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향 때문에 담배를 끊었고 최근에 다시 피우게 됐지만 다시 담배를 끊을 것이라고 (이번에만 서른 번째쯤이었던가) 다짐했던 고향 친구를 오늘 오후 동네 커피숍에서 만났는데, 아니나 다를까 아직도 끊지 못하고 있었다. 소설 연재 마감이 코앞인데다 그것 말고도 써야 할 글이 어마어마하게 많으니 당분간은 끊지 못할 것이다. 금연을 위해서는 지나친 글쓰기를 삼가야 하는 법인데 직업이 직업이다 보니 쉽지 않을 것이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1년 전 홀연히 모든 글쓰기를 중단하고 금연에 돌입한 뒤 지금까지 꿋꿋하게 금연의 깃발을 높이 세워 폐가 좋지 않은 동네의 골초들에게는 모범적인 롤모델이 되어왔으나 작가들로부터는 “저 봐라, 담배를 끊으니 글을 못 쓰지 않느냐”라는 놀림감이 된 휴업 상태의 소설가로 다들 알지만, 그건 잘 몰라서 하는 얘기고 담배 끊고도 여전히 열심히 잘 쓰고 있는 현업 소설가다. 주위 사람들에게 단 한번 만에 담배를 끊었다고 이야기하면, 게다가 끊고 나서 단 한번도 담배의 유혹을 느낀 적이 없다고 하면, “거 상종 못할 사람이네”라거나 “우와 성격이 독하신가봐요”라는 다소 식상한 반응을 보이는 분들이 많은데 나로서는 모든 것이 너무나 단순하다. 어느 날 담배가 맛이 없어졌다. 그게 다다. 나 역시 어느덧 마흔이 되어서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맛이 없는데 굳이 담배를 찾을 이유가 없다.
김혜자 옆자리에서 한대 피우고 싶었어
담배를 피우지 않으니 나쁜 점도 있다. 담배 피우는 직장인들은 알겠지만 삼삼오오 커피자판기 옆에 모여 서서 (누군가의 험담을 하며) 담배 피우는 재미는 맛과 상관없이 놓치고 싶지 않은 오락거리다. 그걸 못하니 아쉽긴 하다. 요즘에는 금연자 대표로 그런 자리에 슬쩍 끼어 있곤 하지만 담배를 피우지 않으면 재미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영국 작가 닉 혼비의 <런던스타일 책읽기>를 보면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어떤 파티에 참석해 발코니에서 담배를 피우다 (세상에!) 커트 보네거트를 만났다는 것이다. 닉 혼비는 커트 보네거트를 추억하며 이렇게 덧붙였다. “그러니 자녀에게 담배를 피우지 말라고 가르치되 대신 금연에는 단점도 있다고 알려주는 게 정당하다. 담배를 피우지 않으면 미국에 현존하는 가장 위대한 작가에게 담뱃불을 붙여주는 기회도 얻지 못하게 되리라고 말이다.” 내가 이런 얘기를 읽고도 담배를 다시 피우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커트 보네거트는 2007년에 죽었다.
솔직히 단 한번도 담배의 유혹을 느낀 적이 없다는 건 거짓말이다. 가끔 매캐한 담배 연기로 목구멍을 가득 채우고 싶을 때가 있다. 맛과는 상관없이 그저 연기로 내 가슴을 채우고 싶을 때가 있다. 지난 5월에는 (이례적으로) 세번이나 그랬다. 첫 번째는 노무현 전 대통령 때문이었고(내가 만약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마지막 경호원이었고, 나에게 담배가 있냐고 물어봤다면 얼마나 괴로웠을까. 피우지 않더라도 평생 담배를 들고 다녔을 것이다), 두 번째는 행사 때문이었고(뜻하지 않게 사람들 앞에서 사회를 봐야 하는 자리였는데 긴장이 극에 달하니 무지하게 피우고 싶었다), 세 번째는 영화 <마더> 때문이었고, 배우 김혜자 때문이었다. 담배 피우는 김혜자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영화가 너무 아프게 느껴지더라. 나도 옆자리에 앉아서 한대 피우고 싶었다.
