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김태우, 김태훈] “우리 일희일비하지 말자”
2009-07-02
글 : 정한석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약탈자들>의 김태훈과 그의 형 김태우가 연기에 관해 나눈 사려깊은 대화

<약탈자들>은 ‘상태라는 남자에 관한 몇 가지 기억과 가설’이라고 부제를 붙일 수 있을 만한 영화다. 이 남자의 지나간 행적에 관해 사람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하고 그걸 영화가 보여준다. 당연히 어딘가 좀 불명료하고 불안해 보이는 사내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런 인물을 연기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신인배우 김태훈이 그 ‘상태’를 연기한다. 그런데 그의 연기를 보다보면 누군가가 문득 떠오른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의 김태우를 떠올린다면 당신의 직관이 선명하다 믿어도 좋을 것 같다. 많이 알려진 사실이지만 둘은 형제다. 이미 뛰어난 실력으로 연기 잘하는 배우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는 형 김태우가 이제 막 연기라는 미로의 초입에 들어선 동생 김태훈의 영화를 본 인상은 어땠을까, 그 형제의 대화는 어떨까, 그래서 궁금했다. 아무리 형제라도 서로의 연기에 관해서는 늘 존중하는 마음 때문에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한 적이 거의 없다는 두 사람이 공손한 그리고 사려 깊은 대화를 나눠주었다.

김태우: 얘랑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나. 주말마다 만나는 사이끼리. (웃음) 좀 쑥스럽네. (<씨네21> 취재진에게) 우리가 삼형제예요. 얘하고 나하고는 네살 터울이고, 저하고 두살 터울지는 큰형이 있어요. 아마 이 기사 나가는 거 형이 보면 “근데 너희들은 나 빼놓고 인터뷰가 된다고 생각했냐”며 농담할 거예요. 되게 유머러스하면서도 멋진 사람이에요. 지금은 일반 회사에 다니지만 우리보다 영화를 더 많이 보고 어렸을 때는 예능에 훨씬 능했어요. 그런데 큰형이 약간 막내 같은 느낌이라면 태훈이 얘는 너무 겸손하고 진득하고 그래요.

김태훈: 여기 인터뷰하러 오다 보니까 어떤 사람이 돼지 캐릭터 인형 뒤집어쓰고 점포 오프닝 행사에서 일하고 있더라고. 예전에 형이 지방에 아르바이트 데리고 갔던 거 생각나더라. (웃음) 나 막 대학 들어갔을 때 형 따라서 지방 내려가 그런 인형 옷 쓰고 아르바이트 같은 거 했었잖아. 형이 학생 때 아르바이트로 찹쌀떡 장사 한 적 있잖아. 그때도 나 데리고 갔었고. 항상 많이 도와줬어. 영화도 그래. 몇편 안 했지만 형 덕분에 기분 좋아지는 때가 있어. 다른 게 아니고 형이랑 작업했던 배우들이 나를 말없이 챙겨주더라고. 어떤 조명 스탭은, 지금은 조명감독님인데, 자기가 막내 때 형이 그렇게 잘해줬다는 거야. 나야 형처럼 사람들에게도 잘하고 사회생활도 잘하는 사람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런 사람들 만나면 내가 형 욕먹게 행동하면 안되겠구나 생각 정도는 늘 하게 돼.

배우로서 계속 달라지는 모습 보기 좋아

김태우: 나는 솔직히 말하면 네가 나같이 안 하기를 더 바라는 것 같아. (웃음) 이게 되게 이율배반적인 얘기인데 뭐냐하면, 나는 어쩌다보니 그렇게 했지만, 나처럼 하면 때때로 연기에 집중하는 데 방해받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거든. 그러니까 너는 그냥 연기에만 집중하라는 거야. 한 가지 좋은 건 네가 배우로서 계속 달라지는 것 같다는 거야. 나는 배우가 다양하고 달라야 한다고 봐. 심지어는 나쁘게 달라지더라도 같은 것보다는 그게 나아. 다만 <약탈자들>을 보면 아직 네가 카메라를 좀 의식하고 있구나 하는 그런 건 보여. 나라고 아주 잘하는 것도 아니지만. (웃음) 첫신이 조금 그렇고 또 여러 명이서 모여 말하는 신도 약간 스탠바이되어 있는 것 같고. 연기라는 게 어쩌면 듣고 말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야 하는 것 아닌가 싶어. 그냥 실생활에서 지금 우리가 이렇게 말하고 듣고 반응하고 하는 그대로만 연기가 되면 좋을 것 같아.

