현실이나, 울분만 쌓여가는 국민들의 현실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인호가 영화 속에서 하는 욕들을 몽땅 정치판에다 해주고 싶은 날들이다.

-영화에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장면은.
=뚜힌을 계속 싫어하다가 조금씩 가까워져서 술을 마시는 장면이다. 그때 뚜힌이 같은 호랑이띠라고 ‘동갑’이라고 하는데 인호는 74년 호랑이띠, 뚜힌은 86년 호랑이띠다. ‘띠동갑이잖아 임마’ 그러면 그래 ‘동갑 맞잖아’ 그러면서 친구가 돼간다. 그렇게 싫어하던 사람들도 사소한 일 하나로 친해질 수 있는 거다.

-뚜힌을 연기한 로빈 쉬엑과 가까워지려고 어떻게 했나, 게다가 비전문 연기자라 나름 연기지도도 했을 것 같다.
=기억나는 장면은 인호가 뚜힌을 잡으려고 이리저리 추격전을 벌이는 신이다. 로빈에게 무조건 뛰라고 했다. 만나서 때리기 전까지 헐레벌떡 뛰었다. 영화에 담기는 추격전보다 더 많이 뛰었다. 그래야 나중에 만났을 때는 서로 완전히 기진맥진한 상태가 되니까. 을지로와 충무로에 있는 좁은 골목길에서 찍었는데 카메라가 돌아가는 장소에 다다르기까지 계속 이 골목 저 골목을 돌아 뛰어다니다가 도착했다. 그러다보니 로빈을 잡은 다음 “내가 태권도 사범이야, 이 새끼야” 그런 애드리브도 할 수 있었다. (웃음)

-그렇게 체력적으로 완전히 고갈된 상태까지 다다르니까 이성이나 국적을 떠나 둘이 결국 똑같은 인간들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맞다. 완전히 서로 지친 상태로 만나는 게 중요했다. 딴 생각 하지 않고 오직 본능만 살아 있는, 그냥 인간이 되는 거다.

-더불어 영화는 불법 체류 등 이주 노동자의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다. 배우로서는 충분히 숙지해야 할 요소이기도 하다.
=물론 이 영화에 출연하게 된 데는 그런 생각도 좀 있었다. 이제 우리가 모른 척해서는 절대 안되는 문제이기도 하고. 안산에서 거의 100% 촬영을 했는데 국내건 해외건 여행을 좋아하는 내가 왜 여태껏 한 번도 안 와봤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말 신기했다. 한국 안에서 정말 외딴섬 같은 곳이다. 노래방에서 촬영할 때 살인사건도 일어났고 도박단 검거 소식도 들려왔다. 한창 촬영 중에 전경차가 시끄럽게 오는 일도 부지기수였고. 평화로울 땐 한없이 평화로운데 밤에는 늘 싸움이 일어났다. 다행인 건 거기 사람들 대부분은 그런 요소들을 인정하면서 각자의 원칙대로 잘 살아가더라. 영화의 주제도 그렇지만 이제 다들 함께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가야 할 방법을 모색해야 할 때다.

-태권도 사범이라는 역할은 어땠나.
=실제로 아들이 태권도를 배우고 있는데, 영화에서 사범이니까 진짜 내가 태권도 사범인 줄 믿고 있다. (웃음) 다행히 태극 1장, 2장 정도는 익혀서 보여주기도 했는데 아들이 대뜸 ‘우리 도장 사범아저씨가 더 세’ 그러더라. 그래서 영화에서 검은 띠 차고 있는 사진을 보여주면서 “검은 띠면 다 똑같아. 누가 세고 약하고 그런 거 없어” 그렇게 얘기해줬다. 마음가짐이 중요한 거 아니겠나.

