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
<바흐 이전의 침묵> 꼭 보세요
2009-06-30
글 : 정한석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스페인영화제, 6월30일부터 7월12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6월30일(화)부터 7월12일(일)까지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와 주한스페인대사관이 공동주최하는 ‘스페인영화제’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린다.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2003년경부터 지속적으로 스페인영화제를 선보여왔다. 이번 영화제에서는 기존의 스페인영화를 대변해온 훌리오 메뎀, 페레 포르타베야, 하이메 로살레스를 위시하여 떠오르는 감독들인 호세 코르바초, 후안 크루즈, 라파 코르테스의 작품들을 상영한다. 이들 감독들이 연출한 2005년부터 2007년 사이의 근작 11편을 볼 수 있는 기회다.

개막작은 <북극의 연인들> <루시아> 등으로 유명한 훌리오 메뎀의 신작 <혼란스러운 아나>다. 아버지와 함께 동굴에서 생활하며 자유롭게 예술가의 꿈을 키우는 십대 소녀 아나가 어느 날 마드리드로 가게 되고 그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다. 마드리드에서 아나는 우연히 최면 상태를 경험하게 되고 최면에 빠진 아나는 자기의 무의식 속에서 어떤 여성들의 비극적 삶을 보게 된다. 최면으로 인해 시공을 뛰어넘어 여성의 역사를 대면하게 된 아나. 아나의 이 환상적인 경험을 영화는 매끈하게 다듬어낸다. 훌리오 메뎀의 신작이다.

<사랑해 파리-바스티유 감옥 편> <엘레지> 등으로 요즘 우리에게 익숙해진 여성감독 이사벨 코이셋의 영화 <시크릿 라이프 오브 워즈>는 연기 잘하는 배우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을 것이다. 사라 폴리, 팀 로빈스 등이 출연한다. 돌이킬 수 없는 사고를 당한 뒤 귀가 멀게 된 한나는 휴가 여행 중에 한 작은 마을을 찾게 된다. 이곳에서 병자들을 돌보는 일을 하면서 조셉을 알게 되고 둘은 서로를 치유해간다. 이들이 서로에게 기둥이 되고 비밀의 언어를 나누며 인생을 치유해가는 과정이 그려진다. 이사벨 코이셋은 특유의 감성적인 시선으로 상처받은 이들의 나머지 생에 관해 문답한다.

이미 몇 차례 국내에서 볼 수 있었지만 만약 그동안 기회를 놓쳐왔다면 <바흐 이전의 침묵>을 체크해놓자. 루이스 브뉘엘의 <비리디아나>의 제작자로 혹은 정치적이면서도 실험적인 스페인 영화미학의 숨은 실력자로 인정받아온 페레 포르타베야의 신작이다. 음악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음악을 중심에 놓고 한편으로는 극영화적인 구조로 또 한편으로는 이미지와 사운드의 정교한 통찰로 엮어간다. 바흐와 그의 음악에 관한 성찰적인 영화다. 오랫동안 영화연출을 중단해왔던 페레 포르타베야의 재기작이기도 하다.

<바흐 이전의 침묵>
<타파스>

우리에게는 다소 낯설지만 스페인영화의 미래를 책임지는 감독들의 새로운 이름과 영화 명단도 눈여겨보자. 호세 코르바초와 후안 크루즈가 공동연출한 <타파스>는 한 마을 사람들의 몇 가지 이야기를 유머 넘치면서도 긴장감있게 묶어낸 기분 좋은 작품이다. 한편 라파 코르테스의 <요>는 스페인영화의 서스펜스물과 스릴러물이 꽤 높은 수준에 있음을 알리는 작품이다. 독일인 한스가 스페인의 마요르카라는 마을로 이사를 오게 되고 그곳에서 탄카라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 집안일을 맡는다. 하지만 동네에는 이상한 소문이 돌고, 한스는 그 소문의 주인공이 자신임을 알게 된다. 라파 코르테스는 이 작품으로 많은 국제영화제 순례를 돌며 인정받았다. 이 밖에도 이번 스페인영화제는 스페인영화의 안팎을 둘러볼 수 있는 좋은 작품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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