나도 <마더>를 봤다. 영화 <마더>에 대해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할 수 있겠지만, 나는 모두 다 생략하고 싶다. 마지막 장면을 위해서다. <마더>의 마지막 장면은 너무나 아름다워서 보는 순간 숨이 멎는 줄 알았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버스 속에 있던 카메라가 갑자기 바깥으로 나와서 석양을 배경으로 춤추는 (마더가 아닌) 엄마들의 실루엣을 잡는 순간, 내 입에서 ‘헉’ 소리가 났다. 고향 친구는 영화 <마더>가 3인칭 시점을 가장한 1인칭 시점을 사용했다고 썼는데, 그 말이 맞다면 카메라가 바깥으로 나오면서 1인칭 시점은 완벽한 3인칭 시점으로 바뀌었다. 아니, 3인칭이 뭔가, 한 8인칭쯤 되지 않을까. 내 눈앞에 <마더>의 마지막 장면이 오랫동안 어른거린다.
13년 전 관광버스에서의 부끄러움
지금으로부터 13년 전, 나는 어머니와 함께 관광버스를 탄 적이 있다. 형의 결혼식 때문이었다. 결혼식은 다른 도시에서 있었다. 관광버스를 빌렸고, 그 안에 어머니와 아버지, 어머니와 아버지의 동네 친구들이 함께 탔다. 결혼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어머니와 아버지와 어머니와 아버지의 동네 친구들은 신나게 춤을 추었다. 어떤 음악이었을는지는 얘기 안 해도 다 잘 알 것이고, 어떤 춤사위였을지도 얘기 안 해도 다 잘 알 것이다. 나는 그 순간 아버지와 어머니가 조금 부끄러웠다. 지금은 부끄러워했던 내가 부끄럽지만 그때는 어쩐지 어머니와 아버지가 부끄러웠다. 도대체 뭐가 부끄러웠던 것일까. 춤 실력이 너무 형편없어서?(아이고 어머니, 그 춤의 핵심은 그게 아니고, 두손을 들고 엄지손가락을 세운 다음 여기에서 한 바퀴 턴을 해주셔야…) 선곡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뭡니까 어머니, 태진아, 송대관 말고 이박사 정도는 틀어주셔야 뭔가 컬트스러운 분위기가…) 버스가 너무 좁아서?(그러게 어머니, 이 정도로 노실 거면 돈 좀 많이 벌어서 더 큰 관광버스를 빌렸어야죠) 그 좁은 통로에 서서 어머니와 아버지와 어머니와 아버지의 동네 친구들이 ‘부비부비’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안쓰러웠고 겸연쩍었고 눈을 감고 싶었고 버스에서 내리고 싶었다.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나는 (버스 내 막춤의 배후이자 춤의 축이랄 수 있는) 어머니의 눈을 피하려고 애썼다.
부끄럽지만 이제는 나도 그게 어떤 춤인지 안다. 그것은 불가피한 춤이고 최소한의 춤이며 최대한의 춤이다. 어쩔 수 없는 춤이며 그냥 춤이다. 버스에서 배에서, 혹은 꽃구경 나온 산에서, 바닷가에서 계곡에서 큰소리로 음악을 틀어놓고 춤을 추는 어른들을 만날 때면 (아주 작은 소음에도 까칠한 나지만) 마음으로 응원한다. “열심히 노세요. 더 흔드세요. 앗싸, 꽃잎은 금방 지고 시간은 부족하니까요.” 멀리서 어른들 춤추는 모습을 보고만 있어도 흐뭇하다.
13년 전의 내가 버스에서 빠져나와 바깥에서 그 장면을 보았더라면, <마더>의 마지막 장면처럼 어머니와 아버지와 어머니와 아버지의 동네 친구들을 바깥에서 볼 수 있었더라면, 나는 좀더 일찍, 어머니와 아버지를 부끄러워했던 나를 부끄러워했을는지도 모른다. <마더>의 마지막 화면은 끝날 때까지, 하염없이 어른거린다. 눈앞이 어른거려야 또렷해지는 풍경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