-당신이 유부남으로 나온 첫 번째 작품이기도 하다. 실제 아버지이기도 한 현실이 영화 속 아버지 모습에 잘 반영된 것 같다.
=비슷한 면이 있다. 영화에서 함께 걸어가는 장면이 있는데 아이가 계속 안아달라고 하니까 “야, 제발 그냥 네가 좀 걸어라. 아빠 힘들어죽겠다” 그러는 장면이 있는데 그게 실제 딱 내 모습이다. (웃음) 그런 연기는 참 자연스럽게 나오더라. 그런데 사실 나는 일할 때는 집 생각도 아이 생각도 안 하는 편이다. 종종 나보고 와이프 잘 챙겨주고 가정적일 거 같다, 그런 얘기 많이 하는데 실제는 집에 신경을 거의 쓰지 않는다. 흠흠…. (웃음)

-방글라데시 촬영은 어땠나? 인호가 각박한 현실의 한국을 떠나 여행을 떠나는 느낌이 인상적이었다.
=방글라데시 장면이 꼭 있어야 했는데 제작비 문제로 고심하다가 결국 4명만 가기로 해서 떠났다. 5박6일 정도 머무르면서 관광할 틈도 없이 촬영을 했다. 과거 한국에서 인권운동하다 추방당한 방글라데시 분이 계시는데 그분이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셨다. 그분 역시 한국에서 10년여 머무르다 빈털터리로 추방돼 자기 집에 돌아갔을 때 문을 열자마자 딸을 보고는 한참을 울었다고 했다. 인도와 방글라데시가 참 묘한 관계인데, 지금은 인도에서도 방글라데시에서도 안 받아주는 3천명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야학을 하고 계신다. 그분의 삶을 보면서 참 많이 느꼈다. <로니를 찾아서>는 그래서 더 의미있는 작품이라는 생각도 들었고. 얼핏 우리보다 열등한 나라라는 생각을 할지도 모르지만 그 나라의 행복지수는 100점 만점에 90점이다. 마지막 장면을 촬영한 건물은 학교 건물이다. 아이들하고 한참 놀다가 촬영할 때가 돼서는 아이들이 건물 주변에 다 숨고 해서 카메라를 돌렸다. 끝나고는 다시 아이들하고 놀아주고. 가치있는 삶이란 무엇인가, 하는 거창한 생각도 해보고 참 기분 좋은 경험이었다. 그러다가도 다시 한국의 현실로 돌아오면 참 답답한데 그래도 그 기분을 기억하고 재생하려 하면서 살고 싶다.

-최근 홍상수 감독의 <잘 알지도 못하면서>에서도 잠깐이나마 인상적인 출연이었다. (웃음) 어떻게 하게 됐나.
=홍 감독님과는 몇년 전 영화를 하자고 해서 만난 적 있다. 난 너무 좋아하니까 꼭 하고 싶다고 하면서 좋아했지. 게다가 그때 바로 하는 줄 알고 좋아했었는데 그건 아니었다. (웃음) 그러다 이번에 하게 된 거다. 배우 중에 홍 감독님 영화 싫어하는 사람 있겠나. 연기 패턴이나 대사, 기질 같은 것들을 언제나 그 배우에게 추출하는 감독님이라 배우로서도 꾸미지 않고 거짓되지 않은 모습으로 카메라 앞에 설 수 있어 은근히 긴장되고 설렌다. 홍 감독님이 늘 하는 얘기가 ‘바보처럼 해봅시다’다. ‘바보 노무현’이라는 표현처럼 그건 진짜 바보라서가 아니라 정말 솔직하고 용기있는 사람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에서 ‘엉까지마’라는 대사가 압권이었다. 진짜 쓰는 말인가.
=맞다. 내가 쓰는 말이다. (웃음) 사전적으로는 ‘엄살 부리다’, ‘엉기다’ 뭐 그런 뜻이다. 홍 감독님이 또 좋은 게 배우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나누신다는 거다. 한번은 “준상이는 뭘 싫어해?”라고 물어보시기에 “저는 하극상을 못 참습니다. 학교 다닐 때 다른 건 다 참아도 후배들이 엉까는 건 정말 못 참았어요” 그렇게 말씀드렸는데 그게 바로 영화 속에서 “엉까지마 이 새끼들아” 그렇게 바뀌었다. (웃음) 그게 진짜 영화 대사로 나올지는 몰랐다. 나도 영화 보다가 정말 못 견디게 웃었다. 내 속물적인 모습 같은 게 드러난 거 같아 부끄럽기도 했고. (웃음)