김태훈: 첫 장면은 나중에 따로 찍어서 약간 느낌이 그렇다고 할 수도 있는데, 하긴 뭐 다른 장면이 그 자리에 있었어도 마찬가지 흠이 보였을 거야. 열심히는 하는데 아무래도 아직은… 아… 그 왜 영화에서 빙빙 돌면서 다른 배우하고 뛰고 잡고 하는 장면 있잖아. 내 딴에는 진짜 뛰고 잡고 한다는 느낌을 주려고 있는 힘껏 했는데 너무 심하게 했는지 갑자기 다리에 힘이 탁 풀리더라고. 그러면서 팔이 꺾이고 손에 금이 갔지. 거기가 역사적으로 사연 많은 금정굴 앞인데 제를 제대로 올리고 촬영했어야 했나 뭐 그런 기분도 들고. 거기가 먼지가 나서 나도 모르게 침을 자주 뱉었거든. 하여튼 그때 손 다치는 바람에 곱창집에서 소주병 앞에 놓고 내가 얘기하는 장면을 좀 이상하게 연기할 수밖에 없더라고. 그때 가만히 보면 대사 하면서 한쪽 손은 가만히 놔두고 있거든. 그런데 그 장면 연기가 가장 좋다고 하는 분도 계시더라고. (웃음)

“김태우 흉내”낸다고 오해받기도

김태우

김태우: 그 신은 나도 좋더라. 대사 내용이 쏙쏙 와서 박혀. 그런데 내가 들은 웃긴 얘기가 뭐냐 하면 우리가 형제인 거 모르는 분인데, <약탈자들>을 부산영화제에서 본 다음 딱 그랬다는 거야. “근데 쟤는 왜 저렇게 김태우 흉내를 내?”(좌중 웃음)

김태훈: 나는 부담은 없어. 그런 얘기 들어도 기분 나쁜 것도 없고. 사실 아직까지는 다르게 보이는지 비슷하게 보이는지 그런 거 생각할 겨를도 없이 연기해. 그냥 열심히 해야 한다는 생각뿐이거든. 나는 형이 얼마나 열심히 노력해서 배우가 됐는지 아니까 그런 말 들어도 자격지심 같은 건 안 생기거든. 뭐 가족 중에도 비슷한 사람들은 있는 거고. 또 어떤 사람들은 형하고 나하고 완전히 다르다는 말도 하거든.

김태우: 그렇지. 차이가 있을 거야. 만약 네가 연기한 상태 역할을 내가 했다면 약간 ‘사짜 냄새’가 났겠다, 는 생각이 영화 보면서 들더라. 저 사람이 뭔가 진실인 척 가장해서 자기 것을 취득하려는, 그래서 영화를 보면 그 사람 말이 다 맞는 것 같지만 사실은 전부 자기가 원하는 것만 얻으려고 자기 당위성이나 합리화 그런 것만 말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하거든. 나라면 아마 그런 걸 생각하면서 연기하게 됐을 수도 있어. 그런데 어쨌든 네가 상태를 연기하는 걸 보면 그 사람을 되게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 그런 건 확실히 너랑 나랑 차이인 것 같아.

김태훈: 나중에 생각해본 건데 <약탈자들>은 남들이 주인공 상태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영화잖아. 생각해보니 모텔 앞에서 키스하는 장면만 거의 그 누구의 시점도 아닌 상태 자신만의 것이더라고. 나머지는 전부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그 사람의 모습인 거야. 왜 그렇게 되면 사람마다 그 사람을 약간씩 다르게 말하잖아. 처음에는 나도 그게 좀 힘들더라고. 처음 두신 정도 촬영할 때까지는 얘(주인공 상태)가 지금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합리화고, 그런 건지.