-요즘 뮤지컬 <삼총사>의 인기도 대단하다. 영화 출연작들 중에서는 <쇼쇼쇼>(2003)가 가장 뮤지컬적인데 개인적으로 아쉬움이 큰 영화겠다.
=<쇼쇼쇼>는 정말 ‘영화하고 싶다’는 열망이 강렬했던 작품이다. 결과적으로 좋은 결과를 얻진 못했지만 열심히 작업했고 나름 미덕이 있는 작품이라 생각한다. 영화 속 공연장면을 위해 병 돌리는 것도 연습했다. 지금도 잘한다. 그래서 요즘도 병 있으면 자유자재로 돌리다가 머리 뒤로 던져서 손을 뒤로 해서 그걸 잡는 서커스 같은 묘기를 하곤 한다. 그러면서 후배들한테 “야 <쇼쇼쇼>하면서 남은 건 이거 하나야” 그런다. (웃음) 더불어 <쇼쇼쇼>는 무대 위에서의 엄청난 열정도 좋지만 자신이 기대했던 것과 다른 결과를 얻을 수도 있다는 교훈도 줬다. 배우라면 정말 열심히 했지만 결과가 참담할 때의 그 현실도 이길 수 있어야 한다. <삼총사>가 연일 매진이고 매번 기립박수를 받는 건 큰 영광이자 짐이다. 실패했을 때와는 반대로 또 두렵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얘기를 꺼내니까 와이프가 문자메시지로 ‘두려워하지 말고 힘을 내’ 그런 문자를 보내줬다. 그래서 힘을 내려고. (웃음)

-이전 출연작들을 보면 도회적이고 반듯한 이미지와 달리 터프한 모습(<리턴>), <로니를 찾아서>처럼 소탈하고 소시민적인 모습(<쇼쇼쇼> <나의 결혼원정기>) 등 좀 차별화된 캐릭터들을 선보였다.
=사실 나는 내가 컨트리한 얼굴이라고 생각하는데 도시적인 느낌이라고 얘기해주는 사람들이 꽤 많다. 사실 그런 게 좋다. 누구는 이렇게 보고 또 누군가는 다르게 보고. 배우라면 여러 캐릭터를 소화할 수 있는 자산 아니겠나. 중요한 건 내가 나 스스로의 얼굴을 찾는 거다. 전에 한번 얼굴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아무리 봐도 배우의 얼굴이 안 보이는 거다.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도 들고. 예전에는 뭔가 보여주려고 그랬다면 이제는 달리 뭘 안 보여줘도 상관없다는 생각이다. 나이 들어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이것저것 하면서 좀더 자연스럽게 내 모습을 찾고 싶다. 그래서 <나의 결혼원정기>를 끝내고 <리턴>을 찍게 돼 너무 좋았고, 지금 하고 있는 <삼총사>의 아토스도 이전에 내가 보여주지 않았던 색다른 모습이라 좋다. 이런 기분으로 60살까지 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나. (웃음)

-정말 <삼총사>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무척 에너지 넘치는 역할이다.
=아토스를 연기하면서 매일 ‘정의는 반드시 살아 있다’고 외친다. 그리고 삼총사는 왕을 지킨다. 그런데 우리 현실의 왕은 지켜주지 못해 안타깝게 세상을 떴다. 그 괴리감이 견딜 수가 없더라. 많은 국민들이 그렇게 느꼈을 거다. 최근 돌아가는 현실을 보면 피가 역류하는 듯한 느낌이 들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오죽하면 영결식 다음날 바로 대한문 분향소를 철거하는 광경을 보고, 직접 대검찰청 홈페이지 게시판에 가서 내 이름으로 글도 올렸다. 너무 슬펐다. 영화나 뮤지컬과 달리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 자신이 초라해 보였다. 그래서 어쩌면 그렇게 더 큰 에너지로 무대에서 소리 지르고 그러는지도 모르겠다. 무대 위의 삼총사 모두 그날은 정말 울었다. 진짜 정의를 외쳐보자고.

-요즘 여러모로 배우 유준상의 가장 에너지 넘치는 모습을 본 것 같다. 상투적이지만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배우’라 해도 될까.
=요즘 일련의 일들로 인해 내 가슴은 타들어가고 있다. TV를 보면서 으아아아 소리를 지르고 울었던 그 느낌 그대로 카메라 앞에서 연기를 했다면 아마 연기상 무진장 탔을 거다. (웃음) 그만큼 응어리가 쌓였다. 그래, 이 느낌 이 기분으로 연기를 하자고 생각한다. 다행히 들어오는 작품들이 몇개 있어서 곧 또 다른 모습으로 만나게 될 것 같다. 그래서 머지않아 <씨네21> 표지도 찍고 해야 하지 않겠나. (웃음) 여기서 또 한 단계 한 단계 더 올라가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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