모텔 앞 키스 장면, 흡족함과 아쉬움

김태우: 나온 영화를 보니까 시나리오보다 훨씬 재기발랄한 것 같아. 상상력이 더 커졌더라. 그래도 나는 영화보다는 솔직히 네 형이니까 주로 너에게 포커스를 맞춰서 보게 되잖아. 아까 말한 카메라 앞에서의 여유만 좀더 챙기면 좋을 것 같아. 하긴 동생이라고 함부로 말할 수 있을 만한 게 아니지만. 배우는 속기 쉬운 직업인 것 같아. 배우이기 때문에 관심은 쏠리게 되고 그럼 잘한다, 못한다 말 들을 때 많거든. 그때 배우는 연기 끝나면 다 게임 끝인 거다, 그렇게 생각해야지, 잘한다 못한다 하는 말에 좌지우지되어서는 안되거든. 다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말야. (웃음) 잘한다 그러면 감사합니다, 그걸로 끝. 못한다 그러면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럼 되고. 일희일비하지 않는 게 중요한 것 같아. 소주병 앞에 놓고 과거가 어쩌고 미래가 어쩌고 말하는 장면 있잖아. 사실 되게 좋았어. 금정굴 장면에서 천막 걷어내고 그 안을 들춰보는 장면도 좋았고. 네가 내 동생이라서가 아니라, 대체로 신인배우들의 장점은 힘으로 밀어붙이는 데서 나오는 것 같아. 그런 거 보고 있으면 연기는 어색하지만 이제 나는 저런 연기는, 다듬어지지는 않았어도 힘으로 온 정열과 집중으로 밀어붙이는 저런 연기는 죽어도 못하겠구나, 뭐 그런 생각도 들어. 네가 소주병 앞에 놓고 연설할 때 그런 호흡이 진심으로 묻어 있어. 근데 너는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어떤 장면이 가장 흡족해?

김태훈

김태훈: 나는 모텔 앞에서 상태가 키스하는 거.

김태우: 그거 나는 좀 아쉽던데.

김태훈: 더도 덜도 아니고 그때는 딱 그 정도가 맞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 연기할 때는 사실 그런 거 구분 안 하고 했지만, 그 장면만 남의 시점이 아니라서 그런지도 모르겠고.

가족으로 함께 출연했다가 편집된 적도

김태훈: 나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에서 전반적으로 다 좋았지만 형이 초반에 엄지원씨랑 했던 장면이 재미있었어.

김태우: (<씨네21>이 끼어들어 제주도 고순의 집 앞에서 수로를 따라 바다쪽으로 달리는 장면도 좋았다고 하자) 수로장면은 홍상수 감독님 디렉션이 아예 없었지. 감독님도 진짜 많이 변했어.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때는 정말 일일이 다 디렉션이 있었거든. 수로를 뛰는 것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 중 하나야. 정말 구경남 같은 느낌이었어. 디렉션이 없으니까, 내가 머리는 어디에 두어야 하는 거지? 어떻게 뛰지? 뭐 이런 것까지 다 결정해야 하고. 감독님도 재미있었는지 바다쪽으로 계속 나가자고 하시더라고. 내가 원래 촬영 전에 준비를 많이 하는 타입이잖아. 그런데 홍 감독님 영화에서는 뭐든 그냥 놔버리는 게 몸에 좋아. 그러고 보니 너도 사실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때 출연까지 했는데 완성본에 못 들어갔다 그지?

김태훈: 그렇지. 공항장면에서 형 가족으로 나왔는데.

김태우: 공항 마중 나가는 신이었는데 홍 감독님이 하도 진짜 가족을 데리고 오라고 해서 널 데리고 갔었지. 실은 <밤과낮>에도 5회차나 7회차 정도 서울신에서 분량이 잡혀 있고 의상까지 다 맞춰놨는데 취소됐었지. 감독님이 서울 오시더니 안 찍어도 되겠다 하셔서. (웃음)

김태훈: <약탈자들> 하면서 후회는 하나도 없어. 정말 즐거운 작품이었거든. 다만 다음 작품이나 그 다음 작품에서는, 형이 말한 것처럼 카메라 앞에서 카메라를 의식하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그게 고민이야.

김태우: 너무 걱정 안 해도 돼. 내가 말한 건 열심히 연기하는 게 너무 보인다는 거 정도니까 오해는 하지마. 배우는 뭐든 잘 버텨야 하고 조급해하면 안되는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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